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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289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명필 김생과 명문 최치원의 글과 글씨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문자, 그 이후:한국고대문자전"이라는 특별전시를 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진행하는 "초상화의 비밀"에 비해서 관심도는 낮아 보이지만, 전시하고 있는 유물들은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통일신라시대까지 한국인의 문자생활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광개토대왕비 탑본, 다라니경,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볼 수 있었던 역사적인 유물들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고 있다. 실제 이런 유물들은 그 내용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접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으며, 통일신라시대까지 문자의 사용에 대해서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전시회라고 여겨진다. 한반도에서 문자를 사용한 이후 통일신라시대까지는 한국인이..

중앙박물관 2011.11.10

[중앙박물관 특별전] '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외규장각은 외적의 침입에 따른 자료의 소실을 염려하여 정조가 강화도 행궁에 설치한 국가적으로 중요한 주요 서적을 보관하던 장소이다. 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많은 문서들이 소실되었던 경험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며, 실록을 보관하던 전국의 4대사고와는 별도로 만든 것이다. 만주나 일본으로부터의 침입에 의한 경험으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강화도에 문서들을 보관했는데, 아리러니하게도 기술의 발달과 세계정세의 변화로 서양세력의 침입에 가장 먼저 타겟이 되었던 곳이 서울을 향하는 수로 입구를 지키던 강화도였고 그 결과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강력한 함대로 무장한 서양세력에게는 강화도의 철저한 방비책은 무력화되었다. 외규장각에는 여러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특히 어람용 의궤가 많이 보관되어 있..

중앙박물관 2011.08.01

[중앙박물관 특별전] '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추모와 기억

조선시대에는 세상을 떠난 왕과 왕비에게 시호를 올렸으며, 왕이 사후에 받는 이름은 시호 외에도 묘호, 능호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왕과 왕비의 국장 이후 삼년상을 치른 후 혼전의 신주를 종묘로 옮겨지는 부묘가 있었으며 이로써 국왕의 장례절차는 마무리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선왕이나 조상을 기리기 위해서 장례절차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국가적인 행사가 있었으며, 이를 통해서 왕실과 국왕의 위상을 강화하고자 했다.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영정은 별도로 설치된 진전에 모셨으며, 태조의 영정을 모시는 경기전이나 정조대왕의 영정을 모신 화성행궁의 화령전 등 특별한 의미를 갖는 왕들의 영정을 모시기도 하였다. 또한 왕실의 일원이지만 종묘에 모시지 못하는 세자나 세자빈 등은 별도의 사당을 마련하기도 하는..

중앙박물관 2011.07.31

[중앙박물관 특별전] '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숙종의 일생과 의궤

조선시대 기록문화 유산인 의궤는 실록과 함께 한 국가를 통치하는 국왕이 참석하는 주요 행사에 대한 기록이다. 국왕의 통치행위에 대한 전반적인 기록인 실록과는 달리 의궤는 국가적인 행사에 대한 세밀한 기록으로 행사의 절차와 준비해야 할 사항 등에 대해서 그림과 함께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기록된 의궤를 통해 국왕의 일생을 통해 통치행위에 있어서 중요한 행사를 한번 살펴 볼 수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 19대 왕인 숙종의 일생 동안에 있었던 주요 행사에 대해 별도로 구분하여 전시해 놓고 있다. 숙종대에는 국가적인 통치행위에 대한 기록인 의궤가 정형화되면서 그 내용에 깊이가 더해 가던 시기였다고 한다. 숙종의 일생과 의궤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은 현종과 명성왕후의 장남으로 7세에 왕세..

중앙박물관 2011.07.29

[중앙박물관 특별전] '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왕실의 장례

유교국가였던 조선시대에서 국가적인 행사 중 가장 중요하고 큰 행사는 아마는 왕실의 장례행일 것이다. 그 중 왕의 장례 절차에는 새로운 국왕의 즉위도 포함되어 있어서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했다. 조선 숙종때 대비의 복식에 관한 남인과 서인의 예송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절차 하나하나가 첨예한 정치적 행위였다고도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왕이 승하하면 거국적인 규모의 빈전도감, 산릉도감, 국장도감 등이 설치되어 일을 주관하였는데 대부분 영의정급에 해당하는 인물이 주도했다고 한다. 빈전도감은 왕의 시신을 재궁에 안치하는 산릉까지 모시는 발인전 5개월간의 장례를 주관했으며, 국장도감은 국장행렬을 재궁에서 장지인 산릉까지 모시는 일을, 산릉도감은 왕릉을 조성하는 일을 맡았다고 한다. 국와의 장례절차는 각 도감에 정..

중앙박물관 2011.07.28

[중앙박물관 특별전] '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나라의 경사

조선시대 국가의 큰 행사나 국왕의 통치행위를 기록한 의궤 중 국가적인 경사를 기록한 의궤들이다. 조선시대 국가적인 경사를 가례라고 하는데 이는 왕실의 혼인, 책봉, 존호, 각종 잔치 등을 말한다.. 국가적인 행사로 왕의 즉위식을 우선 생각하기 쉽지만 조선시대 국왕의 즉위는 선왕의 장례 절차의 일부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기때문 이에 대해 별도로 기록한 의궤는 없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가장 큰 행사는 왕비, 왕세자비, 왕세손 등을 책봉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기록이 적혀있는 의궤는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왕실의 혼인의식 또한 국가적으로 성대하게 치루는 잔치로 많은 기록과 그림들이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행사였다. 조선시대에는 큰 행사를 치를때는 도감을 설치하고 철저한 준비와 절차에 의해서 ..

중앙박물관 2011.07.27

[중앙박물관 특별전] '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왕권과 통치

의궤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나 통치행위를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참조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국왕의 공식적인 활동은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으며 국왕의 공식활동을 통해서 왕권의 정통성과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국왕의 공식적인 활동으로는 국가적으로 행하는 종묘제려, 사직제례, 선농단 등의 공식적인 제례를 주관하는 일, 궁궐이나 종묘 등을 수리하거나 새로 짓는 일, 국가를 위해 공을 세운 신하에게 공신의 칭호를 내리는 일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국왕의 공식적인 활동들은 도감을 설치하여 그 과정을 의궤로 남겼다고 한다. 왕권과 통치 조선은 국왕을 정점으로 하여 중앙집권체제로 운영된 왕조국가였다. 국왕의 공식적인 활동은 곧 통치로 연결되었다. 특히 국왕은 국가..

중앙박물관 2011.07.25

[중앙박물관 특별전] "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

2011년 7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프랑스로부터 145년만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를 중심으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의궤는 서울대 규장각을 비롯하여 각종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기존의 의궤와는 달리 병인양요때 프랑스 군이 약탈해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의궤를 오랜 외교적 노력 끝에 돌아온 71점의 의궤를 중심으로 관련된 유물들을 같이 전시하고 있어서 우리의 기록문화 유산에 의궤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의궤는 조선 왕실에서 국가의 중요행사를 후대에 참고할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기는 보고서 형식의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조선왕조에서 의궤는 태조 때부터 만들어져 왔으나, 임진왜란 등으로 조선초기의 의궤들의 대부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

중앙박물관 2011.07.24

[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악기 우리음악', 조선시대 민초들의 음악

조선시대 민간에서는 계층과 용도에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즐겼다. 조선 사회를 이끌었던 선비계층에서는 시조를 읊으면서 거문고를 즐겼으며, 상류계층의 연회에서 가야금 연주를 즐겼다. 그리고 궁중연회에서는 궁중음악에 연주되었던 것에 비해 궁궐밖에서의 다양한 연회에서는 피리, 대금, 해금, 장구, 좌고로 구성된 삼현 육각이 다양하게 연주되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후기 판소리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전문 소리꾼이 나오고 사설집이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이들 음악 외에도 지역별로 특성에 맞게 노동의 흥을 돋우기 위한 농요와 풍물, 민간에서 행해진 크고 작은 굿에서 사용된 음악들이 존재하였다. 조선시대 민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악기가 존재했으나 기본적으로 민간 연회에 사용되었던 삼현육각이 악기인 피리, 대금..

중앙박물관 2011.07.17

[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악기 우리음악', 조선시대 선비들의 음악

조선시대 민간음악은 민간계층에서 즐겼던 농악, 판소리, 민간신앙인 굿에 사용하던 음악과 궁중음악이 민간으로 확대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거문고와 가야금 등 상류계층에서 즐겼던 음악이 있었다. 그 중 선비층을 중심으로 한 상류계층이 가장 많이 즐겼던 악기는 거문고였다고 한다. 현대의 젊은이들이 즐겼던 통기타와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선비들은 거문고를 상당히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상류사회를 형성했던 양반가에 전해오는 유물 중에서 거문도가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들이 거문고 연주와 시을 읊으면서 지인들과 교류했던 모습은 그림이나 기록으로 많이 남아 있다. 가야금은 선비계층에서 즐겨 연주했던 악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며,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주로 기생들이 양반들을 위해서 연주..

중앙박물관 2011.07.14

[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악기 우리음악', 조선시대 궁중음악과 국립국악원이었던 장악원

궁중음악은 조선시대 통치이념인 유학에서 특히 강조되는 부분 중 하나로 조상을 찬미하고 임금과 신하가 화합하며, 백성을 교화시키기 위한 음악으로 중국에서 유래했다고도 볼 수 있는 음악이다. 이는 고대사회에서 하늘과 통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던 음악의 기본적인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조선시대 궁중음악은 크게 종묘제례로 대표되는 제례에서 사용했던 음악, 경축행사에 사용했던 음악, 과거장에서 사용했던 음악, 활쏘기대회에서 사용했던 음악, 각종 연회에 사용되었던 음악 등이 있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종묘제례악과 연향이라고도 불리는 국가와 왕실의 경사가 있을때 벌리는 잔치에서 사용하는 음악이 있다. 유교사회인 조선에서 음악은 국가가 관장하는 법률에 준할 정도로 체계적으로 관리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

중앙박물관 2011.07.12

[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악기 우리음악', 조선시대 우리 음악의 성립과 발전

불교가 도입된 이래로 우리나라 음악은 불교행사 중심의 음악이었으나, 유교가 국가 통치이념에 정착되기 시작한 고려시대부터는 유교의례에 중국의 음악이 도입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흔적은 많지 않아 보인다. 유교가 국가통치이념이 확립된 조선사회에서는 유교 통치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국가와 왕실을 중심으로 각종 의례에 맞은 음악을 연주함으로서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해진다는 예악사상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조선전기 세종은 한글창제와 함께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기술로 악기와 악보를 만들어 조선의 음악제도를 정립하였는데, 세종대왕 스스로가 음악에 대한 식견과 재질이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보이며, 난계 박연과 함께 예약사상에 맞게 음악체제를 정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성종대에는 조선최고의 실용음악 이론서..

중앙박물관 2011.07.10

[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악기 우리음악, 통일신라와 고려의 음악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가 왕실과 지배계층의 주도 국가적인 종교로 발전함에 따라 이와 관련된 새로운 악기와 음악체계가 도입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왕실이 주관하는 불교의례가 성행하면서 이를 위한 음악과 악기가 정비되면서 정형되었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실제로 연주되었던 악기는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기때문에 실몰로 확이하기는 힘들며, 범종이나 탑 등에 표현된 부조상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찾아 볼 수 있다. 고려시대 또한 불교국가로서 통일신라와 큰 변화는 없었을 것으로 보이나 유교의 도입에 따른 유교제례에 필요한 악기들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통일신라(673년), 충남 연기군 전동면 비암사 출토, 국보 106호로 계유년(673)에 제작된 비석이다. 앞면에는 아미..

중앙박물관 2011.07.08

[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악기 우리음악', 삼국시대 악기와 음악

선사시대 이래로 고대국가에서는 초월적인 존재와 통하는 매개체로서 음악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속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대국가에서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다양한 형식의 의식을 통해서 표현하였으며, 이는 삼국시대에 그 전통이 내려져 왔다. 이에 더하여 삼국시대에는 불교가 전해짐에 따라서 새로운 악기와 음악이 도입되었으며, 유교의식에서도 음악은 중요시 되었다. 삼국시대에 사용된 음악과 악기는 현존하는 것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다양한 형태로 옛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의식에 사용된 음악과 악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고구려의 음악과 악기는 여러 고분에 그려진 벽와에서 그 모습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으며, 당시와 ..

중앙박물관 2011.07.07

[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악기 우리음악', 삼국시대 이전의 음악과 악기

2011년 봄, 용산의 중앙박물관에서는 국립국악원의 개원 60주년을 맞이하여 국립국악원과 공동으로 '우리 악기, 우리 음악'이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시가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선사시대 이래로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와 실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악기와 음악을 시대별, 특징별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었다. 음악은 제사와 의례, 종교, 사상 등에 있어서 큰 매개체 역할을 해 왔으며, 국왕을 비롯한 집권계층에서부터 농사를 짓던 농민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악기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 민족의 삶과 같이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선사시대에는 초월적인 존재에 통하는 매개체로서 다양한 소리와 도구를 활용하였다. 타악기와 같은 단순한 형태의 악기에서부터 주변 여러나라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들여온 새로운 악기..

중앙박물관 2011.07.05

[중앙박물관 특별전시] 대동여지도, 지도에 담은 동방의 큰 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1년 봄에 간행 150년을 기념하여 '대동여지도, 지도에 담은 동방의 큰 나라'라는 주제로 테마전시를 하고 있다. 고산자 김정호는 구한말 조선의 지리학과 지도제작 성과를 집대성한 를 철종 12년인 1861년에 간행하였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17세기 이래로 국제질서의 변화에 따른 군사적인 목적과 지방통치를 위한 행적적인 요구로 다양한 형태의 지도들이 제작되었고, 지도제작 기술 또한 크게 발전하였다. 대항해시대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지도제작 붐이 중국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보이며, 제작기술 또한 많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시기에 1리, 10리, 20리, 100리 방안을 이용한 다양하 지도들이 제작되었고, 이를 고산자 김정호가 정밀한 검증을 거쳐서 집대성한..

중앙박물관 2011.06.19

[국립중앙박물관 발해실] 발해인의 생활, 토기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라 할 수 있으며, 그 전통이 많이 남아 있다. 또한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말갈족의 영향과 당나라와의 활발한 교류를 나타내는 당삼채, 유약바른 화려한 기와 등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박물관에는 발해유물이 거의 없고, 주로 러시아 과학원, 일본 박물관, 또는 북한 박물관에 유물들이 많은 것으로 보이며, 복제품들을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발해의 토기. 연해주 지역에서 출토된 바리(bowl). 주로 러시아 과학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이다. 항아리(jar) 항아리들 발해의 토기는 크게 고구려계와 말갈계로 나누어진다. 고구려계는 흑색이나 회색을 띠며 높은 온도에서 구운 것으로, 표면은 매끈하게 연마되어 있고 고구려의 토기와 많이 닮았다. 말갈계는 적갈색을 띠며 낮은 온도에..

중앙박물관 2011.06.13

[국립중앙박물관 발해실] 발해의 불교

발해지역에서는 많은 불교 관련 유적이 출토되고 있으며, 그 중 수도였던 상경의 절터에 있던 석등이 가장 유명한 것으로 보인다. 발굴된 유물들로 보아 발해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것은 불교였고, 상류층부터 하류층 서민까지 불교가 생활 속에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앙박물관에는 발해관련 유물의 진품은 전시되어 있지 않고, 일제 강점기에 발해의 수도였던 헤이룽장성 상경부를 조사.연구했던 일본 도쿄대에서 많은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연해주 지역은 러시아 과학원에서 발굴작업을 하여 크고 작은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부처상, 지린성 훈춘시에 만든 석회암으로 만든 부처상으로 일본 도쿄대에서 소장하고 있다. 석가와 다보 두 여래상이 나란히 앉은 모습을 표현하였다. 광배에 연꽃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

중앙박물관 2011.06.13

[국립중앙박물관 발해실] 발해의 건축, 문자, 대외교류

발해는 당의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당시 동아시아에서 큰 규모의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당나라와 일본과 적극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발해는 세계적인 초피(담비가죽)의 생산지이다. 이 초피는 후대에 러시아가 연해주까지 동진했던 동기가 되었던 무역상품으로 당시 중국,일본,신라,서역 간의 교류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품목이다. 이를 통해서 생긴 부의 결과로 발해는 상당한 수준의 건축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발해는 말갈족가 같이 공존했던 다민족 국가이지만 수도인 상경 등지의 주거지 유적에서 고구려 계통의 난방 시설인 구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지만, 발해 관련 유물은 거의 없다. 현재 전..

중앙박물관 2011.06.13

[중앙박물관 통일신라실] 해상세력의 성장과 바다를 통한 교류

통일신라는 바닷길을 이용하여 중국, 서역, 일본과 교류하였다. 해상왕 장보고의 청해진과 최치원, 혜초 등으로 대변되는 당나라 유학생, 당나라세 소재했던 신라방 등 역사 기록에는 수많은 대외교류의 기록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실제 남아 있는 유물이나 유적지는 그리 많지는 않으며, 유적으로는 완도의 청해진만이 당시의 활발한 대외교류의 유적으로 남아 있다. 중앙박물관에 전시된 통일신라의 대외교류 흔적들은 고대국가나 삼국시대에 비해서도 유물이 빈약해 보이며, 당시에 크게 성행하였던 차문화, 중국 당나라 월주요에서 생산되었던 청자 등 도자기 일부만이 통일신라시대 대외교류를 나타내는 유몰로 전시되어 있다. 바다를 통한 교류 통일신라는 드넓은 바닷길을 이용하여 중국, 서역, 일본과 교류하여 한자문화, 차문화, 불교,..

중앙박물관 2011.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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