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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622

서울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공공건축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은 정부중앙청사역이라고도 불리는 지하철역으로 1985년에 건축되었다. 지하철역 개통당시 중앙청역이라 불리다가 중앙청이 허물어지면서 2000년 경복궁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많은 수도권 전철역 중에서도 건축미가 빼어난 역사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하였다고 한다. 경복궁과는 통로로 직접연결되며, 정부중앙청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나, 교통의 요지가 아니기때문에 왕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편이다. 역사내부에는 서울메트로 미술관이다. 김수근이 올림픽주경기장을 비롯하여 경찰청, 법원 등 공공건축물 설계에 왕성하게 참여하던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설계한 건축물로 그가 설계한 건축물의 특징들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역사는 3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하1층은 서울메트로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서울 탕춘대성, 구기동 암문에서 향로봉 아래까지

탕춘대성은 한양도성을 이루는 인왕산과 북한산 향로봉 아래까지를 연결한 성으로 숙종대와 수도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북한산성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경복궁 뒷편에서 세검정을 거쳐 북한산성 대남문으로 연결되는 비상통로를 확보하고 군량미를 저장하면서 한양도성의 외성역할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용도로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북악터널이 지나가는 보현봉과 북악산을 있는 동쪽편 능선에서 성을 쌓을 계획이었으나 숙종의 사망으로 완성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탕춘대성 안쪽 지형은 구기동 계곡을 중심으로 3면이 능선으로 둘러싸어 있고, 계곡에는 민가가 많지 않은 지역으로 조선시대 한양사람들이 휴식공간 역할을 했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구기동계곡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로 흐르는 홍제천이 유일한 통로이며 그 ..

남한산성 수어장대(서장대), 청량산 정상에 세운 군사를 지휘하던 장대

남한산성에 쌓은 4개의 장대 중 서장대에 해당하는 수어장대이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안에서 최고 높은 곳인 청량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어 성내부와 주변을 잘 살펴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특히 도성인 한양과 한강, 그리고 한양과 남한산성까지의 길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군이 주둔하고 있던 삼전도비가 있는 송파구 일대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이라 인조가 직접 수어장대에 올라 전행을 지휘했다고 한다. 수어장대는 원래 1층 누각이었으나, 영조때 다시 위에 2층 누각을 지었으며, 바깥에는 '수어장대', 안쪽에는 병자호란의 시련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무망루'라는 현판을 걸어 놓았는데, 현재 '무망루'현편은 수어장대 오른쪽에 별도의 보호각을 만들어서 전시해 놓고 있다. 인조때..

남한산성, 영춘정에서 서암문까지 산성 서쪽 성벽

남한산성 남문에서 출발하여 영춘정까지의 성곽길은 오르막길이 많고, 성곽 바깥쪽으로 수목이 우거져서 산성아래의 풍경이 잘 보이지 않으나, 전망 좋았던 곳에 설치된 영춘정부터는 산성아래 풍경이 잘 보이기 시작한다. 산성 아래쪽에는 옛날 문무대가 있었던 육군군사학교와 남성대 골프장이 보이고 그 너머로 가락동을 비롯하여 멀리 한강까지 서울 도심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성남과 서울 방향으로 산성자체가 평지에서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성곽 바깥쪽은 경사가 심한 언덕으로 되어 있어 천연적인 요새처럼 적이 산성까지 오르기 어려운 지형을 하고 있다. 실제 병자호란 당시 한강을 건넜던 인조 일행은 산성 서쪽으로 들어왔지만, 실제 서쪽 성벽은 지형이 험하기때문에 큰 전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청나라군은 남..

서울 북한산 진관사, 죽은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수륙재가 열렸던 사찰

진관사는 서울의 서북쪽 끝, 경기도 고양시와 경계 지점 근처 북한산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다. 신라 시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알려지고 있는 절로 원래 이름은 신혈사였는데, 고려현종 때 새로이 크게 건축한 후 진관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절의 내력이 오래된 까닭에 근처의 동네 이름도 진관내동이라고 불리우고 지금은 은평 뉴타운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 진관사에서 북한산 쪽으로는 깊고 아름다운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두개의 바위산 가운데 계곡이 흐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계곡을 통해서 북한산을 오르는 길은 바위암벽이 많아 약간 험한편이다. 진관사는 현재의 사찰규모로 볼 때는 그 규모가 크지 않고 대부분의 건물들이 한국전쟁이후 중건된 것이라 내력이 깊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불암사..

전국 사찰 2013.08.20

서울 북한산 삼천사, 의상능선 아래 계곡에 자리잡은 고찰

북한산 의상봉 아래 삼천사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사찰인 삼천사이다. 이 사찰은 삼국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지만 창건연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삼천사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 기록에 따르면 한때 3처여명의 승려가 수도할 정도로 큰 절이었다고 한다. 원래 삼천사는 현재의 위치에서 계곡 상류쪽 부암동 암문 아래에 있었는데 임진왜란때 승병들이 집결지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이때 사찰이 불타버렸다고 한다. 현재의 삼천사는 임란왜란 이후 진영화상이 고려시대에 만든 마애여래입상(보물 657호)가 있던 작은 암자를 중장하였다고 한다. 이 사찰 또한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리고 현재의 전각들은 대부분 1970년대 중창하였다고 한다. 삼천사는 북한산 계곡의 좁은 지역에 자리잡고 ..

전국 사찰 2013.08.14

서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보물657호)

보물 657호로 지정된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는 북한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많은 계곡 중 하나인 삼천리골계곡에 남아 있는 불상이다. 계곡에 있는 큰 바위에 새겨진 이 불상은 고려초인 11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불상은 지금은 삼천사 대웅전 뒷편에 위치하고 있지만, 원래는 현사찰에서 2km 쯤 위쪽에 삼천사가 있고 마애불상이 있는 이곳에는 작은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바위에 새겨진 높이 2.6m의 이 불상은 얼굴과 윗몸은 돋을 새김을 하였으나, 하반신과 광배 대좌 등은 볼록한 선새김을 하고 있다. 불상이 조성된 바위 위에 다른 커다란 바위가 얹혀 있어 지붕이나 보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려초기에 새겨진 불상으로 조각수법이 섬세하면서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전체적인 비례 또한 자연스..

남한산성, 남문(지화문)에서 영춘정까지

남한산성 경기도 성남시 동쪽 광주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천혜의 요새이다. 청량산과 남한산 사이에 위치한 조그만 분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남한산성으로 들어오는 길은 광주시에서 계곡을 따라서 올라오는 길과 성남시에서 능선을 따라서 올라오는 길이 있다. 평지에서 산성까지 들어오는 길은 상당히 험한 편이고 산성 바깥쪽으로는 경사가 심한 반면에 산성에서는 서울을 가로 질러 흐르는 한강을 비롯하여 서울 전체와 성남지역이 막힘없이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어 산성으로서는 조건을 상당히 잘 갖추고 있는 곳이다. 남한산성 남문은 지화문이라고도 부르며, 성남쪽과는 능선을 따라서 만들어진 도로를 통해서 들어올 수 있다. 이번에는 남한산성 성곽을 돌아보는 가장 편한 길 중 하나인 남문에서 서문을 거쳐서 ..

강화 외포리선착장과 석포선착장, 강화.석모도간 카페리호가 운행하는 포구

외포리선착장은 강화도와 석모도를 연결하는 페리선이 운행하는 포구로 강화도에서는 제일 큰 규모이다. 바다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크기때문에 좋은 항구가 발달하지 못한 강화도에서 외포리와 석모도 사이의 해협은 비교적 수심이 깊고 갯벌이 형성되지 않는 계곡같은 지형때문에 예로부터 연안항로에서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외포리선착장에는 조선시대 강화해안을 지키던 정포보와 망양돈대가 있었다.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에는 외포리.석포리 간 항로와 마니산근처 후포.보문선착장간 항로가 있었으나 지금은 외포.석포리간 항로만 이용하고 있다. 석모도가 서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섬으로 주말에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명소이기때문에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페리선 운항횟수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일 것이다. 또한 많은 관광객들이 찾..

한국의 풍경 2013.08.11

북한산 승가사, 사모바위 아래 당나라 고승 승가대사를 모신 사찰

승가사는 북한사 사모바위와 승가봉 아래에 해발 450m 정도되는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한 작은 사찰이다. 경사진 언덕에 축대를 쌓아서 조성한 사찰로 입구에서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며, 사찰 경내에서 북악산과 인왕산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빼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구기동계곡 등산로를 따라서 찾아갈 수 있으며, 사찰까지 연결된 자동차길을 이용해서 걸어갈 수 있으며 진흥왕순수비가 있었던 비봉까지 등산하는 길에 잠깐 들릴수 있는 사찰이다. 승가사는 사찰규모가 작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당나라 고종때 생불로 추앙받던 승가대사를 기리는 의미로 승가사라고 이름을 정하였다고 한다. 사찰내에는 보물 1000호로 지정된 석조승가대사상과 보물215호로 지정된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있다. 승가사는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

전국 사찰 2013.08.09

강화 석모도 하리선착장, 서해안 작은 섬을 연결해 주는 작은 포구

강화 석모도 서쪽끝에 위치한 하리선착장은 석모도 서쪽 작은 섬 미법도와 서검도를 연결해주는 배를 타는 작은 선착장이다. 하루에 2번 운행한다는 페리선과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로 크고,작은 배들과 어민들이 사는 마을이 있는 다른 포구와는 달리 매표소라 할 수 있는 작은 컨테이너와 어구들만 있는 황량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영화 에 등장한 아름다운 집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석모도는 해명산.낙가산.상봉산이 있는 남쪽 섬과 상주산이 있는 북쪽섬을 연결하여 넓은 평야에서 주민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는 섬이다. 하리선착장은 석모도에서 북쪽섬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석모도 입구인 석포항에서 자동차로 무조건 서쪽으로 달리면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

한국의 풍경 2013.08.08

진주 경절사, 진주하씨 시조 하공진을 모신 사당

진주성내 경상우병영 운주헌을 비롯한 관아 건물들이 있던 자리에는 경절사라는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경절사는 고려시대 거란의 2침입때 큰 공을 세운 하공진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경절사는 원래 진주시 수곡면에 있었는데 1992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건물은 서원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뒷편에 사당인 경절사가 있고, 앞쪽에 재실 성격의 건물 2동이 마주보고 있다. 하공진장군은 진주성과는 관련이 없는 인물이지만, 이곳에 있던 경남도청 건물 등이 허물어지고 사적지로 재정비되는 과정에 진주를 대표하는 성씨인 진주하씨문중에서 사당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하공진(?~1011년)은 고려초 문신으로 진주하씨 시조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고려초 목종을 폐위시킨 강조의 정변에 가담하였으며, 거란의 2차침입때 ..

[서울 성곽] 숭례문(남대문, 국보1호)과 서소문까지 성벽

속칭 남대문이라고도 불리는 숭례문은 우리나라 국보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한양 도성의 정문이다. 숭례문은 1396년(태조 5)에 축조되어, 1447년(세종 29)에는 개수공사를 하였으며, 1961~1962년 사이 목재와 석재 등이 썩고 부서져 무녀질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여 문루와 홍예를 헐고 중수하였다고 한다. 목조건축물을 중수한다는 것은 부서진 석재와 썩은 목재만 새것으로 갈고 다른 것은 옛날 것을 그대로 사용하여 옛 모습을 유지하기때문에 원래 건축물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런점에서 최근에 방화로 숭례문 문루가 불타버리고 다시 복원되었다고 해서 국보1호로의 상징적 의미와 가치가 없어지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해체수리를 할때 발견된 상량운에서 1479년 (성..

진주 청계서원, 목화를 처음 재배한 정천익을 모신 서원

진주성내 옛 경상우병영 관아가 있었던 북장대 안쪽에는 일제강점기에 이곳에 경남도청이 들어서면서 옛 관아건물들은 남아 있지 않고 지금은 청계서원과 사당인 경절사가 들어서 있다. 청계서원은 고려초 거란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정신열과 우리나라에서 목화를 처음 재배한 인물인 정천익을 모신 서원이다. 청계서원은 조선후기 순조대에 진주 대평면 남강변에 세워졌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던 것으로 해방이후 진주성으로 옮겨와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후진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세워졌던 서원이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가문의 유력인물을 모시는 사당으로 변질되면서 많은 병폐가 생겨나던 시기에 세워진 전형적인 서원이라 할 수 있다. 청계서원은 가운데 강학공간인 강당이 있고, 양쪽에 사당인 경덕사와..

국립진주박물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박물관건축물

1984년에 개관한 국립진주박물관은 경남지역의 선사시대와 가야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세운 박물관이었는 금관가야의 수도 김해에 가야문화를 소개하고 유물을 전시하는 국립박물관이 세워짐으로써 지금은 임진왜란과 관련된 유물을 주로 전시하는 역사박물관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임진왜란의 격전지이자 조선후기 경상우병영이 주둔하였던 진주성 내에서 관아와 일제강점기 경남도청이 있는 지역에 세워졌다. 전시실은 임진왜란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관련유물을 전시한 임진왜란실과 서부경남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한 역사문화실, 재일교포 김용두가 수집하여 기증한 문화재를 전시한 두암실로 구성되어 있다. 진주박물관은 청주박물관과 함께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목탑을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건물의 구조와 형태 등에서..

강화 석모도 낙가산(해발235m)과 보문사 마애석불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 중 하나인 보문사가 있는 석모도는 강화도 서쪽편에 위치한 큰 섬으로 해명산, 낙가산, 상봉산이 있는 남쪽섬과 상주산이 있는 북쪽섬을 연결한 간척지가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는 큰 섬이다. 남동쪽 해발 300m 정도 되는 3개의 산이 있어 행정구역상 명칭은 삼산면으로 되어 있다. 그 중 보문사는 가운데 산인 해발 235m의 낙가산 중턱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서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강화도에서도 바다를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웅장하고 빼어났기때문에 관음보살이 거처하는 곳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낙가산은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이지만 서해바다를 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낙가산 정상에 올라서면 남쪽으로 불음도.주문도를 비롯한 작은 섬들이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며 큰 섬으로 막혀 있지..

한국의 풍경 2013.08.05

강화 석모도 보문사, 서해 바다를 내려보고 있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

강화군 석모도에 위치한 보문사는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 여수 향일암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음성지로 손꼽히는 사찰이다. 관음성지는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기도발원을 하게 되면 그 어느곳보다 관음보살을 보살핌을 잘 받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경치가 빼어난 바다를 굽이 내려다 보고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문사는 삼국시대인 신라 선덕왕대인 635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바다에서 건져올린 돌덩이를 부처로 석굴에 모시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대표적인 기도처로 관음성지로 불리어지고 있지만, 실제 사찰에 역사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많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재의 사찰은 조선후기 순조대에 크게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전국 사찰 2013.08.02

진주 경상우병영 관아 건물터와 문루인 영남포정사

진주성은 조선후기 경상우병영이 주둔하던 곳으로 공북문 안쪽 언덕에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근무하던 공간인 운주헌을 비롯하여 관덕당, 공진당 등 관아 건물과 무기고, 화약고 등이 있었다. 옛 관아건물들은 구한말 병영이 폐지되고 전국이 13도로 개편될 때 경상남도 감영이 설치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도청이 부산으로 옮기기 전까지 자연스럽게 이곳에 도청이 설치되면서 옛 관아건물들은 허물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옛 관아 건물터에 인근에 있던 청계서원과 사당이 옮겨져 들어서 있고 옛 관아건물로는 병영과 감영 문루였던 영남포정사가 남아 있고, 공식적인 누각이자 남장대였던 촉석루와 관아 누각으로 사용되었던 북장대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 병영은 국방상 주요한 요지에 설치된 군사조직으로 관찰사 또는 지방관인 목사가 겸..

조선 관아 2013.08.01

진주 창렬사와 비석들, 진주성 싸움에서 순국한 이들을 기리는 사당

진주성은 진주도심 남강변이 있는 성곽으로 둘레 1.7km의 내성과 4km의 외성으로 구성된 상당히 큰 규모의 성곽이다. 경상도 남해안에서 섬진강을 따라서 호남평야와 연결되는 교통로을 지키는 요새로 삼국시대 백제가 토성을 쌓은 이래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조선시대에는 경상우병영이 주둔하는 곳이었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과 2차례에 걸친 큰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1차 진주성싸움은 김시민장군의 지휘 아래 3,800여명의 군사로 2만명의 왜군을 물리친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이이다. 2차 진주성싸움은 정유재란 때 왜군의 주력부대가 호남평야를 장악하기 위해 5만여명의 대군을 이끌고 와서 벌인 싸움으로 비록 황진.최경회가 이끄는 관군과 김천일이 지휘하는 의병이 모두 순국한 끝에 패전한 전투이기는..

진주 호국사, 진주성을 지키던 승병들이 거처했던 사찰

진주 호국사는 진주성내에 위치한 사찰로 진주성내 승병들이 거처했던 곳이다. 호국사는 고려말로 당시 남.서해안 지역에 극심했던 왜구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한 승병을 양성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로 원래 이름은 내성사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최대의 지상 전투라 할 수 있는 2차에 걸친 진주성싸움에 참여하여 많은 희생을 치루었으며, 숙종으로부터 호국사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국방체제가 정비되고 전국의 주요 국방상 거점에 산성을 쌓는 승병들이 많이 동원되었으며, 호국사 또한 경상우병영 주둔지인 진주성내 산성을 축성하고 관리하는 승병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호국사는 진주성 서장대와 진주성싸움 희생자를 위한 사당인 창렬사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진주성 내에는 경상우병영 관..

전국 사찰 201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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