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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797

[스페인 여행] 알함브라 성곽과 정원

그라나다 동쪽편 높은 산맥을 배경으로 한 언덕위에 세워진 요새인 알함브라 궁전은 9세기에 요새로 처음 세워진 곳이다. 아랍어 '붉은 성'에서 유래한 이 성곽은 아랍 성곽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알함브라 성곽은 원래는 언덕끝에 세워진 견고한 요새인 알카사바만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13~14세기 토후국인 나스리드 왕조가 들어서면서 알카사바 동쪽편 대지에 알함브라 궁전과 이슬람사원, 주거지역을 만들서면서 그 성격이 중세 읍성과 비슷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라나다는 언덕위에 세워진 알함브라 성곽은 읍성을 이루고 있는 내성과 주거지역인 알바이신 지구 뒷쪽편으로 성벽을 쌓아서 외성을 이루고 있어 요새도신 콘스탄티노플 보다는 못하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견고한 방어시설을 갖춘 도시였다. 이런 튼튼한 방어시..

스페인(Spain) 2013.07.12

[스페인 여행] 그라나다 주택가, 알함브라 언덕 아래 걷기 좋은 길

그라나다는 스페인 마지막 이슬람 통치자였던 토후국 Nasrid'가 1491년 카톨릭군주인 이사벨과 페르난도가 함락되기전까지 그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알함브라 궁전으로 유명한 알함브라 언덕은 원래 유대인들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슬람 통치자들이 카톨릭 군주와 협상을 통해서 이 지역을 떠나면서, 남은 유대인들과 이슬람교도들이 살 수 있었던 지역이 알바이신 지구라 불리는 알함브라 성곽 북쪽편 주거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알함브라 성곽 주변의 주택들은 대부분 하얀색 칠을 한 고풍스러운 주택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알함브라 성곽 입구에서 대성당이 있는 그라나다 도심까지는 걸어서 20~30분 정도 걸리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며, 알바이신 지구와 함께 그라나다에서는 가장 오래된 주택가인 것으로 여겨진다. 알함브..

스페인(Spain) 2013.07.12

[스페인 여행] 그라나다 대성당 (Cathedral)

그라나다 대성당(Cathedral)은 1521년에 건립되기 시작하여 18세기까지 지어진 고딕-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다. 그라나다 도심 중앙에 위치한 이 성당은 원래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지어진 것으로 세비야나 코로도바와는 달리 기존의 이슬림 사원 건축을 재활용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대성당은 처음에는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지만, 돔형 지붕을 비롯하여 넓은 실내공간 등 바티칸 성당에서 볼 수 있는 건축양식을 적용한 르네상스 양식이 대부분이며 말발굽모양의 아치에서 이슬람 영향을 받은 무데하르 양식도 볼 수 있다. 이 대성당은 스페인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 중 하나인데 돔형 천정 아래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다. 이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신약성서의 내용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대성당 동쪽편에..

스페인(Spain) 2013.07.12

[스페인 여행] 그라나다 도심 거리 풍경과 기차역

스페인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그라나다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자리잡고 있는 인구 30 정도 도시이다. 그라나다는 해발 670m 정도의 고도가 높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산맥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그라나다 알함브라 성곽 북쪽편 언덕에는 이 지역에서 사람이 처음 정착했고, 유대인 및 이슬람 사람들이 주거지인 알바이신 지구가 있다. 그라나다는 알함브라 성곽과 알바이신 지구를 중심으로 이 곳을 통치했던 이슬람 토후국인 'Nasrid'왕국이 번성했으며, 이슬람 사람들이 스페인에서 마지막으로 통치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알함브라 성곽과 알바이신 지구가 이슬람 토후국 시절의 그라나다를 상징한다면, 알함브라 언덕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현재의 도심은 대성당을 중..

스페인(Spain) 2013.07.12

진주 진주성(사적118호), 내성 동문인 촉석문과 동쪽 성벽

진주시 남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사적 118호로 지정된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의 현장이자, 경상우도 병마절도영이 있었던 곳이다. 진주성은 백제가 쌓은 거열성이 있었던 곳으로 원래 토성이었던 것을 고려 공민왕대에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석축성을 쌓았다고 한다. 진주성은 서울의 풍납토성, 행주산성, 공주 공산성, 부여 부소산성 등과 마찬가지로 강을 끼고 있는 평지에 나지막한 동산에 위치하고 전형적인 백제 읍성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는 성곽이다. 지금은 둘레 1.7km 규모의 외성만 남아 있지만 동쪽으로 외성이 있어 전체 규모는 둘레 4km 정도의 읍성이었다고 한다. 진주성 남쪽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서쪽과 북쪽으로는 하천이 흘러서 해자 역할을 했..

서울 풍납동토성 (사적11호, 풍납토성), 마을이 형성되었던 북쪽편 성벽

서울 풍납동토성(일명 '풍납토성')은 몽촌토성과 함께 백제가 터를 잡고 국가를 세운 하남 위례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이다. 성의 규모는 둘레가 2.7km에 이르는 읍성으로 삼국시대 초기 읍성국가의 성(城)으로는 상당히 큰 규모로 남쪽편 몽촌토성과 함께 당시로서는 큰 규모의 도시였을 것으로 보인다. 백제가 건국한 이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압박을 받아 웅진(공주)로 천도했던 5세기말까지 500연 가까운 세월동안 백제의 수도로 한강변을 끼고 있어 많은 배들이 정박했던 물류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곳이다. 성벽은 한강변 늪지와 평지였던 곳에 인위적으로 흙을 다져서 성벽을 쌓은 판축식토성으로 전형적인 백제 토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은 폭 40m, 높이 11m에 이르며, 당시로서는 대규모 토목공사..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보물 215호), 사모바위 아래 바위에 새겨놓은 불상

서울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은 북한산 봉우리들 중 진흥왕순수비가 있었던 비봉과 사모바위 아래 바위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불상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마애불상으로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으로 고려초 지방의 호족세력이 그들의 권위를 표현하게 위해 대형 석불이나 철불을 조성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마애불상으로 평면적인 형태를 보여주지만 동시대에 만들어진 대형 석조불상들에 비해서는 조각수법이 뛰어난 편에 속하는 불상으로 전체적으로 석굴암 본존불이나 하남동 춘궁동사지에서 발굴된 철조불상을 참조하여 조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마애불상은 중국 당나라 고승은 승가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찰인 북한산 승가사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불상 아래에는 보물 1000호로 지정된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상이 있으며, 승가..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과달키비르강을 건너는 로마다리 (Puente Romano)

코로도바 도심 남쪽을 흐르는 과달키비르강을 건너는 로마 다리는 오랜기간 동안 남쪽지방에서 코르도바로 들어오는 유일한 길이었던 다리이다. 이 다리는 로마시대부터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수차례에 걸친 리모델링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다리의 모습은 로마 도심에 건설된 로마시대 다리의 모습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약 331m 길이에 16~17개의 아치와 교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리 남단에는 14세기 탑인 칼라오라의 탑(Torre de la Calahorra)은 현재 로저 가르디 박물관인데, 이슬람 문명 당시 3개 문화(이슬람, 기독교, 유대교)의 지적 성취를 엿볼 수 있다. 칼라오라의 탑을 지나서 다리를 건너면 코르도바의 중심인 옛날 이슬람 사원이자, 현재는 카톨릭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메스키타와 궁전요새..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메스키타(Mezquita), 이슬람 사원과 카톨릭 성당 건축물이 공존하는 곳

알함브라 궁전과 함께 스페인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이슬람 문화의 흔적인 코르도바의 이슬람 사원이었던 메스키타(Mezquita)이다. 스페인을 통치했던 후기 우마이야를 세운 알라흐만 1세가 서고트족 교회부지에 785년에 건설하기 시작해서 10세기까지 계속 확장하였다. 전체 면적이 약 23,000㎡ 규모로 약 2만5천여명의 신자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 중의 한곳이었다. 내부 기도실에는 1,293개의 기둥이 있는데 일부는 서고트족 교회, 코르도바의 로마시대 건물, 고대 카르타고의 건축물 자재들로 만들었다고 한다. 메스키타의 주 출입문은 북쪽편 종탑 아래 스페인 특유의 양식인 무데하르식 성문이며, 정문 이외에도 여러곳에 출입문을 두고 있다. 이슬람 사원 건물로 세워진 이 곳 ..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메스키타, 오렌지 나무가 있는 안뜰 (Patio de los Naranjos)

코르도바의 중심인 메스키타(Mezquita)는 8세기 스페인을 통치한 우마이야 왕조가 세운 세계 최대의 이슬람 사원 중 하나이다. 이슬람 통치기간 코르도바는 콘스탄티노플과 함께 그리스.로마의 학문적 전통을 이어왔던 학문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메스키타는 코르도바를 상징하는 장소로 2만5천명 이상의 신자들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이슬람 사원이었다. 메스키타(Mezquita)에는 많은 출입문을 두고 있지만, 다른 이슬람 사원과 마찬가지로 사원 북쪽편에 무데하르식으로 만든 정문이 있고, 정문을 통과하면 이 사원의 규모에 걸맞는 오렌지나무가 심어진 넓은 안뜰이 있다. 이슬람 사원의 안뜰은 원래 기도를 하기전에 세수를 하는 곳으로 이 곳이 카톨릭성당으로 바뀐 뒤에도 없어지지 않고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메스키타, 이슬람 사원 기도 공간

스페인에 후기 우마이야 왕조를 세운 알라흐만 1세가 8세기에 건설하기 시작하여 10세기에 완공된 메스키타는 2만5천명의 신자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 사원 중 하나였다. 코르도마를 점령한 스페인의 카톨릭 군주가 이슬람 사원이었던 메스키타의 중앙부분만 허물고 대성당을 건설했기때문에 메스키타는 이슬람사원 건물과 르네상스 양식의 카톨릭 성당건물이 합쳐져서 약간은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공간 배치를 보이기도 하지만 상당이 넓은 공간임에도 웅장한 느낌은 배제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메스키타에서 기도를 올리기전 세수를 하는 공간인 안뜰을 지나서 출입구를 들어서면 안쪽의 첫 12개의 복도와 기둥들, 아치들이 8세기 이슬람사원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 850개의 둥근 기둥들은 줄무늬..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메스키타에 세워진 대성당

스페인의 카톨릭 왕조가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세력을 축출한 후 많은 남아 있던 많은 이슬람 사원들은 없어졌지만, 주요 도시에 존재했던 일부 이슬람 사원들은 건축물로서 규모가 크고, 웅장하게 지어졌기때문에 카톨릭 성당으로 개조한 경우도 있었다. 이슬람 사원을 카톨릭 성당으로 개조한 대표적인 곳이 세비야 대성당과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이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는 중세 스페인을 통치한 우마이야 왕조가 건설한 신자 2만5천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당대 최대의 이슬람 사원이었기때문에 성당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세비야 대성당과는 달리 이슬람 사원의 원형이 많이 남아 있다. 코르도바 메스키타에 세워진 대성당은 기존의 이슬람 사원을 허물지 않고 거대한 사원 중앙부분을 철거하고 르네상스 양식으로 대성당을 세웠다. 메스..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메스키타 주변 거리

코르도바를 동서로 흐르는 과달키비르강 북쪽편은 중세 스페인을 통치한 아랍 왕조의 수도였던 도시이다. 이 도시는 과달키비르강을 남쪽 경계로해서 북쪽편에 성곽을 쌓아서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도시의 중심에는 이슬람사원인 메스키타가 있고, 메스키다 주변에 궁전인 알카사르와 여러 공공기관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북쪽편으로 유대인 지구를 포함하여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도시의 중심인 메스키타 주변은 중세 아랍인들언 건설한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좁은 골목길과 중정을 가진 크고 작은 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현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자동차가 다닐수 있는 도로는 거의 없는 편이며 대부분은 마차 1대가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길을 형성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유명한 관광지 중의 하나이지만 오래된 중세풍의..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여행] 코르도바 메스키타를 건설하기 사용된 로마시대 건축 유물

메스키타는 8세기 이슬람 왕조에서 건립하기 시작하여 9~10세기에 이르는 동안 끊임없이 확장되었는데 그 규모는 당대 최대의 이슬람사원 건축물이 되었다. 전체면적은 23.000 m²로 한꺼번에 2만5천명 이상의 신자를 수용할 수 있었다. 건축자재로는 옛 서고트족의 성당, 코르도바의 로마시대 건축물,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유적지에서 가져온 건축자재를 포함하고 있으며 기도실에는 1,293개의 기둥을 만들었다. 현재 메스키타 내에는 이 거대한 이슬람 사원을 건축하기 위해서 사용한 옛 건축물들이 박물관 형태로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 기둥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한 로마시대에 만든 신전건축물의 석재들을 많은 것으로 보인다. 전시된 유물들은 대리석으로 만든 코린트식 또는 이오니아식 기둥의 머리들과 사원 바닥에 깔았던 ..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중세 읍성 성곽

코르도바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존재했던 도시로 지금도 로마 신전과 다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후 서고트왕국의 지배를 거쳐서, 8세기 이슬람왕조가 코르도바를 수도로 삼으면서 번성을 누렸다. 코르도바는 콘스탄티노플과 함께 중세 학문으로 중심지로서 고대 그리스의 학문적 성과들을 유럽인들에게 남겨준 스페인에서도 가장 유서깊은 도시이다. 스페인 동남부 안달루시아지방을 흐르는 과달키비르 강을 끼고 있는 코르도바는 거대한 이슬람 사원인 메스키타를 중심으로 도시를 형성하고 있으며, 오래된 유적들이 도시 곳곳에 산재해 있다. 코르도바는 과달키비르 강변을 중심으로 사방에 성곽을 쌓은 중세 읍성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중세시대에 쌓은 성곽들이 도시 곳곳에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요새화된 도시인 톨레도나 그라나다와는 달리 코..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르도바 유대인지구 (Juderia)

중세시대 스페인은 아랍과 카톨릭 세력이 공존했던 지역으로 로마에 의해 고향인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되었던 유대인들 북아프리카를 거쳐서 많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서칼리프라고도 불리었던 이슬람왕조가 수도로 정한 코로도바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도심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의 오래된 도시에는 유대인들이 살았던 유대인지구가 있는데, 코르도바의 유대인지구는 그 규모도 크고 오랜 기간동안 존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코르도바의 유대인들은 이슬람 문명 하에서 우수한 사람들에 속했던 것으로 보이며 코로도바 출신 유대인 철학자인 마이모니데스를 비롯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역사에 그 흔적을 남겨 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르도바의 유대인지구는 메스키타 북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좁은 골목길에 꽃들로 장식된 흰..

스페인(Spain) 2013.07.08

[스페인 여행] 코로도바 도심의 로마신전 유적

코르도바는 안달루시아지방을 지나서 지중해로 흘러드는 과달키비르 강 유역에 있는 오래된 도시이다. 이 도시는 카르타고인들에 의해서 세워졌다고 짐작되며 로마제국하에서 크게 번성했다고 한다. 아마도 지중해에서 강을 이용해서 작은 배가 들어올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었기때문에 교통의 중심지로서 도시가 번성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코로도바는 카르타고, 로마, 서고트왕국, 이슬람, 스페인을 거치면서 오랜 기간동안 번성했던 도시이다. 코르도바는 로마시대에 스페인을 통치하는 중심지역으로서 크게 번성했던 것 도시로 로마시대 유적들이 여러곳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슬람 세력이 코르도바에 당대 최대의 사원을 건설할 때 옛 로마 유적들에 남아 있던 석재들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도 코르도바 도심 한 가운데..

스페인(Spain) 2013.07.08

문경 진남교반과 토끼비리, 옛사람들이 오가던 영남대로 옛길

조선시대 영남지역에서 서울로 가는 육상교통로 중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던 길을 영남대로라고 하는데 대체로 동쪽편 죽령을 넘어가는 길을 영남좌로,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길을 영남중로, 추풍령을 넘어가는 길을 영남우로라 일컫는다. 그 중 문경새재(조령)을 넘어서 음성, 이천, 광주를 거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이 가장 가까워 많이 이용되었다고 하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14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 영남대로 옛길은 여러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 중 잘 알려져 있으며 옛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길이 조령을 넘어가는 문경새재와 토끼비리라고 불리는 고모산성 남쪽 벼랑길에 잔도로 지어길이 있다. 고모산성과 토끼비리 옛길이 있는 문경 영강 일대를 진남교반이라 부르며 경북지역 언론사에서 선정한 경북팔경 중 제1경으로 손꼽히는..

한국의 풍경 2013.07.02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보물 1000호), 당나라 고종대에 활동한 서역출신 승려의 조각상

서울 구기동 북한산 비봉과 사모바위 아래에 위치한 승가사는 통일신라시대인 756년에 창건한 사찰로 당나라 고종대에 활동한 서역출신 승려 승가대사를 기리기 위해 이름 지어진 사찰이다. 승가사는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불전을 비롯한 전각들 중에 오래된 것은 없지만 사찰 뒷편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고려시대 승려의 조삭상인 승가대사 석좌상과 사모바위 아래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이 남아 있다. 사찰 뒷편 석굴 안에 모셔진 보물 1000호로 지정된 승가대사 석좌상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승려의 모습을 불상처럼 조각상으로 만들 것이다. 조각상은 고려초기 현종대인 1024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는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상제는 길고, 하체는 넓게 표현하고 있어 당시의 불상 조각 경향을 잘..

서울 풍납동토성(사적11호, 일명 '풍납토성'), 성벽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남쪽과 동쪽 성벽

풍납토성은 서울 송파구 풍납동 일대 한강변에 남아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토성이다. 백제가 한강일대에 도읍을 정한 이래 수백년간 백제의 수도였던 위례성을 이루고 있는 도성 성격의 토성으로 인근에 있는 몽촌토성과 함께 초기 백제 토성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풍납토성은 둘레가 4km에 이르는 성곽으로 조선시대 읍성에 비해서도 규모가 작지 않은 편이다. 고조선과 삼한시대 한반도 서남해안에 촌락을 이루면서 형성되었던 읍성국가들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편으로 강을 끼고 있어 물류가 편리하고 적으로부터 방어에 용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풍납토성 주변에 주택들이 들어서 있지만, 원래는 토성바깥쪽으로 물이 흐르면서 자연적인 해자구실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풍납토성은 1925년 홍수 한강변쪽 일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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