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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706

문경 고모산성, 옛 영남대로(토끼비리)와 진남교반이 내려다 보이는 남쪽편 성벽

문경 고모산성은 삼국시대 신라가 한강유역으로 진출을 꾀하기 시작한 5세기경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이다. 영남과 중부지방을 연결하는 영남대로가 백두대간 문경새재 입구 조령관문에서 12 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의 오정산, 서남쪽 어룡산 등이 길을 막고 있으며, 산성 서쪽으로는 문경시 가은읍에서 흘러내려오는 영강이 문경새재에서 흘려내려오는 조령천과 합류하여 흐르고 있다. 산성있는 고모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길을 막고 있는 병목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관문성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산성은 전체 길이 약 1.6km에 이르며 작은 봉우리 사이에 약간의 평지가 있고, 영강이 흐르는 서쪽으로 작은 계곡이 형성되어 있어 전체적으로는 포곡식산성처럼 보인다. 허물어진 성벽에서 작은 돌을 촘촘하게 쌓..

문경 고모산성, 남문터에서 서문터까지 성벽

문경 고모산성은 영남지역과 서울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내륙교통로에 해당하는 영남대로에 위치한 삼국시대 산성으로 주요한 길목을 지키는 관문성에 해당하는 산성이라 할 수 있다. 이 산성은 백두대간 문경새재 부근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조령천과 문경시 가은읍에서 흘러내려오는 영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는 고모산을 둘러싸고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고모산성이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조건은 영남지방에서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교통로인 문경새재(조령) 관문과 남쪽으로 약12km 정도 떨어져 있다. 고모산성 동쪽으로는 해발 810m의 오정산을 비롯하여 높은 봉우리들이 백두대간과 연결되어 있고 남서쪽으로는 해발617m어룡산 등의 봉우리들이 산맥을 이루고 있어, 문경새재에서 남쪽으로 지나가기 위해서는 산성옆을 흐르는 영강과 마찬가지..

문경 석현성, 영남대로 옛길 토끼비리를 막고 있는 고모산성 아래 조선시대 성곽

문경 진남교반 일원은 삼국시대 쌓은 고모산성과 삼국시대 고분, 조선시대 고모산성을 확장한 석현성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문경새재를 넘기 위해 지나야했던 토끼비리 옛길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일대는 영남지방에서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많지 않은 길 중 죽령과 함께 가장 많이 이용했던 조령(문경새재)를 넘기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이다. 이곳은 조령에서 발원하는 조령천과 문경 가은읍에서 흘러내려오는 영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남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은 거의 이 길 밖에 없는 지역으로 지금도 옛 영남대로를 따라서 연결되는 3번국도, 서울.부산간 가장 가까운 고속도로라 할 수 있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옛 철도까지 이곳을 지나가고 있다. 문경 석현성은 삼국시대 신라가 이 길을 통제하기 위해 쌓은 고모산성 바깥쪽으로 ..

문경 봉암사, 현대불교에 큰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수행사찰

봉암사는 문경시 가은읍 희양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다. 김천 직지사의 말사로 되어 있지만 승려들이 수행하는 대표적인 참선승방으로 사찰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조계종 내에서도 그 위상이 높다. 사찰내에는 국보로 315호로 지정된 지증대사탑비를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지증대사 승탑, 정진대사 승탑과 탑비, 삼층석탑, 극락전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사찰의 가람배치는 원래 삼층석탑이 있는 경내 마당을 중심으로 대웅전과 요사채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최근에 동쪽편에 큰 규모의 대웅전을 짓고 주불전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사찰 서쪽편에는 대표적인 참선도량답게 큰 규모의 승방을 두고 있다. 이 사찰은 일반 신도에는 석가탄신일에만 개방하고 있는 참선도량답게 다른 사찰에 비해서 승려..

전국 사찰 2013.06.20

[서울 성곽] 광희문, 한양도성의 남동쪽 성문(남소문)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한양도성에 있던 4개의 작은 성문 중 남동쪽 방향의 출입문인 광희문이다. 광희문은 서울남동쪽 옥수동 나루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출입구였으며, 흥인지문(동대문)과 광희문 사이에는 조선시대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군영이 있었던 곳이다. 광희문 성문과 성루는 도심에 있었음에도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한국전쟁때 파괴된 것을 1973년 복원하였다고 한다. 성벽과 성루는 별로 높지 않고, 오랜 세월동안 보수가 이루어져서 그런지 다양한 형태의 돌로 성벽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 광희문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보면 인조 2년(1624)에 이괄이 난을 일으켰다가 수구문을 통하여 도망갔고, 병자호란(1636)때에는 임금이 역시 이문을 통과하여 남한산성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

북한산성(사적162호) 중성문, 대서문과 행궁 사이에 쌓은 중성 출입문

북한산성의 정문인 대서문과 북한산성 마을이 있던 등운각갈림길을 지나서 계곡을 따라서 등산로를 한참 올라오면 만날 수 있는 성문이 중성문이다. 중성문은 북한산 노적봉과 중취봉 사이에 쌓은 중성에 설치된 성문이다. 이 중성문 안쪽이 북한산성 내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곳에 별도로 중성을 축조한 이유는 이곳이 지형이 평탄하여 대서문이 적에게 공략당할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그 중간 병목같은 위치에 중성을 쌓고 성문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중성문을 들어서면 북한산성 계곡에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설치된 정자인 산영루를 비롯하여, 북한산성을 거처간 관리들의 공덕비들이 세워져 있는 비석군이 있고, 그 안쪽에 국왕의 피신처로 마련한 행궁을 비롯하여 식량과 무기를 저장하던 창고, 북한산성 승병들을 지휘하던 ..

강화산성(사적132호), 남문 안파루와 주변 성곽

강화산성은 전체 둘레 7.2km의 큰 성곽으로 4개의 성문과, 2개의 수문, 남.서.북장대, 암문 등이 출입시설과 방어시설을 두고 있다. 현재의 강화산성은 병자호란때 파괴된 것을 숙종대에 강화유수 허질이 대대적인 개축을 하면서 고려시대 궁성의 내성 규모로 남산과 북산을 연결하여 석축형 형태로 쌓은 것이다. 강화산성에는 남문인 안파루, 동문인 망한루, 북문인 진송루, 서문인 첨화루를 두고 있는데 그 중 남문이 첨화루는 강화읍 남쪽편 지역에서 산성으로 들어오는 출입문이다. 남문은 서북쪽 하점면과 송해면을 제외한 강화도 대부분 지역 사람들이 사용했기때문에 사람의 통행이 가장 많은 성문이었으며, 자연스럽게 남문 주위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남문을 이용한 사람의 통행이 많았기때문에 서울 보신각종처럼..

서울 청계천, 오간수교(동대문시장)에서 황학동(벼룩시장)까지

청계천에는 약 24개의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그 중 한양도성의 동쪽편 경계가 되는 성벽아래 있던 오간수문을 헐고 세웠던 오간수교가 있다. 오간수문은 아치형 수문이 5개가 있는 청계천 수문으로 한양도성 방어시설 중 하나였기때문에 쇠창살로 막혀 있었고 그곳에 부유물이 걸리고 토사가 쌓아 조선이 한양에 도읍을 정한 이래로 항상 문제가 되었다고 하며 수차례의 준설작업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영조대의 청계천 준설이다. 청계천 오간수문은 구한말 근처 성벽과 함께 허물어졌다. 근처에는 남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개천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이간수문이 최근에 발굴되어 옛 오간수문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청계천 수문이 있던 오간수교 부근 청계천일대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시장으로 일제강점기 이래로 의..

한국의 풍경 2013.06.17

강화산성(사적132호), 남산 정상(해발223m) 남장대와 주변 성곽

강화산성에서 군사를 지휘하던 남장대가 있는 남산은 해발 223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주변에 고려산(해발 436m)을 제외하고는 높은 산이 없어 멀리 한강하구와 개성지역, 동쪽으로는 문수산성, 갑곶나루와 염하(강화해협), 서북쪽으로는 강화고인돌이 있는 송해면 일대의 들판과 해안, 서쪽으로는 고려산 고갯길과 국화저수지, 동남쪽으로는 팔만대장경을 새겼던 선원사 절터가 있는 선원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강화유수부 관아가 행궁이 있는 강화읍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강화산성은 둘레 7 km에 이르는 규모가 큰 산성이지만 실제로는 고려시대 대몽항전을 위해 쌓았던 성곽 중 고려궁 주변에 쌓은 궁성에 해당하는 내성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강화산성은 서울에서 강화..

서울 을지로 훈련원공원, 조선시대 군사훈련을 담당하던 훈련원 옛터

훈련원은 조선시대 군사의 훈련과 무반을 양성하던 관청으로 고려말에 처음 생긴이래로 조선이 건국되면서 태종대에 훈련관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역사공원(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처음 생겼다가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훈련원은 무예를 훈련하고 병서와 진법등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정3품 사(使)를 중심으로 군자좨주, 사마, 사직, 부사직, 참군, 녹사 등의 관직을 두었다고 한다. 훈련원의 중요한 역할은 관리를 뽑는 무과를 주관하는 등 무관을 선발하는 일과 궁왕직속 부대라 할 수 있는 내금위 등의 훈련을 주관하고 각 부대의 병기를 검열하는 등 군사훈련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훈련원은 그 역할이 조금씩 변하기는 했으나 구한말까지 존재했다가 1907년 군대해산과 함께 해체되었다. 서울 을지로5가에 위치한 훈련원공원은 옛..

강화산성(사적132호), 석수문에서 남장대 아래 암문까지

강화산성 성벽은 서문과 석수문을 지나면 해발 223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강화산성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여 남장대가 설치된 남산으로 성벽이 이어진다. 남산은 관아와 행궁이 있는 북산에 비해서 경사가 가파르고 주변과 마을이나 다른 지역과 연결되는 고갯길이 많지 않은 편으로 실제로 남산 성곽은 적이 공략하기 힘들고 주변지역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도 많지 않은 편이며 남산 정상 남장대 아래 암문을 통해서 능선길을 따라 강화도 남쪽지역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 강화산성은 강화읍 남쪽 남산과 북쪽 북산을 연결한 읍성의 성격을 갖고 있는 산성인데, 산능선을 따라 석축을 쌓은 지역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에는 용이하나 큰길과 연결되는 동쪽과 서쪽은 평지에 석축을 쌓았기때문에 실제로 적의 공격에 취약한 부분..

서울 선유도공원 카페테리아 나루, 한강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정자와 같은 곳

한강을 건너는 다리인 양화대교 중간 선유도공원에 있는 작은 카페인 '나루'이다. 공공시설인 공원에 있는 쉼터로 일반적인 카페와는 다른 성격이지만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한강변에 위치하고 있고, 작지만 아담하게 지어진 건축물로서도 조형미가 뛰어나 보이는 곳이다. 건물 내부는 공원 쉼터답게 1층은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 2층은 차와 음료수를 즐길 수 있는 카페로 구성되어 있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북쪽과 동.서쪽이 전면유리로 되어 있어 옛 정자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는 곳이다. 카페 건너편에는 조선시대 한양의 고관대작들이 한강 경치를 감상하던 망원정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카페 또한 망원정과 같은 기능을 가진 장소라 할 수 있다. 선유도는 옛날 한강변 선유봉이라는 산이 있었던 곳으로 1960년대 여의도를..

한국의 풍경 2013.06.10

강화산성(사적132호) 서문 첨화루와 구한말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던 연무당 옛터

강화읍 중심부를 지나서 강화지석묘 방향의 48번 국도에 자리잡고 있는 강화산성의 서문과 성루인 첨화루이다. 지금은 서문 옆에 도로가 있지만 원래는 성벽이 북쪽 북산과 남쪽의 남산을 연결하고 있다. 강화산성은 전체 약 10 km에 이르는 큰 규모의 산성이자 읍성의 기능을 같이 가지고 있다. 산성 성곽은 북산 능선과 남산 능선을 따라서 쌓은 석축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도로가 지나가고 마을이 형성된 남문과 서문 주위의 성벽은 대부분 허물어졌던 것을 최근에 복원되고 있다. 서문 주위의 성벽 서장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언덕까지의 성벽은 대부분 훼손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서문 주변 일부만 최근에 성벽을 복원해 놓고 있다. 서문 안쪽으로는 구한말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장소인 연무당 옛터가 있고, 또한 ..

문경 봉암사 삼층석탑(보물 169호)

문경 봉암사 옛 주불전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금색전 앞 마당에 세워져 있는 보물169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다. 석탑 조형미가 절정을 이루던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당시 일반적인 석탑과는 달리 기단부가 1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상륜부 머리장식이 온전히 남아 있어 동시대 석탑의 기준이 된다고 한다. 전성기때 만들어진 석탑답게 전체적으로 구성품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는 석탑이다. 문경 봉암사는 하얀 바위산인 희양산(해발999m)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말 호족의 지원을 받아 크게 번창했던 선종계열의 구산선문 중 하나인 희양산문의 종찰이었다. 이 사찰의 창건내력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통일신라말 지증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

강화산성(사적132호) 북문 진송루와 주변 성벽

강화읍 관아와 행궁이 있던 관청리에서 북산 고갯길을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강화산성 북문과 문루인 진송루가 있다. 강화산성 북문은 행궁에서 한강하구 바닷가에 위치한 송해면 일대와 연결해주는 교통로이지만, 서문이나 동문을 통해서도 송해면으로 갈 수 있기때문에 통상적인 교통로라고 보기는 힘들고 한양도성의 북문인 숙정문과 마찬가지로 강화산성이 함락되는 경우 국왕이 피신할 수 있는 도주로에 해당하는 길로 보인다. 북문이 있는 고갯길은 남.서.동문과 달리 비고적 높은 고갯길이며, 주변에는 민가가 거의 들어서 있지 않으며, 한강하구에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북문 동쪽으로는 북쪽해안을 경계하면서 군사를 지휘할 수 있는 북장대가, 서쪽으로는 고려산 북쪽 송해면 일대를 감시할 수 있는 서장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

서울 북한산성, 계곡 입구에서 등운각 갈림길까지 등산로와 북한동 주민들이 살았던 흔적

북한산 등산로 중 가장 많은 등산객이 이용하는 길은 아마도 북한산성계곡이 시작되는 북한산성입구일 것이다. 이곳에서 출발하여 북한산성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등운각 갈림길에서 백운대로 오르는 길과 계곡을 따라서 계속 올라 대남문 부근 문수봉을 비롯하여 북한산성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봉우리들을 오를 수 있다. 등산로는 북한산계곡을 따라서 오르는 길과 북한산성 정문인 대서문을 통해서 오르는 자동차길을 이용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등산객은 계곡의 정취를 느끼면서 걷기 위해 계곡길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산성입구에서 등운각 갈림길까지는 2011년 이지역이 정비되기 전까지는 많은 주민들이 살았던 산성마을이 있었다. 대체로 숙종대 북한산성이 건설되면서 산성내 병사들이 주둔하고 승병들을 위한 크고 작은 사찰들이 생기..

한국의 풍경 2013.06.04

대구근대역사관, 구한말 이후 대구의 변화를 보여주는 전시관

대구는 조선시대 경상도 관찰사가 근무하는 경상감영이 있었던 도시로 낙동강 수운과 주요 교통로가 지나가는 교통과 행정의 중심도시였다. 원래 경상감영은 경주, 안동 등 여러지역을 순회하였으나 조선중기 선조대에 대구에 감영이 설치되었다. 구한말에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고 대구역이 1905년에 개통되면서 대구에서 전국 주요도시로의 이동이 쉬워지면서 대구로 인구와 물산이 집중되면서 대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대구에는 1900년대초 서양선교사들의 선교활동 중심지였으며, 경부선 철도의 개통과 함께 일본인들의 요구에 의해 당시 친일파 관찰사였던 박중양이 대구읍성을 허물고 도로를 개설하면서 경상감영을 중심으로 한 행정.군사의 중심지였던 대구는 일본 상인들을 중심으로 경상도 내륙지역의 상업.제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지역박물관 2013.06.03

문경 봉암사 극락전(보물 1574호), 봉암사에서 제일 오래된 작은 불전

문경 봉암사 경내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이다. 이 불전은 외관상 2층건물처럼 보이는 독특한 형태의 건물을 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단층건물이지만, 바깥쪽에 1칸씩 차양칸을 둘러서 2층건물처럼 보인다. 이건물은 신라 경순왕이 피난하였다는 건물이라고 하나, 현재의 건물은 대체로 조선 중.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원래 불전이 있었던 자리로 기단과 초석은 고려시대 것이라고 한다.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희양산 자락에 위치한 봉암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때 지증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시대 선종 구산선문 중 희양산파의 본산이기도 하며 고려초 정진국사가 크게 중창하였다고 한다. 봉암사는 직지사의 말사이기는 하지면 대표적인 참선도량으로 해방이후 참선..

강화산성(사적132호) 북장대터와 주변 성벽

강화산성에는 남산, 북산 그리고 서문 부근 3곳에 장대를 세워놓고 있다. 그 중 북장대는 북산 정상 부근 강화읍내가 내려다 보이는 봉우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강화산성 북장대는 강화읍과 산성 북쪽 송해면 지역과 연결해주는 고갯길에 있는 암문과 비슷한 역할을 하던 북문인 진송루에서 동쪽 능선으로 이어진 성곽길을 따라서 조금만 걸으면 오를 수 있다. 북산이 해발 140m로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인데다 진송루가 고갯길에 위치하고 있어 약 5~10분 정도 걸으면 북장대가 있던 봉우리를 오를 수 있다. 북장대 건물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봉우리까지 걸어서 올라온 수고에 비하면 그 전망은 꽤 뛰어난 편이다. 북장대에 오르면 강화읍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북쪽으로는 한강하구와 그 너머 북녁땅..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승탑(보물137호)와 탑비(국보 315호), 섬세한 조각상이 있는 승탑과 최치원이 글을 지은 탑비

문경 봉암사 경내에 남아 있는 지정된 지증대사 승탑(보물137호)와 탑비(국보 315호)이다. 지증대사 승탑은 통일신라말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을 대표하는 것으로 2층의 기단위에 탑신과 지붕돌을 올려놓은 형태이다. 승탑 각부분에 화려한 조각상을 새겨놓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뛰어난 조각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은 8각형으로 각면이 밑단에는 사자를 조각하였으며, 기단 윗단에는 전설속 동물인 가릉빈가를 새겨 놓고 있다. 이 승탑의 가장 특징부분인 가운데 받침돌에는 당시 악기를 보여주는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을 새겨 놓고 있다. 8각으로 이루어진 탑신에는 앞.뒤로 문을 새겨 놓고 있으며, 사천왕상과 보살의 모습을 조각해 놓고 있다. 탑비는 비는 지증대사의 승탑을 세우면서 그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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