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여행 2706

강화산성(사적 132호), 동문에서 북산으로 연결되는 성벽

강화읍의 주산이라 할 수 있는 북산 해발 140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강화읍 북쪽을 장벽처럼 막아주고 있다. 고려시대 궁궐과 조선시대 행궁, 관아가 들어서 있는 관청리는 대부분 북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북산은 관청리에서 동쪽편 출입문인 동문과 북산 서쪽편 고갯길에 위치한 북문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으며, 능선을 따라서 북문과 서문 사이가 석축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성곽길을 따라서 북산 정상에 올라서면 북쪽으로 멀리 개성 지역 평야와 한강하구, 동쪽으로는 조선후기 강화도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쌓은 문수산성이 한눈에 들어오기때문에 한강하구를 통제하기 좋은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 강화도가 고려시대 이후 국방상 중요한 지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산성의 유적지로 그 중요성이 강..

[서울 성곽] 흥인지문(보물1호), 구한말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한양도성 동대문

동대문이라 부르는 흥인지문은 한양도성의 서쪽 출입문으로 함경도에서 철원, 양주를 거쳐서 들어오는 길을 비롯하여 강원도에서 남양주를 거쳐서 들어오는 길, 영남지방에서 광주를 거쳐서 광나루, 송파나루를 건너서 들어오는 길 등이 동대문과 연결된다. 흥인지문은 태조대(1398년)에 한양도성을 처음 쌓았을 때 처음 지었던 것을 단종대(1453년)에 고쳐지었던 것을 구한말인 고종 6년(1869)년에 대대적으로 수리하여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구한말에 지어진 건축물이지만 당대의 건축양식의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자 한양도성의 성문으로 역사적, 건축적인 가치가 높고 국보 1호인 숭례문과 함께 상징적인 의미로서 보물 1호로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 성문은 화강석을 아치형으로 쌓은 홍예문이며, 문루는 조선시대 ..

강화산성(사적132호), 동문인 망한루와 주변 성벽

강화산성에는 동.서.남.북에 성문을 두고 또한 4개의 암문, 2개의 수문을 두고 있으며,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가 파괴했던 것을 숙종대에 석축성으로 중수하였다. 강화산성 4개의 성문 중 동문은 염하를 건너는 나루터인 갑곶진과 한강을 오가는 선박들이 정박하는 연미정 부근으로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동문은 안쪽으로는 '망한루', 바깥쪽에는 '강도동문'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행궁과 관아가 있는 관청리 일대와 직접 연결되는 출입문으로 주로 강화부를 방문하는 관리들이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산성 동문은 구한말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던 것을 2000년대에 복원하였다. 당시 프랑스군은 동문을 돌파하여 강화부 관아와 행궁을 불태우고 규장각에 있던 많은 도서들을 약탈해 갔다. 동문 동쪽에는 낮은 동..

[대구박물관] 정도사지 오층석탑(보물357호)와 야외 전시장 석조유물

대구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정도사터 오층석탑은 원래 경북 칠곡군 정도사 절터에 남아 있던 석탑이다. 경복궁 야외전시장에 있는 많은 석조유물들처럼 이 석탑도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일제가 경복궁 마당으로 옮겼던 것을 1994년에 대구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는 유물이다. 보물 357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전성기때인 통일신라시대의 영향을 받은 고려초기의 석탑이라 한다. 2층 기단에 5층으로 탑을 쌓은 정형화된 양식의 석탑이다. 2층으로 된 기단 각면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고, 한면에 이 석탑의 조성 내력을 기록한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진 탑신 1층 몸돌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이 새겨져 있으며, 탑안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석탑 조각기술의 절정기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에 비해..

서울 북한산성계곡, 등운각 갈림길에서 행궁터까지

북한산성계곡은 문수봉에서 발원하여 북한산 서쪽으로 흘러내려오는 약 6 km에 이르는 큰 계곡으로 북한산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북한산성계곡을 따라서 이어지는 등산로는 북한산 주봉인 백운대와 함께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로 북한산에 산재한 대부분의 봉우리들과 연결되는 큰 길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숙종대 한양의 취약한 방어력을 보완하기 위해 쌓은 북한산성을 이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와 능선을 연결한 거대한 산성이며, 계곡 주변에는 비상시 국왕이 머물 수 있는 행궁을 비롯하여 산성을 지키는 군사들이나 관료들이 머물고, 식량 등을 저장하는 관아 건물, 북한산성을 지키고 성곽을 수리하기 위해 동원된 승병들을 위한 많은 사찰들이 계곡 주변에 산재해 있다. 북한산성은 사방으로 여러 성..

한국의 풍경 2013.05.24

대구 서상돈 고택, 근대골목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한옥

대구 계산동 근대골목 이상화 고택 맞은편에 있는 서상돈 고택이다. 현재의 건물은 원래의 자리에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규모를 축소하여 복원한 건물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부호들이 많이 살았던 도시형 개량한옥 형태를 하고 있는 건물로 안채, 사랑채와 별채로 보이는 작은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대구 지역 부호였던 서상돈이 살았던 저택으로는 소박하면서 검소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원래 규모에서 축소되었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는 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서상돈은 서울출신으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여러차례 천주교 박해를 피해서 지방으로 옮겨다니다가 대구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대구지역에서 지물행상과 포목상을 하면서 크게 부를 축적하여 당대에 재벌수준이었다고 하며, 천주..

고택_정원 2013.05.22

[서울성곽] 장충동에서 남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성벽길

인왕산 성벽과 함께 조선태조때 처음 쌓은 한양도성 18 km 구간 중 그 보존상태가 양호한 남산 동쪽편 능선을 따라서 쌓은 성곽이다. 남산순환도로 건설로 일부 구간이 끊어져 있기는 하지만 서울 도심 녹지 공간으로 그 보존상태가 양호한 남산 동쪽편 경사진 지형에 위치하고 있었기때문에 성곽이 허물어지지 않고 원형을 잘 보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는 숙종대에 한양 도성을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증측을 하였던 성곽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한양도성과 수원화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성이나 읍성은 성문주위나 평지를 제외하고는 조총의 공격에 대비한 여장을 설치않았던데 비해 한양도성은 평지에서 남산 정상부까지 성벽에 여장을 설치하고 있다. 남산 동쪽 성벽 탐방은 장충동 신라호텔 뒷편을 따라서 이..

서울 올림픽주경기장,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88올림픽 주경기장

서울 송파구 한강변에 세워진 올림픽주경기장은 1988년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올림픽경기를 위해 지어진 건축물이다. 이곳에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하계올림픽 개.폐막식과 육상을 비롯한 주요 경기가 벌어진 메인스타디움이다. 2002년 상암월드컵경기장이 지어지기 전까지 국가대표 주요 A매치 경기가 벌어졌던 역사적인 현장이기도 하다. 주경기장이 있는 이곳에는 실내경기를 위한 체육관, 수영장을 비롯하여 프로야구 LG와 두산의 홈경기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야구장이 자리잡고 있는 복합스포츠단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88올림픽경기를 위해 건설된 이 경기장은 우리나라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로 그의 건축적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백자를 형상화한 곡선미를 강조하고 ..

대구 이상화고택, 근대문화골목에 남아 있는 <뺴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이 살던 집

대구 구도심 계산동성당 뒷편에 위치한 이상화고택은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을 대표하는 이상화시인이 만년에 살았던 고택이다. 이 지역은 옛 대구읍성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대구약령시와 가까운 주거지역으로 대구에서도 상류층 사람들이 주로 모여 살았던 곳으로 지금은 '대구근대화골목'으로 불리운다. 근처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이끌었던 서상돈이 살았던 고택을 비롯하여 여러채의 한옥들이 남아 있다. 이상화고택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한옥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많이 지어졌던 대구지역 도시형 개량한옥이라 할 수 있다. '건물은 ㅁ'자형으로 이루어진 서울 북촌의 한옥과는 달리 '-'자형 한옥형태를 하고 있는 안채와 문간채처럼 대문과 붙어 있는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옥은 인근 서상돈고택과 함께 1999년 도시개발로 허물어질 ..

고택_정원 2013.05.20

북한산 태고사, 고려말 원증국사 보우가 창건한 사찰

북한산성내 행궁 아래쪽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 태고사는 고려말 공민왕때 국사를 지낸 원증국사 보우가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이 절은 북한산에 있던 중흥사 주지로 있던 원증국사 보우가 개인적으로 수도하기 위해 세운 작은 암자로 그가 입적한 이후 태고암이라 불렀다. 북한산 봉우리들과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은 태고사는 고려말 이후 거의 폐사되었다가 병자호란 이후 북한산성을 쌓고 관리하기 위해 승병들이 거처할 도량으로 중흥사와 함께 크게 중창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131칸의 비교적 큰 규모로 중창되었는데 한국전쟁 때 소실된 이후 대웅전과 요사채만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태고사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고 북한산성내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신도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 사찰..

전국 사찰 2013.05.15

대구 계산동성당(사적 290호), 대구지역에서 처음 세워진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

사적290호로 지정된 대구 계산동성당은 카톨릭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으로 서울, 평양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1902년에 지어진 서양식 성당건축물이다. 원래 이곳에는 1899년에 지어진 강화 성공회성당처럼 한옥형태의 성당이 있었는데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로베르신부가 설계하고 명동성당 건축에 참여했던 중국기술자 등이 참여하지 지었다. 1911년 대구대교구가 설립되면서 이 성당이 대교구 본당으로 바뀌면서 총탑을 높이는 등 증축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대구에서 한약재가 거래되던 큰 시장이었던 약령시에 가까운 도심에 위치한 성당으로 두개의 탑이 우뚝 솟아 있어 '뾰족집'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건물은 첨탑이 있는 고딕양식이 가미된 전통 로마네스크 양식을 하고 있다. 건물의 평면은 좌.우 익랑을..

장충동 남산자유센터, 건축가 김수근의 초기 대표 작품

남산 동쪽편 서울 성곽 안쪽에 장충동 언덕에 위치해 있는 자유센터는 해방 이후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현대 한국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의 초기 작품으로 노출콘크리이트 기법과 목조건축물의 특징을 조화시킨 웅장한 건축물이다. 1950년대 일본에서 공부한 후 귀국하여 첫작품으로 워커힐 호텔 힐탑바(현 피자힐)을 지은 이후 당시 대표적인 관변단체인 반공연맹을 위해 지은 대형건축물로 자유센터라 불린다. 이곳에서는 대형 컨벤션센터라 할 수 있는 자유센터 본관과 고위층들의 사교클럽인 서울클럽, 외국인들을 위한 호텔인 타워호텔이 세워졌는데 김수근이 설계한 작품들로 6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주로 결혼식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컨벤션센터 개념의 자유센터는 웅장한 기둥과 ..

북한산 중흥사지, 북한산성 승군을 총지휘한 승대장이 머물던 사찰 절터

북한산 노적봉 아래에 있던 중흥사는 북한산성을 지키던 승군들이 머물던 사찰 중 가장 큰 사찰이었다. 중흥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였던 원증국사가 머물때 중수하면서 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원래는 그리 크지 않았던 사찰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의 방어를 위해 숙종이 북한산성을 쌓으면서 산성을 지키고 수리하는 역할을 맡았던 승군들이 머물 수 있도록 크게 중수하였다고 한다. 사찰이 1915년 대홍수로 무너지기전까지 136칸에 이르는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중흥사에는 북한산성을 지키던 승군들이 머물던 11개의 사찰을 지휘하던 승대장이 머물던 승영으로 승대장은 전국 승병을 지휘하는 팔도도총섭을 겸임하였다고 한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로 호국불교로서 ..

절터 2013.05.13

대구 제일교회, 대구.경북지역에 처음 설립된 개신교회

대구 약령시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대구제일교회는 대구.경북지역에서 처음 설립된 개신교 교회이다. 1898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가 이곳에 남성정교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하였다. 이 교회를 설립한 사람은 대구 최초의 서구식 중등교육기관인 계성교회를 설립한 선교사 아담스(James E. Adams, 한국명 안의와)이며 한약재를 거래하는 큰 시장이었던 약령골목에 자리잡으느 것도 의료선교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의 모태가 되었던 선교사 존슨(Woodbrige O. Johnson)이 설립한 서구식병원이 제중원도 있었다고 한다. 아담스를 비롯한 이들 선교사들은 계명.신명.희도 등의 서구식학교를 설립하여 교육활동을 벌였으며, 동산병원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의료선교활동을 하며 대구지역에 많은..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59호)와 절터 출토 유물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주세붕 선생이 세운 소수서원 들어가는 소나무 숲길에 위치한 당간지주이다. 이 곳에 서원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숙수사라는 사찰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문화재이다. 서원과 마찬가지로 사찰도 대부분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기때문에 이 곳도 사찰이었다가 어떤 사연에 의해서 절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서원을 세운 듯 한다. 소수서원이 위치한 곳은 영주 순흥지역에서도 경치가 좋고 사람의 통행이 많은 교통의 요지로 통일신라시대부터 인근 부석사 못지않게 큰 절이었던 숙수사가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당간지주는 부근에 출토된 많은 유물들로 볼 때 숙수사는 상당히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숙수사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부근 소수중학교 건립공사 중에 발견되었는데 모두 25구의 불상들이 출토되었..

대구 선교사블레어주택, 청라언덕에 남아 있는 미국식 주택

대구 계명대학교 부속 동산의료원 뒷동산 '청라언덕'이라 불리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3동의 선교사 저택 중 하나인 블레어주태택이다. 다른 선교사 저택과 함께 1910년경에 지어진 건물로 선교사인 블레어(Blair)와 라이스(Rice)가 살던 집으로 지금은 동산의료원에서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은 붉은 벽돌로 쌓은 2층 양옥 건물로 전형적인 북미지역 중산층 저택의 형태를 하고 있다. 청라언덕의 약간 경사진 지형을 활용하여 남쪽편에 반지하실과 베란다를 두고 있고 건물 북쪽편에 벽돌로 쌓아 올린 굴뚝이 있다. 1층에는 베란다.응접실.거실.침실.식당.부엌이 있고 2층에 침실.욕실을 두고 있다. 이 건물은 1910년 처음 지어진 이래로 최근에 박물관으로 바뀌기 직전까지 선교사 사택과 동산의료원 사택..

여의도 국회의사당, 대한민국 국회가 열리는 70년대풍의 웅장한 건축물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세종문화회관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형 건축물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대한민국 국회의 회의가 열리는 건물이다. 여의도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국회의사당읜 본회의가 열리는 본관을 중심으로 10만평의 부지 위에 남쪽에는 의원회관, 북쪽에는 국회도서관이 자리잡고 있다. 국회의사당 앞쪽에는 북경 천안문 광장 등을 모방해서 만든 넓은 광장이었으며 지금은 여의도공원으로 바뀐 5.16광장이 자리잡고 있고, 예전에는 군사퍼레이드를 비롯한 관제 집회가 많이 열렸던 곳으로 1970년대의 권위주의적인 도시계획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국회의사당 건물은 단일 국회의사당 건물로는 세계적으로도 큰 편에 속하는 건물로 지하2층, 지상 6층의 건물이다. 24절기를 의미하는 24개의 석조기둥이 지붕..

대구 선교사 챔니스 주택, 청라언덕에 남아 있는 미국식 주택

대구 동산동 동산의료원 뒷동산 '청라언덕'이라 불리는 곳에 남아 있는 구한말 선교사들이 세운 주택 중 하나인 선교사 챔니스 주택(House of American Christian Missionary Chamness) 주택이다. 건물은 미국식 주택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대구읍성을 철거하면서 나온 성돌로 기초를 다지고, 붉은 벽돌을 쌓아 지은 단독주택이다. 청라언덕이라 불리는 동산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물과 함께 다양한 정원수들이 심어져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는 주택이다. 건물은 긴 네모형의 2층 건물로 1층에는 거실.서재.부엌.식당 등이 있고, 2층에 침실과 욕실을 두고 있는 전형적인 북미지역 중산층 주택이라 할 수 있다. 이 집은 대구지역에 선교사 아담스와 함께 선교활동을 시작하..

북한산성 행궁터, 산성에 마련한 국왕의 임시 거처

조선시대 행궁은 왕이 임시로 머무는 별궁이다. 행궁은 전쟁 등 국가 비상상황시 왕이 잠시 피난할 때 머물거나 지방 순시나 휴양 등을 위해 지방관아에 설치한 임시 처소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행궁으로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서 조성한 강화행궁, 남한산성 광주행궁 등이 있고, 왕이 온천에서 휴양을 하기 위해 설치한 온양행궁과 이천행궁, 왕이 능묘에 참배를 하기 위한 화성행궁, 전주행궁 등이 있다. 행궁은 기본적으로 지방관아 기능을 유지하면서 국왕의 침소, 수행원을 숙소, 임시정부를 유지하기 사무실용도 건물 등을 추가하여 일반적인 관아보다는 건물규모가 큰 편이다. 또한 강화행궁의 규장각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서나 서적 등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을 두기도 한다. 서울 북한산성내 동장대가 바라 보이는 상원봉 아래..

조선 관아 2013.05.08

대구 선교사 스윗즈주택, 청라언덕에 남아 있는 구한말 선교사 저택

대구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뒷동산은 박태준 가곡 '동무생각'의 무대로 청라언덕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 곳에는 지금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선교사 주택 3동이 남아 있고, 크고 작은 정원수, 최근에 신축한 대구제일교회 등이 있다. 이곳은 대구에서 최초로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 제일교회를 비롯한 크고 작은 교회들, 계성중.고등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들을 설립한 미국인 선교사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곳이다. 1890년대 선교사 아담스(한국명 안의와)가 처음 대구로 들어와 선교를 시작한 이래로 구한말.일제강점기 초기에 서구인들이 한국에서 자리잡고 살았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청라언덕에 있는 3동의 선교사 주택 중 동산병원 바로 뒷편에 위치한 스윗즈 주택은 미국인 선교사 스윗즈(Miss Marttha Swit..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