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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797

담양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담양은 대나무 숲만이 유명한 것이 아니라 담양에서 순창으로 가는 국도변에 심어진 메타세쿼이어 가로수 숲은 새로운 맛을 보여준다. 메타세쿼이어 나무는 아주 곧고 빨리 자라는 특징이 있어 70 년대에 조성한 가로수 임에도 불구하고, 담양의 오랜 전통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러 지역을 다니다 보면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많기는 한데 담양이 적극적으로 보전하여 현재는 이 메타세쿼이어 가로수 길을 지나가다 보면 동화속이나 영화속 거리를 달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담양메타세콰이어는 담양 전역에 가로수로 심어져 있어 국도를 지나다 보면 하늘로 솟아 오른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담양 죽녹원에서 관방제림을 따라 걸어나오면 담양석당간과 오층석탑이 있는 객사리 부근에서 시작되는 옛 국도가 가장 ..

한국의 풍경 2013.04.04

태안 안흥성, 태안반도 남쪽끝 중국 사신이 오가던 안흥항에 세워진 조선시대 석축성

안흥성은 태안반도 서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안흥항 뒷산에 쌓은 조선시대 석성이다. 안흥항은 충남 서해안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항구로 바깥쪽에 신지도라는 섬이 있어 먼바다의 파도를 막아주고 갯벌이나 해안사구가 없어 배가 정박하기 좋은 천혜의 항구이다. 안흥항은 한반도 서남해안을 따라 발달한 한.중.일 연안항로를 따라서 선박이 오가던 고대국가 이래로 중요한 항구였으며, 특히 만주지역 해안이 고구려를 비롯하여 북방세력에 장악되어 선박의 통행에 어려움을 겪던 백제가 중국 남.북조와 교류할 때 산동반도나 그 이남 지역과 직접 연결되던 항구로 백제가 중국 문물을 받아들어던 창구역할을 했던 항구이다. 또한 조선초기 몽골이나 청나라의 압박을 받던 시절 명나라 사신들이 오가던 항구였다. 또한 고려~조선시대 연안 항로를 ..

과천 온온사,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는 관아 객사

과천시는 서울 남쪽 관악산과 청계산 사이를 흐르는 양재천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정부청사, 서울대공원, 경마장 등이 있는 전형적인 서울의 위성도시이다. 고려시대 과천에는 과주가 설치되었고 조선초 태종대에 종6품 현감이 고을수령인 과천현이 설치되었다. 조선시대 과천은 강남의 양재동, 사당동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충남, 호남 지역에서 출발한 대부분의 교통로가 서울로 연결되는 관문이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과천현감은 그 직위는 종6품으로 그리 높지 않지만 남태령을 통해 서울로 입성하는 수많은 교통로가 지나가는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평양감사 등과 함께 지방관리 중에는 중요한 요직으로 정치.경제적인 이권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태령을 지키던 관리나 포졸들의 횡포는 당시 꽤 심했다고 한다. 옛 과..

조선 관아 2013.04.04

담양 성월리 월전고분, 삼국시대 지방세력 무덤

담양군 고서면 성월리 월전마을 입구에 남아 있는 삼국시대 이전에 조성된 고분인 담양 성월리월전고분이다. 이 고분은 방형(사각형)과 원형 분구가 이어져 있어 장고분과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실제로는 마을에 입구에 있는 작은 무덤과 주변 숲으로 보이지만, 마을 안 능선쪽에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는 부분이 방형이고 논경지가 펼쳐진 동쪽편 원형분구이다. 원형분구에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고 그 가운데 작은 무덤이 있다. 이 고분이 있는 담양 월전마을은 무등산에서 발원하여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증암천 주변으로 형성된 충적지 평야지대이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 창평현이 있었던 지역으로 월전리 마을 동쪽 증암천변에는 창평향교가 있고 멀지 않는 곳에 창평현 관아가 있었던 구읍리가 있다. 이 지역은 넓은 충적평야의 경제력을 ..

태안 태을암, 백화산 중턱에 자리잡은 백제시대 마애삼존불상이 있는 작은 암자

태을암은 충남 태안군 태안읍 백화산(해발284m) 중턱에 있는 전통 사찰이다. 규모는그리 크지 않은 편이며 전통사찰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불전이나 요사채 건물은 없고 대부분 최근에 중창한 것 보인다. 이 사찰은 백제시대 불상으로 국보 370호로 지정된 태안마애삼존불 옆에 세운 작은 암자였던 것으로 보이며 수덕사의 작은 말사이다. 태안반도에서 진산으로 여기지는 백화산 중턱에 자리압고 있어 사찰에서 내려다 보이는 태안반도와 천수만 경치가 아름다워 태안8경 중 1경으로 꼽히는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태을암에 있는 태안 마애삼존불입상은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중국 북조 석굴사원의 영향을 받았다. 양쪽에 석가여래와 약사여래가 있고 가운데 작은 크기의 관음보살입상이 새겨져 있는 특이한 형태의 석불로 당시 ..

전국 사찰 2013.04.03

여주 명성황후생가, 민유중 묘막으로 지어진 집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이다. 이 가옥은 조선후기 숙종의 장인이자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부원군 민유중의 묘막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가옥은 솟을대문이 있는 '-'자형 행랑채, 사랑채와 중문이 있는 'ㄱ'자형 문간채, 'ㄱ'자형 안채, 바깥쪽에 '-'자형 별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옥의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짜임새있게 꾸며진 중부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을 살 보여주고 있다. 인현왕후 아버지 민유중을 묘막으로 지어진 이 가옥은 서울 북촌 감고당과 함께 민유중 후손들이 살아왔던 집이다. 원래 가옥 중 안채만이 남아 있던 것을 최근에 사랑채, 행랑채, 별당을 복원하였다.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은 민유중의 5대손으로 영천군수 벼슬을 끝으로 서울 감고당에서 사망했다. 명성왕후는 이곳에서 태어나 8..

고택_정원 2013.04.03

담양 객사리석당간(보물505호), 조선후기 중건된 석재로 만든 당간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로 유명한 순창.담양간 국도변에 남아 있는 보물 505호로 지정된 석당간이다. 고려시대 5층석탑과 함께 고려시대 절터에 남아 있는 유물로 당간과 당간지주가 함께 남아 있는 보기드문 유물이다. 당간은 높이 15m로 화강석을 다듬어 만든 긴석재 3개를 연결하여 당간을 만들고 있다. 절이 폐사되었지만 당간은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1839년(헌종5)에 중건된 것으로 석당간 옆 비석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청주 도심에 남아 있는 철당간과 마찬가지로 절이 폐사되었지만 지역에서는 큰 의미가 있었기때문에 구한말에 중건되면서 유지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담양 객사리석당간, 보물 505호, 전남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당간이란 절에서 불교의식이 있을 때 내걸었던 '당'이라는 깃..

서산 여미리마을, 전통마을 구성요소를 잘 갖추고 있는 마을

충남 서산시 운산면에 소재한 여미리마을은 동쪽으로는 가야산에서 발원하여 당진으로 흐르는 용장천 주위의 비옥한 농토가 있고, 서쪽으로는 은봉산을 중심으로 나즈막한 산들이 이어져 있는 배산임수의 입지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전통마을이다. 이 마을은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와 가깝고 당진.서산간 국도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삼국시대 고분이 발견되고, 멀지 않은 곳에 서산마애석불과 보원사지가 있어 비교적 이른시기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마을로 보인다. 지금은 '달빛예촌 여미리'라는 브랜드로 서산을 대표하는 전통마을로 소개되고 있다. 지금은 약 90여 가구가 모여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전통마을에서 볼 수 있는 고택, 사당, 오래된 고목 등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는 오래된 고목들..

고택_정원 2013.04.02

여주 감고당, 북촌에 있던 인현왕후와 명성황후를 배출한 유서깊은 사대부 저택

감고당은 숙종이 계비인 인현왕후의 친정을 위해 지어진 집으로 현재 서울 북촌의 중심인 덕성여고 교정에 위치하고 있던 저택이다. 이저택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중문채로 이루어진 조선후기 서울 권문세족이 살았던 저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ㄷ'자형 안채는 비교적 조선후기 한옥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랑채는 중국풍의 누마루를 하고 있으며 유리창문을 사용하는 등 구한말.일제강점기 부호들이 살았던 저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숙종이 인현왕후 친정을 위해 지어진 이 집은 왕후의 부친이 민유중이 이곳에서 살았으며, 인현왕후가 장희빈으로 인해 폐위되었던 기간동안 이곳에서 거처하였다고 한다. 민유중의 후손으로 민유중 무덤 부금 묘막에서 살았던 민유중의 종손 민치록의 딸인 명성황후는 8세때부터..

고택_정원 2013.04.01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보물 506호),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방하여 만든 고려시대 석탑

담양의 명소 메타세콰이어길이 시작되는 담양 순창간 국도변에 위치한 남산리 오층석탑이다. 가장 오래된 석탑 중 하나인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으로 모방해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고려시대 석탑으로 1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으며,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다. 기단 1층이기는 하지만 탑을 구성하는 탑신과 기단의 비례가 적절하여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석탑은 석탑자체의 독특한 조형미를 가지는데 비해 정림사지석탑처럼 석재를 이용하여 목탑처럼 쌓은 석탑이다. 석탑이 있는 이곳은 담양읍내에서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당간지주와 오층석탑만이 남아 있다. 이 곳은 고려시대에 많이 세워졌던 평지사찰로 주요 교통로에서 여행객들이 잠시..

태안 백화산성,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백화산(해발284m) 정상에 쌓은 테뫼식산성

충남 태안군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태안읍 뒷편 백화산 정상에 석축을 쌓아서 만든 백화산성이다. 백화산 정상에 성벽을 둘러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고려 충렬왕13년(1286)에 쌓았다고 하는데, 원래 산성이 있던 곳을 고쳐 쌓았다는 의견도 있다. 백화산성은 사방이 절벽으로 되어 있어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용이한 요새같은 지형을 갖추고 있다. 태안읍에 있는 관아와 가깝고, 백화산 정상이 해발 284m로 그리 높지 않은 편이라 읍성의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서해안 해상교역로를 지키기 위해 태안반도 일대에 쌓은 성곽 중 제일 먼저 축성되었다고 한다. 고려말.조선초 서남해안에 창궐했던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성벽은 백화산 정산부에 둘레619m 정도로 쌓았으나 지금은 정상주변 ..

담양 죽녹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울창한 대나무숲

담양군 담양읍 향교리에 있는 죽녹원은 조선시대 양반들이 경치좋은 곳에 조성한 많은 정자, 정은 아니지만, 지금은 담양뿐만 아니라 전국을 대표하는 대나무숲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죽녹원이 있는 성인산 일대는 죽녹원이 조성되기 이전부터 담양도호부 관아에서 세운 공립중등교육기관인 담양향교가 들어서 있던 자리로 예로부터 담양을 찾았던 많은 사람들이 향교를 방문하면서 이 숲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죽녹원이 있는 성인산 중턱에 자리잡은 담양향교에서는 담양도호부 관아가 있던 담양읍 일대 넓은 평야지대와 죽녹원 앞으로 흐르는 영산강과 관방제림이의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 또한 원래부터 그랬던지는 알 수 없지만 울창한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죽녹원에 들어서면 하늘을 찌를듯이 자라고 있는 대나무 숲 사이로 걷다보면 ..

한국의 풍경 2013.04.01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 307호), 중국 북제의 영향을 받은 백세시대 불상

한반도와 중국간 해상교역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태안반도에서 비교적 높은 봉우리에 속하는 백화산(284m)에 남아 있는 백제시대 석굴사원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국보 307호로 지정된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이다. 이 불상은 백제가 중국 남.북조와 교류하던 6세기경 중국 북제의 석굴사원 불상의 영향을 받은 불상으로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상(국보84)에 선행하는 양식을 가졌다. 이 불상은 마애불상 중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사각형의 감실안에 보살상이 가운데 있고, 양쪽에 여래상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는 삼존불상이다. 오른쪽에는 약사여래, 왼쪽에는 석가여래, 가운데에 작은 크기의 관음상이 새겨져 있다. 불상 아래쪽에는 백제시대 연화대좌가 확인되어 그..

서울 사직단, 조선이란 국가를 상징하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

서울 도성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사직단이다. 토지의 신에 제를 올리는 사단(社壇)은 동쪽, 곡식의 신에 제를 올리는 직단(稷壇)은 서쪽에 설치되어 있다. 사직단은 내부에 담장이 설치되어 있고 사방으로 신문(神門)이 설치되어 있으며, 내부는 삼도로 연결되어 있다. 사직의 국가를 의미하는 말고 동일시 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사직단은 국가의 구성요소 중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제천의식은 부여를 비롯한 고대국가에서 아주 중요시 여겨졌으며 다양한 형태의 의식이 거행되었다. 사직단은 중국의 문물을 많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삼국시대부터 설치된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991년(성종10)에 사직단이 개경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조선왕조 또한 한양으로..

궁궐_종묘 2013.03.30

태안 경이정, 태안을 지나가던 중국사신이 잠시 쉬어가던 관아 정자

태안군 태안읍 사무소가 있는 동문리 일대는 조선시대 태안군(현) 관아가 있던 지역으로 관아건물로는 동헌과 관아에서 운영하던 누정인 경이정, 중등교육기관인 태안향교가 남아 있고, 객사를 비롯한 건물들이 있던 터에는 초등학교와 읍사무소가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 바다와 조운을 담당한 연안항로를 지키는 수군으로 남.서해안에는 주로 수영과 그보다 낮은 조직인 방어사가 설치되었는데 태안에는 그 중 수군 방어사가 설치되었다. 방어사는 무관으로 고을 수령을 겸하면서 주변지역 수군조직을 관장하는 직위로 종2품에 해당하는 고관이었다고 한다. 태안읍사무소 앞 큰 길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정자인 경이정은 원래 중국사신들이 안흥항을 통해 조선을 방문하면서 태안을 지나갈 때 휴식을 취하던 장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명나라..

조선 관아 2013.03.28

담양 송진우 고택, 근.현대사에 발자취를 남겼던 고하 송진우가 살았던 가옥

전남 담양군 금성면 대곡리마을에 남아 있는 고하 송진우가 살았던 고택이다. 구한말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가옥은 안채와 문간채겸 사랑채로 단촐하게 구성된 한옥이다. 초가지붕을 얹고 가옥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지만, 담양지역에서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던 지주계층 가옥이다. 원래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슬레트지붕을 얹어서 평범한 시골집 형태를 최근까지 유지하다고 초가 지붕을 얹은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이 가옥은 일제강점기 언론인, 정치가, 교육자로서 독립운동을 하였고, 해방후 좌.우대립의 극심한 혼란기에 암살당한 고하 송진우가 태어나고 자랐던 집이다. 또한 구한말 의병장이었던 기삼연이 체포되었다가 탈출하면서 이 집에 은신하면서 송진우를 가르쳤다고 한다. 호남지역 지주계층 가옥으로 근.현대사에 큰 역할..

고택_정원 2013.03.28

태안 목애당, 옛 태안군 관아 동헌

충남 서해안 끝자락 태안반도에 위치한 태안군은 조선시대 태안군이 설치되었던 지역으로 서산과 접한 동쪽을 제외하고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으로는 서해 먼바다와 직접 맞닫아 있고, 남쪽으로는 천수만, 북쪽으로는 가로림만이 있다. 태안은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 갯벌은 적은 편이며 모래사장과 송림이 발달되어 있어 크고 작은 포구와 해수욕장들이 있다. 삼국시대 태안은 백제가 중국 남.북조와 교류하는 중요한 창구였으며, 불교를 비롯한 중국문물이 전래되는 중요한 접점으로 태안마애석불, 서산마애석불, 보원사절터 등에서 당시 교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태안이라는 지명은 고려 충렬왕때부터였으며 조선시대에는 태안군이 설치되었다. 태안은 관할지역이 넓지 않기때문에 태안군수는 지방관의 역..

조선 관아 2013.03.28

담양 관방제림, 영산강 상류에 조성된 조선시대의 치수용 숲

담양에서 제일 유명한 대나무숲 죽녹원 옆으로 제법 큰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 하천이 영산간 상류이다. 조선시대에 이곳에 둑을 쌓고 인공 숲인 관방제림을 조성해야 할 정도로 치수의 필요성이 아주 큰 하천이다. 아마 이 지역이 평야지대라 홍수가 나면 많은 지역이 물에 잠기고 특히 담양읍 시내가 관방제림 너머에 바로 있기 때문에 조성의 필요성이 예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관방제림 둑을 따라 걸어면서 볼수 있는 풍경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는 않고 오히려 유럽의 도시나 시골에는 관방제림과 같이 강둑을 따라서 수목이 심어져 있는 산책길을 많이 볼 수 있다. 치수를 위해 강둑에 조성된 숲으로는 관방제림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이 조성한 풍치림이 잘 알려져 있다. 관방제림은 담양읍 북쪽 홍수를 막기위해 쌓은 인공 ..

한국의 풍경 2013.03.27

태안향교, 태안군 관아 가까운 곳에 위치한 조선시대 공립중등교육기관

태안은 충남남도 서해안 태안반도 대부분이 포함된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는 태안군이 설치되었다. 태안읍에 위치하는 해발284m의 백화산이 비교적 높은 산으로 대부분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안은 중국.한반도.일본을 경유하는 해상교역로가 존재했던 고대 이래로 중요한 지역으로 삼국시대 백제는 태안을 통해서 중국 남북조와 교류했으며, 그 흔적은 태안마애석불, 서산마애석불을 비롯하여 서산지역에 남아 있는 여러 고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태안군 관아에서 운영했던 공립중등교육기관이었던 태안향교는 태안군 관아가 있던 태안읍사무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향교는 보통 관아가 있는 읍치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 태안향교는 객사가 있었던 곳으로 여겨지는 태안초등학교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담양 면앙정, 조선중기 학자 송순이 후학양성을 위해 영산강변에 세운 정자

담양 면앙정은 전남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영산강변 있는 작은 동산에 세워진 정자이다. 조선중기 문신 송순(1493~1583년)이 1533년에 처음 건립한 이 정자는 소쇄원, 식영정 등 담양, 창평일대에 선비들이 세운 정자 중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세워진 정자로 이 지역 양반문화를 선도했던 곳이기도 하다. 영산강 주변 담양의 넓은 평야와 멀리 노령산맥은 높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은 정자이다. 정자 건물은 앞면3칸, 옆면 2칸의 크지 않은 규모로 가운데 온돌방을 두고 마루가 둘러싸고 있는 형태로 담양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정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정자는 세운 송순 중종~명종대에 필암서원의 하서 김인후와 함께 이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로 당대 대학자인 퇴계 이황을 비롯..

고택_정원 201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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