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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114

[서울역사박물관] 전문직의 마을 중촌과 선비의 마을 남촌

조선의 수도 한양은 인구 20~30여만명이 살았던 당대의 대도시였다. 한양에는 국왕을 중심으로 양반관료, 의관.역관 등의 중인계층, 관청의 서리, 훈련도감에 속한 군인들, 운종가에서 상업에 종사하던 상인에서 최하층민까지 다양한 신분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조선시대 한양에는 지방조직으로 한성부가 설치되었으며, 하부조직으로 남부, 북부, 서부, 동부, 북부의 5부로 나뉘었다. 도성의 북쪽 북악산과 서쪽 인왕산을 등지고 있는 궁궐 주변에는 권문세가를 비롯한 훈구세력과 조선중기 이후 주도층으로 등장한 사림세력들이 주로 살았으며,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중부에는 의관.역관 등 전문직에 종사한 중인계층과 운종가에서 상업에 종사한 상인계층들이 주로 살았으며, 남산 아래에는 남촌에는 일부권문세가들도 살기는..

지역박물관 2013.11.15

[서울역사박물관] 피맛길이 있던 청진동 600년, 서울의 재발견

서울 청진동은 조선시대 육의전을 비롯하여 국가에서 종각주변에 조성한 공식적인 상업지구였던 운종가에서 광화문 육조거리 뒷편에 위치하고 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고관대작들이 운종가 대로를 말을 타고 지나갈때 행차에 인사를 하기 싫었던 서민들이 지나다니던 골목길인 피맛길이 남아 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이곳에는 국가에 공물을 공급하면서 도성내 독점적인 거래를 하던 시전들 중 돗자리를 팔던 인석전, 쌀과 잡곡을 팔던 상미전과 잡곡전 등이 들어서 있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시전이 없어지면서 서민들이 주로 찾는 청진동 해장국을 비롯하여 작은 골목길 음식점들이 즐비하던 서울의 대표적인 맛집 골목길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 도심재개발사업으로 피맛골에 있었던 크고 작은 맛집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상업..

지역박물관 2013.11.08

[서울역사박물관] 수도 한양을 구성하는 궁궐을 비롯한 관아와 수도를 관리하는 한성부

서울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의 수도로 1394년 건설된 철저한 계획도시라 할 수 있다. 당시 새로운 수도로 장단 불일사, 도라산, 계룡산 일대, 서울 무악(안산) 기슭 등 여러곳이 추천되었지만 북한산을 외산으로 하여 백악, 인왕, 타락, 목멱산으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고 있었던 오늘날의 서울 도심이 새로운 수도로 선정되었다. 수도 건설은 유교적 이념에 따라 중국 주나라의 제도를 기록한 『주례』의 「고공기」를 기본으로 하여, 풍수리리사상과 군사,경제적 여건 등을 고려하여 건설되었다. 조선의 수도 한양은 성곽으로 둘러싸인 오늘날 서울 구도심과 성저십리라 하여 도성밖 10까지를 포함하는 영역을 말한다. 수도는 주산이라 할 수 있는 백악산(북악산)을 중심으로 법궁인 경복궁이 건설되었고, 동쪽..

지역박물관 2013.10.28

[스페인여행]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La Sagrada Familia) 박물관

현대에 들어서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부상하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지하에는 성당 건설과정을 보여주는 다양한 종류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과 건축가 가우디가 묻혀있는 지하납골당이 있다. 대성당 지하에 있는 이 박물관에는 대성당 건축관 관련된 수많은 건축 자재들과 작업자들의 도면, 1930년와 그 이후에 만들어진 수많은 모형들, 작업과 관련된 사진,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나무와 금속 등으로 만든 가구들을 비롯한 장식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19세기에 처음 건설을 시작한 파밀리아 대성당은 건축가 가우디가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그의 말년 대부분을 이 대성당을 건축하는데 보냈다. 이 대성당의 건설은 재정적인 문제로 공사가 상당히 지연되어 아직도 완공을 보지 못하고 있다. 가우디는 ..

스페인(Spain) 2013.09.13

[진주박물관] 두암 김용두 기증 문화재

국립진주박물관에도 다른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기증유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경남 사천출신 재일동포 사업가 김용두가 기증한 유물을 별도의 전시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전시된 유물은 주로 일본에서 수집한 골동품으로 백자를 비롯한 도자기류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그림 또한 많은 편이다. 고고학자가 발굴과정에서 수집한 경우 삼국시대 이전 유물이 많은데 반해, 이 전시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거래가 많은 골동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의미를 갖는 고문서나 부장 유물에 비해서 역사성은 많지 않으나 고미술품으로서 의미를 갖는 유물들이라 할 수 있다. 두암 김용두 기증 문화재 두암 김용두 선생은 경남 사천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인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가로 자수성가하였다. 선생은 사업이 안..

지역박물관 2013.08.29

[진주박물관] 서부경남 양반문화, 지리산의 차

한반도 남부지방의 명산이라 할 수 있는 지리산 동쪽의 남강변 일대에 위치한 산청, 함양, 진주 일대는 경치가 빼어난 지역으로 낙동강 상류 안동 지역과 함께 조선시대 양반들의 세거지로 선호되었으며, 양반문화가 발달된 곳이다. 영남사림을 이끌었던 김종직의 문인이었던 정여창, 김일손 등을 배출하였으며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사림을 이끌었던 남명 조식이 그 학풍을 이어왔는데, 실천적인 이지역의 학풍은 곽재우를 비롯하여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많은 의병장들을 배출하였다. 특히, 지리산의 처사라 불렸던 남명 조식은 벼슬에 진출하지 않고 산청지역에서 학문에 전념하여 많은 후학을 배출하였으며, 실천적인 이지역 특유의 유교학풍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또한 지리산 일대에는 많은 사찰이 있었으며, 통일신라시대 처음으로 지리산에서..

지역박물관 2013.08.26

[진주박물관] 임진왜란 전쟁의 기록과 기억

임진왜란은 명나라의 참전으로 왜군이 부산지역으로 퇴각하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강화회담이 진행되었으나 결렬되고 왜군은 다시 한번 대공세를 펼치며 이를 정유재란이라 부른다. 정유재란 초기 왜군은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을 칠전량에서 궤멸시키고 육상으로는 진주성과 남원성 싸움에 승리한 후 호남지역으로 진격하였다. 전세는 왜군이 직산현 전투에서 패배하고 수군 또한 명량해전에서 크게 패배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그 이후 전장은 부산,울산,사천지역에서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으며 1598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왜군이 퇴각하면서 임진왜란은 끝나게 된다. 임진왜란은 동아시아에 존재했던 조선,왜,명나라가 참전했던 세계대전 성격의 전쟁이었으며, 명나라는 전쟁에 소요된 많은 비용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지역박물관 2013.08.14

[진주박물관] 임진왜란 전쟁의 발발과 조선의 대응

진주성내에 위치한 국립진주박물관은 경남지역 선사시대와 가야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1984년에 개관한 박물관으로 1998년에 가야유물을 전시.연구하는 김해박물관이 개관됨에 따라서 임진왜란과 관련된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상설전시실은 임진왜란실과 역사.문화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임진왜란실은 임진왜란의 시작에서부터 체계적으로 관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일부 유물들은 복제품을 전시해 놓고 있기는 하지만, 임진왜란 기간동안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로 역사박물관으로서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은 1592년 고니시가 이끄는 2만명의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부산진성을 공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정발장군이 이끄는 부산진성은 관민이 합심하여 방어했지만 2시간..

지역박물관 2013.08.06

[부산박물관] 조선시대 선비가문 고문서와 유물들, 기증 유물(2)

부산박물관 기증유물관에는 조선후기 관리를 반곡 이덕성(1655~1704)의 후손들이 기증한 보물 1501호 을 비롯하여 5대에 걸쳐 효자를 배출한 영양천씨 석대동파 고문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반곡이덕성은 조선후기 숙종대의 문신으로 동래부사를 역임하면서 동래남문비를 중창한 인연으로 후손들이 부산박물관에 관련 유물들을 전시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과거합격증인 홍패와 백패도 있지만, 그가 생전에 했던 중요한 행적 등을 보여주는 , 등의 초안을 비롯하여 많은 고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영양천씨 고문서는 5대에 걸쳐 효자를 배출하는 과정에서 작성했던 많은 공문서들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행정절차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김정희 필 법해도화, 19세기, 현수명 기증 김홍도 필 산수인물도, 18세..

지역박물관 2013.08.05

[부산박물관] 조선후기 백자와 기증 유물(1)

부산박물관도 다른 도시의 박물관과 마찬가치로 지역민들이 기증한 유물들을 전시한 전시실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 2번째 도시답게 부산박물관은 타지역 박물관에 비해서 기증전시실의 규모도 크고 전시유물도 다양한 편이다. 부산이 역사의 중심지였던 도시가 아니기때문에 주로 골동품 성격을 갖는 조선후기 도자기.문서.생활도구.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지만 역사적.고고학적 의미가 큰 유물은 많지 않은 편이다. 순백자와 청화백자 조선시대 도자기의 주류는 흰색을 기조로 하는 백자였다. 초기에는 순백자가 주로 생산되었으며, 중기 이후 청화.철화.동화의 색을 넣은 백자가 제작되었다. 순백자는 성립 이후 말기까지 주류자기로 계승되었으며, 초기의 우윳빛과 같은 유백색에서 설백, 회백, 청백으로 점차 발..

지역박물관 2013.07.29

[부산박물관] 해방 이후 한국전쟁기의 부산

부산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이자 국제무역항으로 역사이래로 대일교류 창구였으며, 조선후기에는 유일하게 왜관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부산항과 용두산 공원을 중심으로 한 부산도심은 구한말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된 이래로 부산.일본간 페리선과 경부선 철도를 바탕으로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교토의 중심지로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부산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는 이런 전통적인 이미지와 함께 해방 이후 일본에서 돌아온 귀환동포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의 유입으로 단시일내에 급격히 팽창한 도시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산비탈에 빽빽히 들어선 판자집, 좁은 도로, 많은 사람들로 번잡함과 활기를 보여주는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등의 시장풍경 등은 해방 이후 고난에 찬 당시 사람들의 처절한 생존투쟁이 부산이라는 ..

지역박물관 2013.07.29

[부산박물관] 일제강점기의 부산

조선후기 유일한 대일 교류 창구로서 왜관이 설치되었던 부산은 구한말 강화도조약으로 개항되면서 국제무역항이자 근대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중국과 연결되는 경부선철도의 개통으로 국제도시로 면모를 갖추게 된다. 조선후기 왜관이 설치되었던 용두산부근 초량지역은 일본 거류민이 늘어나고 일본에서는 관리를 파견하는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부산과 동래를 연결하는 전차가 개통되고 도로가 개설되면서 도시의 규모는 점차적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부산도심에는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고 근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면서 다양한 서양문화가 유입되었으며, 부산과 일본을 왕래하는 페리선과 경부선 열차를 이용하여 많은 사람이 왕래함에 따라 서양문화와 함께 일본 문화 또한 많이 유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부산의 이런 도시적..

지역박물관 2013.07.24

[부산박물관] 근대화시기 교통.통신의 발달과 일제강점기 교육

부산은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큰 대도시이자 제1무역항으로 세계와 연결되는 관문역할을 하는 도시이다. 부산은 선사시대 이래로 일본과의 교류 창구가 되었던 지역으로 고려말 이후 일본의 요구에 개항된 삼포 중 하나였으며, 조선후기에는 일본과의 유일한 교류창구였던 초량왜관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1976년 일본과의 강화도조약으로 인천, 원산과 함께 개항된 부산은 근대도시로의 발전이 가장 빠르게 진전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같은 역사적 배경과 지리적 장점으로 부산은 인천과 함께 교통.통신을 비롯한 근대적인 문물이 빠르게 도입되었으며 현대적인 도시로의 변화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국제적인 무역항으로서 인프라인 항만시설이 구축되었으며, 서울을 거쳐 중국으로 연결되는 철도망은 1905년에 개..

지역박물관 2013.07.22

대구근대역사관, 구한말 이후 대구의 변화를 보여주는 전시관

대구는 조선시대 경상도 관찰사가 근무하는 경상감영이 있었던 도시로 낙동강 수운과 주요 교통로가 지나가는 교통과 행정의 중심도시였다. 원래 경상감영은 경주, 안동 등 여러지역을 순회하였으나 조선중기 선조대에 대구에 감영이 설치되었다. 구한말에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고 대구역이 1905년에 개통되면서 대구에서 전국 주요도시로의 이동이 쉬워지면서 대구로 인구와 물산이 집중되면서 대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대구에는 1900년대초 서양선교사들의 선교활동 중심지였으며, 경부선 철도의 개통과 함께 일본인들의 요구에 의해 당시 친일파 관찰사였던 박중양이 대구읍성을 허물고 도로를 개설하면서 경상감영을 중심으로 한 행정.군사의 중심지였던 대구는 일본 상인들을 중심으로 경상도 내륙지역의 상업.제조업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지역박물관 2013.06.03

[필암서원 유물전시관] 하서 김인후와 고암 양자징

하서 김인후는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로 전남 장성에서 출생하였다. 김인후는 성균관에서 퇴계 이황과 학문을 닦았으며, 과거에 급제한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홍문관 박사 겸 세자를 가르치는 세자시강원 설서를 역임하면서 인종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종은 중종의 아들로 인품이 훌륭하고 학자들을 좋아했기때문에 연산군대 이후 중앙으로 진출한 사림출신 관료와 학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병약하여 즉위 8개월만에 사망하였다. 김인후가 학문적 업적도 뛰어났지만 인종의 스승이었던 점이 당대 및 후대 왕들과 학자들의 존경을 받았던 큰 동기가 되었다. 김인후는 인종의 사망과 을사사화 등으로 실망하여 고향인 전남 장성으로 낙향하여 성리학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당대 및 후대 학계에서 인종의 스승이었던 점..

지역박물관 2013.03.12

[필암서원 유물전시관] 필암서원 문서(보물587호), 서원 운영 기록을 남겨 놓은 문서

정성 필암서원에는 조선후기 인조2년(1624)부터 구한말인 1900년까지 서원에서 작성했거나 발간했던 문서나 서적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원래는 서원내 서적이나 목판을 보관하는 건물인 장판각 건물에서 보관했으나, 지금은 서원 앞에 유물전시관 형태의 꽤 건물에서 서원의 내력과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설명과 함께 전시해 놓고 있다. 그 중 서원의 운영과정에서 작성한 각종 문서들은 조선후기 서원의 운영과 조직구성 들을 볼 수 있고, 지방교육제도와 사회경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어 보물 587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로 지정된 유물은 총 14책 64매로, 역대 원장들을 기록한 '원장선생안', 서원에서 강의를 담당한 교관, 강의에 참석자 등 강의내력을 기록한 '보강안', 강회 참가자 명단인 '문계안', ..

지역박물관 2013.03.07

[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 3천년의 이야기] 장식유리의 만개와 이슬람 유리의 전개

기원전 1세기 시리아에서 대롱불기 기법이 발명됨으로써 유리제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로마가 지중해 지역을 안정적으로 통치함에 따라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유리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다양한 지역에서 유리공방들이 생겨나고 새로운 기술들이 발전하게 되었다. 로마제국 이후에는 비잔틴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제국과 이란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유리제작 전통을 계승하여 다양한 유리공예품을 만들었다. 사산조 페르시아는 유리제작 기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 페르시아에서 만든 유리제품들은 실크로드를 비롯한 다양한 교역로를 통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 고분에서 당시 페르시아로부터 유입된 유리제품들이 출토되..

중앙박물관 2013.02.22

[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 3천년의 이야기] 불기 기법의 다양한 응용과 커트 기법(Cut Glass)

기원전 1세기경 시리아인들이 처음으로 대롱불기기법을 발명한 이후 귀금속이나 보석으로 만든 공예품처럼 몸을 장식하는 장신구나 부유한 계층에서만 사용했던 아주 특별한 용기로서 역할을 했던 유리는 대량생산을 통해 지중해 해상무역로나 실크로드를 통한 무역로를 통해 주요 교역품으로서 세계 각처로 퍼져나갔다. 대롱불기기법은 속이 빈 금속대롱 끝에 녹인 유리를 붙여 공기를 불어 풍선처럼 부풀린 후 모양을 만드는 기법으로 불과 몇분안에 그릇을 만들 수 있어서 이전의 금속공예기법을 적용한 주조기법이나 작은 용기를 만들었던 코어성형기법에 비해서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대롱불기기법은 그 자체로서도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만들 수 있어서 장인들이 지금까지도 선호하는 기법이며, 틀을 이용한 대롱불기기법은 규격화된 유리제품..

중앙박물관 2013.02.21

[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 3천년의 이야기] 틀에 불어 만든 유리(Mold-blown glass)

기원전 1세기 시리아인에 의해서 대롱불기라는 획기적인 기술이 발명됨으로써 유리는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대롱불기는 고온에서 녹은 유리가 액체상태에서 서서히 굳는 성질을 이용하여 속이 빈 금속제관을 통해 풍선처럼 유리를 불어서 다양한 형태의 용기를 만드는 방법으로 기존의 코어성형기법이나 주조기법에 비해서 상당히 빠른 속도로 쉽게 유리를 만들수 있다. 유리를 만드는 방법은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드는 공정들은 자동화되었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대롱불기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대롱불기는 만드는 장인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기때문에 공예품이나 예술작품으로서 유리를 만드는 공방에서는 아직도 2천년전 시리아사람들이 개발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인 대롱불기 기법이 작가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중앙박물관 2013.02.19

[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 3천년의 이야기] 대롱불기 유리(Free-blown glass)

유리가공기술은 기원전 15세기경에 유리로 액체를 담을 수 있는 코어 성형기법이 개발된 이래로 거푸집을 이용한 금속가공기술을 적용한 주조기법, 다양하고 화려한 색감이 뛰어난 모자이크기법 등이 개발되었다. 인류가 유리를 사용한 이래로 다양한 가공기술이 개발되고 유리의 용도 또한 처음에는 보석이나 귀금속처럼 장식을 위한 장신구 역할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며, 점차 다양한 형태의 유리 그릇이 만들어지면서 실생활에 사용되는 생활용품으로 그 기능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유리의 생산기술 또한 고도의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했고 생산량에 한계가 있었다고 여전히 일반인들은 사용하거나 가질 수 없는 고급스러운 물품에 속했다. 유리 가공 기술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는 기원전 1세기 경에 시리아에서 속이 빈 금속관을 이용하여 유리..

중앙박물관 2013.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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