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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중화전(中和殿,보물819호), 구한말에 세워진 덕수궁의 정전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으로 이 곳에는 세조의 큰손자인 월산대군의 개인저택으로, 임진왜란 때 선조가 서울로 돌아온 후 임시로 거처했던 곳으로 행궁이었던 것을 광해군때 그 규모를 확장하여 경운궁이라 하였다. 실제로 덕수궁은 구한말까지는 그 규모가 크지 않은 별궁으로 유지되어왔으나, 1897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던 고종이 이 곳 경운궁으로 거쳐를 옮기면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정식궁궐로 바뀌었다. 덕수궁 중화전은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조례, 외국 사신 접견 등 주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는 곳으로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 궁궐의 정전으로 1902년에 완공하였으나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06년에 중건한 건물이다. 처음 중화전을 세웠을 때는 경복궁 근정전과 마찬가지로 2층 건물이었..

궁궐_종묘 2012.04.17

창녕 교동고분군 (A군), 비화가야 왕들의 묘역

창녕 고동고분군은 창녕에서 밀양으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는 5~6세기 경 비화가야 왕들의 무덤이다. 창녕중심부에서 화왕산 북쪽방면으로 나가는 고갯길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도가 고분군 중심을 지나고 있다. 편의산 국도를 기준을 서쪽을 A군, 동쪽을 B군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특별한 차이는 없어 보인다. 가야 고분을 특징을 들라면 다른 지역과는 달리 산능선을 따라서 고분이 분포되고 있는데 이는 신라나 백제, 마한의 고분에서는 볼 수 없는 가야 고분만의 특징이다. 그래서 가야 고분이 있는 곳에 올라서면 주변이 거의 확 틔여있어서 아주 기분이 상쾌하고 마음이 넓어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이 곳 창녕 교동고분군의 특징을 들라면, 높은 곳이 있는 고분은 봉분주위에 호석을 쌓아 놓은 것이 많고 아래쪽은 거의..

함안 아라가야 유적지, 도항리.말산리 고분군

가야 연맹체의 하나인 아라가야 유적지가 있는 경남 함안에는 군청이 있는 가야읍 도항리, 말산리에 수십기의 가야시대 고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넓은 평지 지역에 속하는 함안군의 중심지 낮은 야산에 자리하고 있는 이 고분군에서는 가야를 대표하는 '수레바퀴모양 토기'를 포함하여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고령 대가야 고분군에 비해 낮은 야산에 고분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라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도항리.말산리고분군에서는 '수레바퀴모양 토기'외에도 상당히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특히 마갑총에서 출토된 말갑옷은 고구려벽화 등을 통해서 묘사되고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 철기병이 사용했던 것 말갑옷의 실체를 실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중요한 유물이다. 아라가야는 낙동강과 지류인 남강이 만나는 ..

[김해박물관] 가야연맹체의 작은 나라인 아라가야, 소가야, 비화가야

삼한시대 변한지역에 소국에서 출발한 가야연맹체는 삼한시대 성읍국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야연맹체는 남해안 해상무역을 장악한 금관가야와 철의 주생산지였던 고령지역의 대가야가 두각을 나타내었고, 그 외에는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함안지역의 아라가야, 남해안 해상무역 주도권을 금관가야와 다투었던 소가야, 경북지역 낙동강 서쪽에 위치했던 성산가야, 창녕 지역의 비화가야가 가야연맹체의 소국으로서 어느 정도 세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함안지역의 아라가야는 559년 신라에 멸망하기까지 500년 이상 존속했던 국가로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함안지역에 존재했던 정치세력이다. 남해안 주요 항만인 마산항과 가까이 있으면서 낙동강 수운을 장악할 수 있었던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가까이 있었던..

지역박물관 2012.04.17

김해향교, 금관가야 중심지 김해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김해도호부 중등교육기관

낙동강하구 넓은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김해는 옛 금관가야의 도읍지로 고려시대 이래로 종3품의 부사가 수령인 김해도호부 설치된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넓은 농토와 함께 조세운송과 물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낙동강 뱃길에서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고을이다. 김해에는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김해읍성을 쌓았고, 가까운 곳에 산성인 분산성을 두고 있다. 옛 김해도호부의 관아건물로는 객사 후원과 교육기관인 김해향교만이 남아 있다. 김해향교는 관아가 있던 읍성 북문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고을 향교와 비슷한 입지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김해향교가 처음 세워진 것은 조선초인 태종대로 화재 등으로 여러차례 이전을 하여 영조대에 현재의 위치에 자라잡고 있다. 김해향교는 앞..

[김해박물관] 금관가야와 대가야, 가야연맹체를 주도했던 세력

가야는 삼한시대 변한에 해당하는 낙동강 서쪽을 중심으로 군소 성읍국가들이 발전한 연맹체 형태였다. 주로 낙동강 하류의 금관가야, 가야산일대의 대가야, 남해안 일대의 소가야, 함안지역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등 여러국가들이 철을 기반으로 한.중.일 연안무역의 중심지로서 삼국시대에는 백제, 신라와 패권을 다투었다. 구지봉 전설과 김해김씨의 시조로 잘 알려진 수로왕이 서기 42년에 세운 금관가야는 가야, 남가야, 가락국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변한 12개 소국 가운데 구야국에서 발전하였다. 금관가야는 남해안 연안무역로를 장악하여 해상활동과 낙동강을 통한 철의교역을 바타으로 전기 가야를 주도했다. 금관가야의 유적지로는 왕궁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김해 봉황대 유적과 통치자들의 무덤인 김해 대성동 고분군 등이..

지역박물관 2012.04.16

김해 봉황동유적지 (사적2호), 초기 금관가야의 주거유적지

김해 봉황동 유적은 김해 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는 김수롱왕릉 정면에 위치한 봉황대라고 불리우는 구릉과 그 주변 지역을 포함한 대규모 생활.생산유적이다. 이 일대는 일찍이 청동기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후 생산과 주거의 거점지역이었으며, 이후 대규모의 주거지, 고상건물지, 방어시설, 한국 최대 깊이의 패총 등이 발굴되는 점 등으로 보아 금관가야 지배층 집단의 중심 거주지역으로 발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2호로 지정되어 있는 봉황동유적은 1907년 우리나라 최초로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졌던 곳으로 남동쪽의 조개무덤인 회현리패총과 봉황대 일대의 주거유적을 합쳐서 봉황동유적지로 확대지정되어 있다 봉황동유적지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선사유적지와 마찬가지로 집터와 조개더미로 이루어진 곳으로 실제로 눈에 보..

[김해박물관] 금관가야의 성립, 김해 양동리고분 유적

금관가야의 중심이었던 대성동고분군과 수로왕릉이 있는 김해 구도심에서 7km 정도 떨어진 양동리고분군에서는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5세기까지 오랜기간에 해당하는 다양한 형태의 500여기의 무덤이 확인되었으며, 약 5천여점에 유물이 출토된 곳이다. 이곳은 낙동강유역가 가장 가까운 항구인 마산항에서 약 17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는 또다른 삼한시대 지방의 유력세력이었던 마산에서 13km정도 떨어진 주남저수지에 위치한 창원 다호리지역과 이는 가야연맹체의 일원이었던 함안의 아라가야와도 비슷한 조건으로 한반도 연안해상교역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가졌으며 교역을 통해서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을 누렸던 지역으로 여겨진다. 양동리고분군에서는 상당히 많은 5천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한.중.일 해상무역활동과 ..

지역박물관 2012.04.15

[맛집] 압구정동 한일관, 종로 피맛골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전통 한정식집

종로 피맛골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던 한일관 옛 건물은 사라지고 지금은 강남 압구정으로 옮겨졌다. 일반적인 평가에 의하면 전형적인 서울음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 이 곳 한일관이라고 하며, 오래전부터 유명인사들이 애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1939년에 종로 피맛골에서 처음 생긴 한일관의 음식은 서울의 특징을 잘 보여주듯이 음식이 맵거나 짜거나 자극적인 맛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으로 불고기, 유개장, 냉면 등이 맛있다고 알려져 있는 곳이다. 예전에 종로 피맛골에 있을때 이따금식 먹었던 한일관 음식이 생각나서 오랜만에 압구정동에 있는 한일관을 찾았다. 압구정 한일관은 장소가 강남으로 바뀌어서 그런지 외관상으로는 옛멋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맛은 예전의 맛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냉면,..

맛집 2012.04.15

김해읍성 공진문, 김해읍성 옛터에 남은 유일한 성문

김해는 낙동강 하구 김해평야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옛 금관가야의 도읍지이다. 삼국시대에는 금관소경이 설치되었다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대체로 종3품 부사가 수령인 김해도호부가 설치된 지역이다. 금관가야의 중심지였던 역사적 배경과 우리나라 최대 성씨인 김해김씨의 본향인 까닭에 가야와 관련된 유적들은 많이 남아 있지만, 조선시대 유적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현재 김해는 김해향교와 김해관아 객사 후원, 최근 복원된 김해읍성 북문이 남아 있다. 김해읍성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우리나라 남서해안에 출몰했던 왜구에 대응하기 위해 쌓았던 읍성 중 하나로, 김해의 지리적 위치가 일본과 가까운 까닭에 상당히 견고하게 쌓았던 읍성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세종 16년에 석성으로 축조된 김해읍성은 둘레 4,4..

창원 다호리 고분군(사적 327호), 주남저수지 부근 습지에 존재했던 초기 가야 유적지

창원 다호리 유적은 낙동강이 만든 습지와 그 주변에 만들어진 무덤, 생활공간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유적이다. 1988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 여덟 차례에 걸쳐 가야 초기의 널무덤 70여기와 삼국시대의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등이 발굴조사 되었다. 창원 다호리는 낙동강 주변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주남저수지 동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습지가 다호리 마을 입구까지 연결되어 있다. 창원 다호리는 낙동강 하류 습지인 주암저수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낙동강 이북 밀양지역, 큰 항구인 마산항, 금관가야 중심지였던 김해, 비화가야가 있었던 창녕지역과 육로와 낙동강 수로를 통해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로 고대에는 중국.일본,한반도 내륙과 교역을 통해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호리 지역은 습지에 위치하고 있었기..

초기 가야의 한.중.일 무역 거점 사천 늑도

남해안 삼천포항 앞 바다에 위치하고 있는 사천 늑도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대 한.중.일간의 중요한 무역로 위치하고 있어 고대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청동기에서 철기로 바뀌어가는 초기 철기시대 유물들이 주로 발굴되고 있는데 일본 야요이시대 토기, 중국계 유물인 낙랑토기, 중국 진(秦)나라 화폐인 반량전(半兩錢)도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다리로 잘 알려진 삼천포대교를 지나면 늑도를 포함하여 4개의 작은 섬이 있다. 첫번째 섬인 늑도에서 삼한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가면 유적지가 어딘지 찾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섬전체에서 골고루 유물이 발굴되어서 그런것으로 보인다. 삼천포항과 남해 창선도 사이의 작은 섬 늑도입니다...

[김해박물관] 가야의 여명, 삼한시대 국제무역항 사천늑도와 지방 유력세력인 창원 다호리 유적

한반도 고대국가인 고조선은 중국 전국시대가 끝나고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함에 따라서 밀려난 북경주변 연나라 세력들이 점차로 밀려들면서 위만조선으로 세력이 교체되고 고조선지배계층들이 한반도 지배계층들이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중국 사서인 , , 등에 나타나는 한반도 세력으로 기원전 3~2세기에 진국이 있으며, 그 세력의 흔적은 대전 괴정동, 예산 동서리, 아산 남성리 등에서 남아 있다. 진국은 경상도북부의 진한, 낙동강 하구의 변한, 충청.전라도의 마한으로 구성된 삼한으로 분리되며, 이들 국가들은 통일된 중앙집권국가라기보다는 지역에 세력을 갖춘 성읍국가들의 연맹체라고 할 수 있다. 낙동강 하구지역에는 진국의 변경이라는 의미로 변한으로 불리는데 이는 진한 연맹체에 속하지 않는 낙동강서안과 하류지역..

지역박물관 2012.04.15

김해 대성동고분군(사적341호), 대표적인 금관가야 고분

김해시 구도심 중심부에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김해 대성동고분군이다. 이 고분군은 길이 약300m, 높이 20m정도의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다른 지역의 가야고분군들과는 달리 거대한 봉분을 만들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금관가야가 자리잡고 있던 김해중심부에 건국설화와 관련된 구지봉, 대성동고분군, 수로왕릉, 봉황동유적지가 하천을 따라 남북으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대성동고분군은 1~5세기에 걸친 오랜 시기에 걸쳐서 조성된 무덤군으로 평지에는 1~3세기 무덤이, 구릉 정상에는 4~5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다. 특히 기존의 무덤위에 새로운 무덤을 중복 축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이지역 지배세력의 교체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출토된 유물로는 중국제 거울..

[김해박물관] 낙동강유역의 청동기, 초기 철기시대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중국신석기시대 후기인 기원전 5,000~3,000년대 중국 랴오닝성 서부의 홍산문화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한반도 고대국가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고조선의 중기쯤에 해당하는 기원전15세기 무렵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한반도 전체적으로 확산된 것은 그 이후로 여겨진다. 우리나라 청동기문화 분포는 동시대의 한반도 주변지역의 대표적인 무덤양식은 고인돌의 분포로 확인될 수 있다. 청동기시대에는 벼농사 등 농업이 발달하면서 농촌이라고 할 수 있는 대규모의 마을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촌락유적지로는 부여 송국리유적지를 들 수 있다. 또한 생활도구로서는 민무늬토기, 간석기, 목기 등이 사용되었으며 청동기는 주로 의기로서 사용되었다. 청동기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초기의 비파형 동검이라..

지역박물관 2012.04.13

진해우체국(사적291호), 일제강점기 초기에 세워진 러시아풍 근대 관공서 건축물

군항 도시 진해의 중심부인 8거리로 이루어진 중원로터리에서 모여 있는 공공기관 중 하나인 진해우체국이다. 사적 291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시작한 1912년에 세워진 러시아풍의 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원래부터 우편과 통신업무를 담당하던 우체국건물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최근까지도 우체국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이 건물은 단층건물로 136.7평 규모로 지어진 목조건물이다. 건물입구에는 강한 배흘림의 둥근 기둥이 세워졌고, 내부에 카운터가 만들어진 일제강점기에 근대화된 도심풍경을 연상시키는 건물이다. 지붕은 원래 동판으로 덮었던 것을 2차대전 당시 포탄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징발되었던 것을 1984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지어진 일제강점기 건축물 중에서는 그 연대가 상당히 오래된 ..

마산 양덕동성당, 건축가 김수근의 후기 작품경향을 보여주는 건축물

양덕동 성당은 마산이 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많은 인구가 유입된 1970년대에 설립된 천주교회 성당으로 1978년에 현재의 건물을 완공하였다고 한다. 이 대성당은 자매교구인 오스트리아 그랏즈-교구의 적극적인 협조와 요셉 브랏즈 신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건립되었다고 하며, 건축가 김수근의 후기 작품 경향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양덕동 성당 건물은 전통적인 성당 건물에서 보여주는 라틴십자형이나 로마시대 공공건물인 바실리카 형태를 하고 있지 않으며 건물의 평면배치는 4개의 잎이 달린 꽃모양을 형상화한것 같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붉은색 벽돌로 외장을 마감하고 있으며, 창문을 거의 두지 않는 암굴사원같은 느낌을 주고 있으며, 여러개의 다면체를 쌓아 올려서 피라미드 또는 지구라트와 비슷한 형태를..

[김해박물관] 낙동강유역의 선사문화, 신석기와 구석기 시대

낙동강 하류 지역은 해안가 삼각주 지역을 중심으로 비옥한 평야와 습지가 고루 발달되어 있는 지역으로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유적은 후기 구석기시대로 몸돌석기와 좀돌날몸들.슴베찌르개 등이 출토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밀양 고례리, 진주 집현 등을 들 수 있다. 신석기시대에는 이지역에 초보적인 농사가 시작되었으며, 사냥과 채집, 고기잡이 등 다양한 형태의 생활을 하였다. 신석기시대의 유물들은 주로 조개껍질을 버리던 패총에서 생활용구 등 다양한 형태의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김해 수가리 패총, 통영의 욕지도와 연대도 등 연안지역의 섬지역, 우포늪으로 유명한 늡지대가 발달한 창녕 비봉리 등을 들 수 있다. 신석기인들은 식량을 구하기..

지역박물관 2012.04.12

진해역사, 1926년에 개통된 오래된 기차역

창원시 진해구 중심부에 위치한 진해역사는 1926년 경전선과 군항인 진해항을 연결하기 위해 건설된 진해선의 역사로 해군부대에 위치한 통제부역(통해역)과 연결된다. 역사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전형적인 역사 형태를 하고 있으며, 1층건물 1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구조는 목재구조물에 시멘트 외벽으로 되어 있으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최근에 편의를 위해서 창호를 비롯하여 많은 부분이 개조되었지만 대체로 그 원형을 잘 유지되고 있는 건물이다. 진해역사가 지나가는 진해선은 비교적 이른 시기로 일재강점기인 1926년에 완공된 경전선 창원역과 진해항을 연결해주는 길이 21.2km의 철도이다. 이 곳에는 통근열차가 운행되기도 했지만 실제 승객이 많이 이용하는 철도는 아니고, 군항인 진해항의 물자보급을 위한 물류..

진해박물관, 조선시대 삼포 중 제포 왜관이 설치되었던 웅천을 중심으로 진해지역 출토유물

진해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제황산공원 2층은 예전에는 관변단체들의 사무실등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 진해의 역사를 보여주는 구립박물관으로 변신해 있다. 진해만 해안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진해는 조선시대에는 부산포, 염포(울산)과 함께 왜관이 설치된 삼포 중 하나인 제포진이 있었고, 그 안쪽에는 지방행정기관으로 웅천현이 있었다. 삼포가 설치된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진해는 고대이래로 일본, 중국을 연결해 주는 연안해상교통로의 주요 요지였으며, 가야연맹체인 금관가야의 관문이기도 했던 지역이다. 웅천현 앞바다에 위치한 제포는 부산과 함께 대마도와 가장 가까운 지역이었으며, 또한 삼면에 큰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왜인들을 일반인들과 격리시키기 좋은 지리점 잇점 등으로 일본과의 무역통로 역할은 조선후..

지역박물관 201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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