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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214

한국민속촌 한옥, 북부지방 민가 (중소지주계층 가옥)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북부지방 민가이다. 안채와 문간채, 사랑채, 광채, 별채로 이루어진 규모가 큰 가옥이다. 전체적으로 초가을 얹은 '-'자형 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추운 북부지방의 가옥이라서 그런지 대청마루나 툇마루를 거의 두고 있지 않으며, 많은 수의 방을 두고 있다. 이 가옥은 또한 농기구나 곡식 등으로 보관하기 위한 광을 많이 두고 있으며, 작은 방만 3칸이 있는 별채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대가족이 살았던 집으로 보인다. 가옥의 규모로 봐서는 농업경영에 기반하여 상당한 경제력이 있는 중소지주계층의 가옥으로 생각된다. 북부지방 민가 이 가옥은 북부지방의 가옥을 복원한 것으로 일곱채의 집이 특이한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 민가이다. 안채와 문간채, 사랑채, 광채의 4동을 기본으로 튼..

고택_정원 2011.05.07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민가 (지주계층 가옥)

한국민속촌에 전시된 한옥 중 '남부지방 민가'로 이름 붙여진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한옥이다. 이 한옥은 호남지방 주택 형식인 '-'자형의 안채와 바깥채로 구성되어 있다. 살림집인 안채는 앞면 6칸에 옆면 3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안채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안채와 사랑채가 한 건물이 있는 구조이며,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서쪽편에는 부엌과 안방이 있고, 동쪽편에는 사랑방이 있다. 바깥채 또한 앞면 6칸규모이며, 문간과 광, 외양간, 머슴이 살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옥은 평야지대인 호남지방에서 농업경영으로 상당한 경제력이 있었던 중농이상의 지주계층이 살던 집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에는 상당한 고가의 자산인 소를 키우던 외양간이 있고, 농사일을 하던 머슴을 두고 있었으며, 안방이나..

고택_정원 2011.05.05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소농가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전통 가옥 중 남부지방 소농가이다. 3칸을 겨우 넘는 일(-)자형 주택으로 농민들이 살았던 작은 집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붕은 초가를 얹고 있으면 '-'자집이라서 크지 않아 보이지만, 앞면이 4칸에 옆면이 2칸반으로 한옥 중에서는 작지 않은 규모이다. 건물 오른편에는 툇마루가 있는 사랑방과 건넌방이 있고, 사랑방과 안방을 벽면과 마루로 분리하는 등 격식을 갖추고 있는 주택이다. 부엌의 규모 또한 상당히 큰편으로 식구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주택은 건물이 크고 격식을 갖춘 것으로 봐서는 몰락한 양반이나 자영농을 하는 경제력을 갖춘 농민의 주택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의 건물에는 없으나 이 집에 광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광, 외양간, 문간방이 있는 별채와 같이 있는 것..

고택_정원 2011.05.03

한국민속촌 한옥, 남부지방 대가

용인 한국민속촌에 전시된 한옥 중 '남부지방 대가'로 이름 붙여진 한옥이다. 이 가옥은 호남지방의 가옥을 옮겨온 것이라고 하며 남부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 저택은 구한말인 19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전통적인 한옥의 모습에서 약간 벗어나,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다양한 모습으로 세련되게 꾸며놓은 저택이다. 이런 형태의 건축은 구한말에 많이 나타나는데 가장 오랜기간 동안 국왕이 사용했던 궁궐 건물인 창덕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사랑채에 누마루를 두고 통로로 사용하기 위해서 툇마루를 많이 만들어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민속촌에 전시된 이 저택은 구한말 대토지를 소유한 호남지역 갑부들의 저택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건축물의 형태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건물은 'ㄷ'자형의 안채와 'ㄱ..

고택_정원 2011.04.28

남산골 한옥마을 옥인동 윤씨가옥

옥인동 윤씨가옥은 원래는 조선 마지막 왕비인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황후의 일가이자 친일파인 윤덕영이 1910년대에 인왕산 아래 종루구 옥인동에 조성한 별장형식의 건물인 '벽수산장'의 일부인 것으로 밝혀졌다. 벽수산장은 친일파 윤덕영이 청휘각터를 비롯한 주위의 여러 별창터를 조성해서 만든 호화판 별장으로 그 면적이 2만평에 달했다고 한다. 이집은 친일파 윤덕영이 첩을 위해서 지은 건물로 일반적인 양반가옥과는 다른 약간은 폐쇄적인 분위기를 주는 집이다. 이집은 1910년대에 지어졌기때문에 건물을 지은 연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첩이 살았던 집이라 그런지 집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건물이 폐허처럼 변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주변에는 폐허로 변해서 없어진 친일파 부호의 ..

고택_정원 2011.04.09

남산골 한옥마을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도시화에 잘 적응한 서울 한옥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그 규모가 제일 작아보이는 오위장 김춘영 가옥이다. 이집은 수제비로 유명한 삼청동 식당가에 있었던 집이라고 하면 오랜 기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전통 가옥으로 남산골 한옥마을이 조성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 저택은 사랑채, 안채, 문간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건물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으면서도 생활하기에 편리하도록 조화롭게 잘 꾸며진 양반집 주택이다. 이 저택에는 2개의 출입문이 있는데 하나는 문간채를 통해서 안채로 들어가며, 다른 하나는 사랑채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일반적인 한옥과는 달리 도시에 자리잡은 한옥이라서 2개의 대문이 나란히 있는 것이 아니라 좁은 공간에서 'ㄱ'자형으로 꺽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집의 사랑채는 중간에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한칸씩..

고택_정원 2011.04.07

남산골 한옥마을, 관훈동 민씨가옥 안채

남산골 한옥마을에 있는 5채의 전통 한옥 중 그 규모가 가장 큰 민영휘 가옥이다. 이 가옥은 구한말 부마도위 박영호 가옥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구한말 민씨 일족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친일파인 민영휘의 가옥인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민영휘는 명성황후와는 먼 친척이지만 여흥민씨를 대표하는 인물로 관직생활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하는 구한말의 대표적인 탐관오리 중 한명으로 오랜 기간동안 백성들로부터 지탄을 받아 임오군란때에는 그의 집이 부서지는 사고를 입기도 하고 갑오경장때에는 탐관오리로 논죄되어 유배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수탈한 재물을 불려서 당시 조선 최고의 갑부 중 한명이었다고 한다. 휘문고등학교와 풍문여고의 설립하기도 하였으며 친일행위자로 분류되어 2007년 국가로 환수되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고택_정원 2011.04.06

남산골 한옥마을,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남산골 한옥마을로 옮겨 놓은 5채의 서울 지역 전통 한옥 중 하나로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이다. 경복궁 중건 공사에 참여했던 당대 최고의 목수가 지은 저택이라서 저택의 이름에 집주인이 아닌 집을 만든 건축가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현재는 안채, 사랑채와 중문만 남아 있지만 원래는 문간채, 앞뒤 행랑채, 사랑뒤채 등 모두 8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주택이다. 원래 이 저택은 구한말 경주이씨 집안에서 거주했던 서울 지역 양반가옥이지만, 전통적인 한옥의 구조와는 약간 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당대 최고의 목수였던 이승업이 집주인의 입맞에 맞추어 적절히 지은 것으로 보인다. 안채와 사랑채 모두 몸채에 날개채가 붙은 '丁'자형과 'ㄴ'자형을 이루고 있다. 대청마루가 있는 안채에는 난간이 있는 툇마루를..

고택_정원 2011.04.04

북촌문화센터, 조선말 세도가 '민재무관댁' 부지에 세워진 북촌 한옥

서울의 대표적인 한옥마을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북촌마을 조선시대부터 권문세가들이 살았던 마을이다. 조선시대 붕당을 상징하는 동인.서인 중 동인에 속한 사람들이 주로 살았던 곳으로 현재 남아 있는 대표적인 조선시대 주거지이다. 물론 지금 남아 있는 북촌의 한옥들 중에서 조선시대에 지어진 권문세가들이 살던 대저택들은 99칸의 대저택인 윤보선가를 제외하고는 남아 있는 곳이 많지는 않,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개량한옥들이다. 그렇다고해서 북촌의 한옥들이 한국의 한옥으로서 큰 의미가 없다고 볼 수는 없고, 서울의 도시화에 따른 한옥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기도 한다. 계동 현대사옥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북촌 관람의 출발점 역할을 하는 북촌문화센터는 본래 조선 말기 세도가의 집인 '민재무관댁..

고택_정원 2011.04.02

홍성 엄찬 고택, 성삼문선생이 태어난 마을에 남아 있는 후손들의 집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는 조선초 한글창제에 큰 역할을 했으며,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하다가 죽음을 당한 사육신 성삼문 선생의 외가가 있던 곳으로 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는 그를 기르는 사당인 노은단과 유허비가 남아 있으며, 성삼문 선생을 기리는 대표적인 유적지라 할 수 있다. 선생이 태어난 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는 오래된 고택이 한채 있는데 선생의 외손인 엄찬이라는 사람이 살았던 집이라고 있다. 이 저택은 1670년대에 지었다고 전해지며, 지금은 아무도 살고 있지않고 건물만 남아 있는 집이다. 이 가옥은 문간채와 안채가 갖추어진 양반집이었으나 지금은 문간채가 없어지고 안채만 남았는데 평면은 'ㅁ'자형 집이다. 가옥의 대지는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건물은 후대..

고택_정원 2010.12.25

홍성 전용일 가옥, 99칸 대저택의 영화가 남아 있는 19세기 양반가옥

충남 홍성군 갈산면 소재지 도로변에 있는 오래된 양반가옥인 전용일 가옥이다. 이 저택은 양반들이 모여살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갈산면 소재지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저택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현재는 99칸 중에서 안채 28칸 정도만이 남아 있는데 다른 한옥에 비해서 규모가 큰 것으로 생각된다. 홍성군 갈산면 지역은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에서 천수만과 안면도로 들어가는 교통요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보이는데, 이 곳에서 반나절 정도 걸어서 가면 천수만 바닷가로 갈 수 있다. 이런 지리적 특징으로 인해서 서해안 관광을 나섰던 옛날 사람들이 이 저택에서 하루정도 묵고 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이 저택은 안채 28칸 정도만이 남아 있는데, 'ㅁ'자형 주택구조를 하고 있다. 안채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대청마루와 ..

고택_정원 2010.12.24

홍성 김우열 가옥, 19세기 후반에 세워진 양반 가옥

충남 홍성군에서 서해안 천수만과 안면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갈산면 소재지에 자리잡고 있는 김우열 가옥이다. 19세기 후반에 만들어 이 저택은 당시 서울지역에서 유행했던 'ㅁ'자형 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갈산면 소재지에는 99칸 저택이었던 '전용일가옥'과 규모가 있는 한옥 건물인 '김좌진장군 생가'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형성된 양반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이 아닌가 생각된다. 안채는 'ㄱ'형을 이루고, 사랑채와 헛간채가 합쳐져서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주택이다. 사랑채는 바깥으로 나와 있으며, 대문과 문간채가 합쳐져서 앞면 6칸 규모를 하고 있다. 솟을대문을 만들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높은 벼슬을 한 권문세가는 아닌 것 같고, 지역에서 상당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던 집의..

고택_정원 2010.12.23

홍성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지

충남 홍성군 갈산면에 위치한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지이다. 이 곳은 보통 서해안 안면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쳤으리라고 생각된다.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를 빠져 나오면 첫번째로 만나는 마을이 홍성군 갈산면 소재지인데, 이 마을은 지역에서 대표적인 양반들이 모여사는 반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고택들이 몇곳 남아 있는데, 만석군이 살았던 99칸 대저택인 '전용일가옥'과 'ㅁ'자형 양반가옥을 하고 있는 '김우열가옥'이 고택으로 남아 있다. 백야 김좌진장군 생가터에 복원한 장군이 살았던 옛 고택 또한 지역에서 부호가 살았던 양반가 저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금은 장군의 고택과 기념관, 작은 공원이 함께 있는 전형적인 유적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김좌진 장군 고택은 행랑채와..

고택_정원 2010.12.22

홍성 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지

충남 홍성군 서남쪽에 위치한 옛 결성현이 있었던 결성면에는 이 지역이 배출한 역사적 인물인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터가 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3.1독립운동과 시집 "님의 침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로 넘어오는 시기에 '조선불교유신론'을 주창하면서 불교개혁운동을 이끌어 왔다고 볼 수 있으며, 한국불교의 중심인 조계사와 조계종 종단, 동국대 설립 등 현대 불교를 상징하는 대부분에 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태어난 생가터에는 '-'자집으로 된 3칸짜리 생가가 복원되어 있으며, 그 옆으로는 아리러니하게 그를 기리는 사당같은 건물이 들어서 있다. 선생이 태어나 살던집은 당시 농민들이 살던 전형적인 초가주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방2개, 부엌으로..

고택_정원 2010.12.21

남원 광한루 월매의 집, 조선 시대 중상류층이 살던 집을 복원한 초가집

남원 광하루원 남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초가집으로 고전 '춘향전'의 무대가 된 집이다. 이 초가집의 이미지가 이몽룡이 광한루 춘향에게 반하여 두사람이 백년가약을 맺은 집과 비슷해서 춘향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월매집'이라고 하여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내부에는 춘향전에 내용을 말해주듯이 향단이가 부엌일 하는 장면, 월매가 손님을 맞는 장면, 방자가 식사하는 장면을 재현해 놓고 있다. 초가로 만든 이 주택은 일반 서민들이 살았던 주택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전남 강진의 지주였던 영랑생가나 고창 읍성 앞에 있는 조선후기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 고택과 비슷한 규모로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던 중상류층이 살았던 저택과 비슷한 규모이다. 초가로 이루어진 본채는 '-'형으로 되어 있는데 부엌을 포한하여 앞면 5칸이나 ..

고택_정원 2010.11.29

전봉준 선생 고택,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녹두장군 살던 집 (사적293호)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인 전봉준 선생이 살았던 고택이다. 선생의 고택은 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동진강 만석보에서 약 1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선생은 이 곳에서 농사일과 동네 서당 훈장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선생은 몰락한 양반 출신으로 원래는 이지역에서 양반들이 가장 많이 사는 무성서원이 있는 태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탐관오리 고부군수 조병갑의 모친상 때 부조금을 거둬주지 않았다고 곤장을 맞고 죽었다고 한다. 몰락한 양반으로 서당 훈장을 한 것으로 볼 때 당시 지역 농민들의 대표하는 위치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현재의 고택은 원래 살던집을 그대로 복원한 것으로 보이며, 동쪽으로부터 부엌,큰방,윗방,끝방이 달린 '-'자형 초가집으로 일반적인 초가집의 구조와는 다른 ..

고택_정원 2010.11.22

아산 둔포 신항리 윤보선 전대통령 생가

아산 둔포면 신항리는 윤보선 전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마을이고, 주변 둔포지역은 경기도에서 가장 넓은 평야지대인 평택지역을 흐러는 안성천이 아산만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역이다. 윤보선 전대통령의 일가는 이 곳에서 만석군으로 불리던 집안이며, 외가 역시 아산지역 만석군 집안의 딸이었다. 그의 집은 서울에서도 가장 큰 민간주택으로 불리는 안국동 99칸 대저택이며, 이 곳 아산 또한 상당히 넓은 저택규모를 자랑한다. 아산 신항리에 있는 윤보선 전대통령생가는 해평 윤씨 집성촌인 이 곳에 남아 있는 여러채의 고택 중에 제일 규모가 큰 건물이다. 솟을대문, 바깥사랑채, 안사랑채, 행랑채, 안채로 구성된 이 저택은 서울 안국동의 99칸 저택보다는 그 규모에 있어서는 작아 보이지만, 양반 저택 중 그 규모가 상당히 큰 건물..

고택_정원 2010.10.26

아산 둔포 신항리 윤승구가옥

아산시 북쪽의 안성천이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평야지대인 둔포면은 충청도와 경기도가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예로부터 한양의 권문세가들이 터를 일구고 있었던 지역이 많은 곳이다. 그 중 윤보선 전대통령을 배출한 해평 윤씨 일가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곳이 둔포면 신항리이다. 이 곳에는 지금도 윤보선 전대통령 생가를 비롯하여 4채의 전통한옥이 남아 있는데, 그 중 제일 중심이 되는 것으로 보이는 윤승구 가옥이다. 이 가옥은 전형적인 조선말기 중부지방 상류층의 한옥이라고 한다. 건물은 문간채, 행랑채, 안채,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울이나 경북지역의 'ㅁ'자형 한옥가는 달리 여러동 건물들이 조금씩 떨어져 있다. 이 집은 솟을대문이 앞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윤씨일가에서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건물..

고택_정원 2010.10.26

아산 둔포 신항리 윤일선 가옥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는 평택과 안성에서 발원하여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안성천 하구의 둔포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사방에 산이 별로 없고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진 이 곳 둔포는 조선시대 한양의 권세가들이 대부분의 땅을 소유했던 것으로 보이는 지역이다. 둔포면 신항리는 그 중 우리나라 2대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씨가 태어난 곳이다. 윤보선씨의 저택은 서울 안국동에 소재한 서울에서 가장 큰 민간저택인 99칸의 대저택으로 아직까지 그 명백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이런 저택과 정치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집안의 경제력이 구한말 이 곳 둔포지역의 토지에서 나왔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둔포 신항리에 있는 윤보선 전대통령 일가의 저택 중 하나인 이 가옥은 대저택에서 차남에게 살림집을 내어주기 위해 만든 집의 형태를 보여주고 ..

고택_정원 2010.10.25

아산 맹씨행단 (사적109호), 청백리 정승 맹사성 고택으로 가장 오래된 민간 주택

사적 109호로 지정된 아산시 배방면에 위치한 아산 맹씨행단은 조선초기 세종때 청백리로 유명한 고불 맹사성 선생이 살던 고택과 고택 앞 수령 600년 이상된 은행나무를 지칭하는 말이다. 아산 맹씨행단이라는 이름때문에 아산 맹씨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안내표지판에 자신들은 신창맹씨임을 강조하고 하고 있다. 마당에는 고불 맹사성이 직접 심은 것으로 알려진 수령 600년된 은행나무가 있으며, 은행나무 아래서 맹사성 선생이 뜻이 맞는 사람들과 강학을 논의하던 자리라고 해서 맹씨 행단이라고 불린다. 아산 맹씨고택은 고려시대인 1330년에 최영 장군의 부친인 최원직이 건축하였다고 전하며, 실제 최영 장군이 거처하였던 집이다. 고려말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장군이 죽임을 당하여 비어 있던 집을 장군의 손주사위인 맹..

고택_정원 201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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