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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146

[중앙박물관 중국실] 흙의 신비, 중국 도자기

'China'는 중국의 영문국가명이자, 도자기를 의미하는 단어로 이는 비단과 함께 도자기가 중국을 대표하는 상품이자 문화임을 말해주공 있다. 도자기는 점토을 빚어 모양을 만들고 유약을 발라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 것을 말하는데, 중국에서는 고대국가인 상나라때 도자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회유도가 제작되었다고 한다. 한나라말에는 원시적인 도자기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녹유도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당나라때에는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당삼채가 제작되었다. 송나라때부터는 중국은 전국 각지의 가마들에서 특색있는 도자기들이 생산되면서 국제교역에 있어서 중요한 거래품목이 되었으며, 원대에는 대량생산을 통해 선박을 이용한 교역이 활성화되면서 '도자의 길'이라는 해상실크로드가 생겨났다. 이는 신안앞바..

중앙박물관 2012.05.09

[중앙박물관 신안해저문화재실] 용천요와 경덕진요를 비롯한 다양한 중국 도자시기 생산지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들

고려시대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신안선에는 2만8천여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상당수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청자이다. 신안선에 출토된 목간들을 비롯한 자료들과 생활용품 등을 분석해 볼 때 이 배에 실린 화물은 일본 사원의 승려들의 주축이 되고 상인들이 출자하여 중국에서 도자기류를 비롯한 다양한 물품을 싣고 한반도 연안을 따라 항해하여 일본 교토지방으로 운행하던 선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안선에서는 청자빛깔의 대명사인 중국 저장성 룽취안에 위치한 용천요에서 생산된 청자들을 비롯하여, 고려청자, 회색빛의 청백자가 특징인 푸젠성 민칭에 위치한 민청요, 흑색항아리의 푸젠성 홍탕촌에 위치한 홍당요, 광동성 스완에 위치한 석만요, 장시성 간저우에 위치한 감주요, 흑유잔으로 유명한 푸젠성 지엔양에 위치..

중앙박물관 2012.05.08

[중앙박물관 신안해저문화재실] 신안선 발굴로 드러낸 '해상실크로드'를 통한 교역품인 도자기

1976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는 2만8천여점에 이르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주 교역품이었던 청자를 비롯하여, 각종 생활용품, 무역거래와 화물운송에 필요한 물품표인 목간 등 당시 해상무역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안선이라고도 불리는 이 선박은 일본 불교 사원과 상인들이 출자하여 중국각지에서 구입한 물품들을 일본으로 운송하다가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실린 화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은 사치품에 해당되는 청자들로 청자의 대명사로 불리는 용천요를 비롯하여 경덕진요, 길주요 등 중국 각지의 주요 청자생산지에서 수집한 청자들이 실려 있었으며, 그 중 고려에서 만든 청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신안선이라 불리는 배가 침몰한 1232년 중국은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를 중심으로 육상과 해상을..

중앙박물관 2012.05.07

[중앙박물관 신안해저문화재실] 신안선 물품의 주인과 선원들의 생활

신안해저유물은 전남 신안군 도독도 앞바다에서 1976년에 발굴된 유물들이다. 이곳 어부의 그물에서 중국 용천요에서 만든 청자가 발견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으며, 1984년까지 8여년간에 걸처쳐 발굴이 진행되었다. 이곳에서는 2만8천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청자가 가장 많이 발견되었다. 유물들은 이곳에서 침몰한 거대한 목선에 실려 있었는데, 주요 수입품이었던 청자 이외에도 선박의 주인을 알려주는 화물 물품표인 목간을 비롯하여, 선원들이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주방기, 놀이기구, 칼 등과 이물건의 주인이 사찰과 관련되었음을 보여주는 불교용품과 함께 14세기까지 중국에서 사용되었던 대부분의 동전들이 포함되는 28톤에 이르는 동전도 함께 발견되었다. 신안해저유물에서 발견된 물품표인 목간에 적혀있는 일본 ..

중앙박물관 2012.05.03

[중앙박물관 특별전] 타임갭슐을 열다 - 색다른 고대 탐험, 경주박물관 부지 우물2에서 발견된 유물

우물은 청동기시대부터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우물벽은 나무, 돌, 토기 등 다양한 자재들로 만들어졌지만 현재 확인되는 우물은 대부분 내구성이 뛰어난 돌을 쌓아서 만든 우물들이다. 우물에서는 고대 이래로 풍요를 기원하는 제례의식이 행해졌던 것으로 보이며, 이와 관련된 많은 유물들이 전국 각지의 우물에서 출토되고있다. 경주에서는 신라의 궁궐인 월성 부근에 우물제사가 크게 행해졌던 4곳의 우물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2개는 월성 동남쪽 경주박물관 부지에서, 무열왕의 아들 김인문과 관련된 인용사지와 큰 연못인 안압지가 있었던 동궁터에서 발견되었다. 우물에는 많은 항아리를 비롯한 많은 토기류와 제물로 바쳐졌던 것으로 보이는 짐승의 뼈, 복숭아을 비롯한 식물의 씨, 각종 생활용구 등이 출토되고 있다..

중앙박물관 2012.04.30

[중앙박물관 특별전] 타임갭슐을 열다 - 색다른 고대 탐험, 경주박물관 부지의 신라 우물제사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들

중앙박물관에서는 "타입캡슐을 열다 - 색다른 고대탐험"이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을 2012년 봄에 열고 있다. 한반도를 대표한 고대 유적지인 경주의 우물터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주요 유물만을 전시하는 일반 전시회와는 달리 고고학적 조사방법론 등을 소개하기 위해서 많은 유물들이 묻혀 있었던 삼국시대 우물제사와 관련이 있었던 경주의 국립박물관 부지에서 발견된 2개의 우물과, 인용사지 우물, 신라 왕경지구(안압지) 우물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우물은 고대 이래로 인간이 물을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인공시설이다. 옛 사람들은 이런 우물을 신성시하여 바닥에 병이나 항아리를 넣어두기도 하며, 토기와 기와, 동물의 뼈, 씨앗등도 넣어두기도 한다. 경주박물관 부지에서 발견된 우물에서는 ..

중앙박물관 2012.04.29

[중앙박물관 고려실] 고려시대 무덤 출토 유물과 고려인의 내세관, 서천 추동리 무덤

서천 추동리지역은 금강하구의 충적평야지대로 농업생산력이 풍부했던 고장이다. 최근 이지역을 지나는 고속도로 건설과정에서 고려시대 무덤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약 345기에 이르는 돌덧널무덤과 움무덤이 발굴되었다. 이 무덤들에서는 고려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그들의 내세관을 보여주는 생활용품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로는 젓가락, 숟가락, 동전, 자기그릇 등 생활용품이 주를 이루는데 삼국시대 고분의 껴묻거리와는 달리 실제 무덤의 주인들이 평소에 사용하던 것을 함께 묻은 것으로 보인다. 내세관 고려인들은 죽은 이를 축복할 때 특정한 종교나 신앙에 얽매이지 않았다. 불교 승려를 장례지내면서 도교의 신선들과 하늘 신, 땅의 신 등의 권위를 빈다든가, 원래 도교적 존재이던 천녀를 토..

중앙박물관 2012.02.16

[중앙박물관 고려실] 무덤에 담긴 고려 왕실의 문화

조선왕조의 오백년의 왕릉과 신라천년의 왕릉은 대체로 체계적으로 관리되어 있는 반면에 고려 왕조의 왕릉은 주로 북한지역에 개경부근에 위치하고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형편이다. 현재 남한에는 주로 개경과 가까운 파주지역과 고려의 대몽항쟁기 수도였던 강화에 일부 왕릉들이 남아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강화 지역의 왕릉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일부 실시되었는데 수차례의 도굴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려 왕실의 문화와 생활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어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고려 왕릉은 통일신라 고분 방식과 유사하게 앞트기식 돌방무덤을 하고 있으며, 통일신라 왕릉에 비해서 강화지역의 왕릉은 봉분은 약간 작게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에 담긴 고려 왕실의 문화 몽골과 항쟁하던 시기에 고려는 왕도를..

중앙박물관 2012.02.11

[중앙박물관] 일본실, 일본의 회화

일본의 회화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싹텄다고 하며 초기 아스카, 나라 시대의 회화는 신앙의 대상으로 그려진 그림이 대부분으로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린 호류사 금당벽화가 고대 일본의 회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불교가 중심이 된 불화가 일본회화에서 중용한 위치를 차지하기는 하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회화는 간략화된 선과 화려한 색채가 인상적인 다양한 일본을 자연을 그린 풍경화와 각종 풍속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일본의 그림들은 한국이나 중국의 산수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고 있으며, 이런 일본의 회화는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을 비롯하여 서구 미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겐지모노카타리'는 11세기 초의 여성작가 무라사키 시키부의 장편소설로, 뛰어난 재능과 감성, 그..

중앙박물관 2012.01.31

[중앙박물관] 일본실, 도자기와 공예품

한국, 중국과 함께 동아시아에서 역사를 같이하는 일본은 불교를 비롯하여 비슷한 점도 많지만 바다로 떨어져 있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다른 부분도 상당히 많은 국가이다. 일제의 한반도와 중국 침략이라는 역사적 사건때문인지는 몰라도 문화재측면에서는 교류의 수준이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본은 이웃나라이기는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인 중앙박물관에서 조차도 일본을 대표하는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박물관 3층 아시아관 일본실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불교 관련 유물과 도자기 등 공예품, 그리고 회화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임진왜란 이후인 에도시대 유물들과 현대 미술품들이다. 일본과 한국은 불교라는 부분과 동아시아 역사를 공..

중앙박물관 2012.01.28

[중앙박물관특별전] 일본 비와호지역의 불교미술, 호수에 비친 극락왕생의 염원

2011년 겨울 중앙박물관에서 '일본 비와호지역의 불교미술, 호수에 비친 극락왕생의 염원'이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이 개최되었다. 가까운 이웃나라이지만 실제 접하기는 쉽지 않은 일본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제목과 마찬가지로 일본 교토 부근 비화호 지역에 산재한 불교문화재들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불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불교미술품을 우리나라의 것과 비교하면서 한번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가 되었다. 비화호가 있는 시가현은 고대에는 오미라고 불렸으며 백제유민들이 정착했던 곳이기도 하며, 동대사기 있는 나라지역, 수도였던 교토와 함께 많은 불교 유적들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오미, 비와호, 그리고 불교전래 시가현은 고대에 오미라 불렸는데, 오미와 ..

중앙박물관 2012.01.27

[중앙박물관특별전] 중국 사행을 다녀온 화가들, 태평성시도에 본 당시 중국의 도시생할

조선후기 중국 사행을 떠났던 화가들이 그렸던 당시 중국 도시의 풍경이다. 8폭으로 이루어진 이 그림은 실제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그렸다기보다는 중국 당시 보고 들었던 도시의 모습을 한 곳에 모아서 묘사하괴. 화면은 가내구역, 자연환경과 유흥구역, 군사훈련 구역르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시 도시의 상업활동에 비중을 두고 그려진 그림으로 보인다. 태평성시도, 조선후기 성(城)으로 경계 지워진 도시에서 생활하는 인물들의 활발한 모습이 그려 있으며 제3폭 어깨에 '太, 平 문자'가 써 있다. 중국 그림의 영향을 받아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도로에는 수레와 인파가 가득하고 번창한 상점과 화려한 건물이 등장한다. 화면의 구성은 상업구역, 가정 내의 생활과 가족관계를 보여주는 가내구역, 자연환경과 유흥의 ..

중앙박물관 2011.12.31

[중앙박물관 특별전] 중국 사행을 다녀온 화가들, 사행과 화가들

조선시대 중국과의 무역과 인적교류는 명나라의 바다를 통한 무역을 금지한 해금정책에 따라 공식적인 외교절차로 사신들이 상호 방문하는 조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조선시대 조공은 국가적인 중요한 행사에 사신단이 상호 방문하는 공식적인 절차였으며 사신행렬에 상인들이 참여하여 많은 무역이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중국과의 조공관계는 양국간에 상하관계를 의미한다고 하여 폄하가 되는 경향이 있으나, 당시 동아시아의 일반적인 관례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은 총 500여회에 걸쳐 중국에 사신단을 파견하였으며, 조선에서 그 횟수를 늘려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북경을 방문하는 사신단에 참여함으로서 새로운 세상과 학문을 접할 수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사신단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기를..

중앙박물관 2011.12.26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문서에 보이는 신라 마을의 모습, 일본 정창원 문서

한반도에서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청동기시대가 아닐까 생각된다. 문헌상으로도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존재했고, 기자나 위만의 존재가 있었고, 중국에서 한반도 연안을 거쳐 일본으로 연결되는 해상무역이 활발히 이루졌기때문 낙랑지역을 비롯하여 창원 다호리, 김해 예안리 유적 등에서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기때문에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한자를 사용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한자를 사용한 기록은 고대국가에서 부터 목간이나 토기를 비롯한 생활용품에 새겨진 명문, 특정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기록한 비석의 형태로 많이 남아 있다. 반면에 한나라에서 발명된 종이가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한반도에 도입되었으나 종이에 적혀진 문서의 형태로는 남아 있는 유물을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중앙박물관 2011.11.26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이두와 향찰의 발명,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우리나라에 한자가 수용된 이후 우리말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두, 향가, 향찰, 속자, 구결 등 다양한 형태로 방법들이 만들어졌는데, 보통 이를 통털어서 이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우리말을 적던 표기법으로 삼국시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고려때에는 이서라는 형태로 하급관리들이 공문서나 관용문에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보통 이두는 넓은 의미로 한자를 차용해서 음을 표기한 것을 통칭하며, 현재의 일본어 또한 이두와 비슷한 개념의 문자라 할 수 있다. 이두는 신라초기부터 사용되어 진 것으로 보이며 서동요, 제망매가 등 다양한 문학작품이 이두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 신문왕때 설총이 기존의 이두사용법을 정리하여 크게 발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두의 사용은 삼국유..

중앙박물관 2011.11.22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시대 사상,종교와 문자

고대국가에서 국가나 집단간의 교역을 위한 경제적인 동기와 지배계층의 권위를 나타내거나 통치를 위해서 문자의 사용이 확산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자의 기원 또한 길흉화복을 점치는 행위에서 그 내용을 기록하는 갑골문자 등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종교적인 행위가 당시에는 지배계층의 통치를 위한 정치적인 활동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고대국가에서 통일신라까지 시기의 문자 기록 중 상당수는 종교적인 행위와 관련이 있는 것이 많다. 대표적으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은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며, 가장 오래된 문서 또한 붓으로 쓴 사경이다. 삼국시대에는 종교적인 내용이 담긴 목간이 많이 출토되고 있으며, 중국의 능묘제도가 받아들여진 이후에는 개인의 업적을 칭송한 묘지비..

중앙박물관 2011.11.20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시대 글자가 새겨진 토기와 기와

삼국시대 사람들이 문자를 사용했던 흔적들은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돌에 글을 새긴 비석일 것이다. 비석에서는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후대에 만들어진 역사서 등을 통해서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반면에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한 문자는 화물이나 물건의 꼬리표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던 목간이나 그릇, 건축에 사용한 벽돌이나 기와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기와나 토기는 전국적으로 많이 발견되는편인데, 주로 제작연도나 제작자, 제작경위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이런 유물들 중 지명이나 마을이름 등이 적혀 있는 것에서 당시 이런 물건들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집..

중앙박물관 2011.11.18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시대 목간과 글자가 새겨진 생활용품

목간은 글을 적은 나뭇조각으로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문서라고도 할 수 있으며 책(冊)이라는 한자의 어원이 된다. 대개 나무를 폭 1cm, 길이 20~30cm, 두께 3mm 정도로 끈으로 묶어서 사용했는데, 지금의 책과 비슷한 크기라고 할 수 있다.논어를 비롯한 춘추전국시대의 다양한 저서들이 적혀 있는 목간들이 중국에서도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목재가 잘 부패하지 않는 사막이나, 뻘에 묻혀 있던 상태로 많이 발견된다. 목간은 우리나라에서 여러지역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경주 안압지를 비롯하여 삼국시대에 적혀진 목간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목간은 고조선때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한.중.일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지역에서는 교역을 위한 경제적인 목적으로 한자..

중앙박물관 2011.11.17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시대의 비석

비석은 어떤 인물이나 사건 등을 기념하기 위해 돌.목재.철재 등에 글자와 조각 등을 새겨 넣은 기념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주로 돌에 글자와 조각상을 새겨놓은 것들이 많이 남아 있으며 이를 통해 오늘날 사람들이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비석과 같은 형태의 기념물로는 고대 메소포타미의 함무라비법전,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석할 수 있게 단초를 제공해 준 로제타스톤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석들이 남아 있다. 동양에서 비석은 주로 돌에 글자를 새긴 석비의 형태로 중국 주나라부터 시작되어 한대와 당대를 거치면서 거북받침돌, 비몸, 머릿돌을 갖춘 전형적인 석비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비석 중..

중앙박물관 2011.11.16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삼국의 문방구

한자가 한반도에 전래된 이래로 문자생활을 사용했던 문방구로는 기본적으로 종이,붓,먹,벼루가 구한말 이후 새로운 필기도구들이 등장하기까지는 사용되었다. 삼국시대 이전의 문방구가 이후와 다른점은 글자를 적는 필기도구로서 목간, 죽간 등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목간은 종이가 발명대기 이전인 진한(秦漢)시대와 그 이후에도 종이와 함께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간은 끈으로 엮은 얇은 나무판에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으로 책(冊)이라는 글자의 어원이 되며, 종이가 발명된 이후에도 상당히 오랜기간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서도 문자가 도입된 이래로 목간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창원 다호리 유적지에서 발견된 붓과 지우개 역할을 했던 칼에서 알 수 있듯이 교역을 위한 실무적인 목적에서 먼저 사용되었던 것으로..

중앙박물관 20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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