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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묘(宗廟)] 하마비(下馬碑), 어정(御井)

서울 종묘는 서울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숲이자 문화유산인 동시에 종묘 앞 거리는 오래전부터 서울의 좋지 않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담기는 약간 꺼려지는 분위기를 주는 장소이다. 종묘의 입구에 있는 역사적인 장소/유물로는 조선시대에 세워진 하마비(下馬碑)와 어정(御井)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종묘 앞에는 종묘공원과 지하주차장이 있고, 이 공원에는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종묘 입구 종묘 시민공원에는 조선시대에 세워진 하마비(下馬碑)가 자리잡고 있다. 태종이 종묘와 궁궐 앞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존경의 표시로 가마나 말에서 내리도록 정하고 종묘 정문 앞 오른쪽에 새워둔 나무 푯말을 현종 때 돌로 된 하마비로 세웠다..

궁궐_종묘 2010.09.03

경주 임해전지, '안압지'라 불리웠던 아름다운 연못과 신라 별궁터

신라시대 왕궁은 월성내에 있었던데 비해 월성 동쪽편에 아름다운 안압지 연못과 같이 있는 궁궐이었습니다. 지금은 안압지의 아름다운 조경과 복원된 3동의 건물만 있고 나머지는 발굴된 주춧돌만 건물터에 남아 있습니다. 임해전지는 왕궁의 별궁이면서 왕자가 거처했던 동궁으로 사용했었다고 전해지는데 아마 월성내 궁궐은 생활하는 공간이었고 이 곳 임해전지는 손님 접대나 행사를 치루는 곳이었지 않았을까 생각되면 임해전지 정자에서는 경주에서 가장 빼어났던 건물인 황룡사 목탑을 감상하기 좋았을 것 같습니다. 1. 안압지 서쪽편 복원건물 안압지 연못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임해전 부속 건물 중 복원된 건물 3동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안압지의 아름다운 풍경에 등장하는 누각입니다. 안압지에 그림자가 담긴 모습이 상당히 아름..

경주 임해전지, 신라 왕궁 (별궁) 터, 통일신라의 영화를 엿볼 수 있는 유적지

신라시대 왕궁은 월성내에 있었던데 비해 월성 동쪽편에 아름다운 안압지 연못과 같이 있는 궁궐이었습니다. 지금은 안압지의 아름다운 조경과 복원된 3동의 건물만 있고 나머지는 발굴된 주춧돌만 건물터에 남아 있습니다. 임해전지는 왕궁의 별궁이면서 왕자가 거처했던 동궁으로 사용했었다고 전해지는데 아마 월성내 궁궐은 생활하는 공간이었고 이 곳 임해전지는 손님 접대나 행사를 치루는 곳이었지 않았을까 생각되면 임해전지 정자에서는 경주에서 가장 빼어났던 건물인 황룡사 목탑을 감상하기 좋았을 것 같습니다. 경주 임해전지에 전시되어 있는 당시 궁궐인 임해전 모형입니다. 출입문이 있고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가운데 행사를 치루는 근정전과 비슷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고 뒷쪽편에는 동궁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대몽항전의 중심이었던 강화 고려궁지(江華高麗宮址)

강화 고려궁지는 고려시대 궁굴이 있던 장소입니다. 몽골의 침략시 무신정권은 강화로 수도를 옮긴 후 이곳에 궁궐을 건립하였습니다. 몽고와의 항쟁기간인 39년 동안 이 곳을 궁궐로 사용하였으나 몽골과 화친할 때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 등을 모두 파괴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는 국왕의 행궁이 있었으나 병자호란 이후에는 행궁을 짓지 못하고 단지 강화유수부 동헌과 부속 건물만이 이 곳에 지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북방 민족과의 항쟁에서 강화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방상의 요지였기 때문에 중국의 북방 민족이 세운 정권인 원나라와 청나라는 한반도 침략 이후 강화도의 군사/행정 시설들을 모두 파괴하였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도 말만 지방 관청이지 건물의 규모나 형태로는 서울..

[전주 경기전(慶基殿)] 조선태조어진(朝鮮太祖御眞)을 모신 곳

경기전 정전은 조선 왕조를 개국시킨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건물입니다. 1410년에 창건된 경기전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광해군때인 1614년에 중건했다고 합니다. 정전은 다포계 양식으로 조선 중기의 형식이 반영된 건물로 유교의 법도를 잘 표현하고 있는 건물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경기전 내부에는 임진왜란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전주사고를 비롯하여, 전주이씨의 시조를 모신 조경묘, 예종대왕태실등이 있습니다. 경기전의 중요성을 말해주듯이 입구에는 제일 먼저 하마비가 방문객을 맞이해 주고 있으며, 옆으로는 경기전의 권위를 말해주듯 종묘와 비슷한 규모로 많은 부속건물(복원한 건물이지만...)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정전이 자리한 내삼문을 들어서면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

궁궐_종묘 2010.09.03

[전주 경기전(慶基殿)] 정전(正殿),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이 모셔진 건물

경기전 정전은 조선 왕조를 개국시킨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건물입니다. 1410년에 창건된 경기전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광해군때인 1614년에 중건했다고 합니다. 정전은 다포계 양식으로 조선 중기의 형식이 반영된 건물로 유교의 법도를 잘 표현하고 있는 건물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정전이 자리한 내삼문을 들어서면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데 좌측편 회랑에는 영조, 철종, 순종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우측편에는 세종, 정조, 고종의 영정이 모셔져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 어진(御眞)이 모셔진 보물로 지정된 경기전(慶基殿) 건물입니다. 가운데에는 신로(神道)가 있고 좌.우측으로 향로가 있습니다. 경기전 정전을 중심으로 좌우측과 내삼문 좌우로는 회랑으로 둘러져 있습니다. 경기..

궁궐_종묘 2010.09.03

[전주 경기전(慶基殿)] 조선태조어진(朝鮮太祖御眞), 태조 이성계 초상화

전주의 경기전이 존재하는 이유인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인 조선태조어진(朝鮮太祖御眞)입니다.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크기때문에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경기전 정전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져 있고, 좌우의 회랑에는 세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의 영정이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역사적 의미가 높지 않은 철종의 영정이 모셔진 것으로 보아 아마도 조선후기에 경기전을 정비할때 모셔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곳 경기전에는 영정이외에 제례에 필요한 가교, 향정, 신연 등의 가마가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주 경기전에 모셔진 보물로 지정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인 조선태조어진(朝鮮太祖御眞)입니다. 태조 이성계 어진이 모셔진 정전의 천정 장식입니다. 태조 이성계 어진이 모셔진 경기전 정..

궁궐_종묘 2010.09.03

[전주 경기전(慶基殿)] 예종대왕 태실(胎室) 및 비(碑), 그 외 부속 건물

경기전 정전에서 동쪽편 문을 나서면 전주사고가 있고, 다시 한번 작은 문을 나서면 북쪽 방향으로는 전주이씨의 시조를 모신 조경묘가 있고 남쪽으로는 불교의 부도와 비슷한 모습을 한 예종대왕 태실이 있습니다. 이곳에 태실이 있는 있는 이유는 뚜렷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경기전 정전 동쪽편에는 서울에 있는 종묘 부속 건물들과 비슷한 형태로 많은 부속건물들이 있습니다. 물론 예전의 건물들은 없어지고 최근에 복원한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기전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조선 예종의 태실입니다. 특이하게 전주의 경기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팔각형의 돌 난간안에 기단돌을 세워 놓고 둥근돌을 얹은 다음 지붕돌로 덮고 있는 모습이 불교의 부도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비석에는 예종의 태실임을 알리는 ..

궁궐_종묘 2010.09.03

[전주 경기전(慶基殿)] 외삼문(外三門), 내삼문(內三門), 신로(神道)

경기전 정전은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정전을 제외한 건물들은 임진왜란때 모두 불타버렸다. 경기전 정전도 정유재란때 불탄 것을 광해군때 다시 세웠으며, 회랑을 두고 있으며 홍살문, 내삼문, 외삼문을 통해서 정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문은 종묘의 법도처럼 삼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운데 문은 신이 드나드는 문이며 신로(神道)를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 종묘와는 달리 삼도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신로(神道)와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향을 들고 지나 다니는 조그만 향로가 있다. 경기전의 실질적인 첫번째문인 홍살문. 경기전 자체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외부보다 낮은 지대에 출입문이 있고, 길을 따라서 홍살문을 지나면 외삼문이 보입니다. 홍살문에서 외삼문까지으로 출입로. 신로(神道)..

궁궐_종묘 2010.09.03

[전주 경기전(慶基殿)] 출입문과 하마비(下馬碑)

전주 한옥마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사적지인 경기전 출입문입니다. 종묘나 왕릉처럼 삼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출입문 앞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경기전을 지나는 사람들은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도록 하마비(下馬碑)가 놓여져 있습니다. 경기전은 조선의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으로 역사적/문화적 의미가 높은곳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전주 경기전의 주출입문입니다. 종묘나 왕릉과 같이 세개의 출입문이 있고 중앙에는 조상신이 다니는 문으로 사람든 이 곳으로 출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외삼문 앞 거리에는 오래된 하마비(下馬碑)가 놓여 있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경기전 앞을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좌우측으로 출입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경기전 내부에서 본 출입문입니다. ..

궁궐_종묘 2010.09.03

[동국대박물관] 불교 경전

동국대박물관 2층에는 불교경전들과 나한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동국대에는 월인석보상절을 비롯하여 문화재로 지정된 여러 불교경전들이 있지만 박물관에 전시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박물관에는 불교 경전의 여러형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대표적인 경전들을 전시하고 있다. 초기 불경을 모습인 손으로 직접 글씨를 쓴 사경을 비롯하여, 불경 인쇄 목판, 금가루를 섞어서 쓴 금니 경전, 은가루를 섞어서 쓴 은니사경, 불교 경전 내용을 그린 그림 등이 있다. 금광명최승왕경 9책 (백지묵서, 1622년). 조선시대에 쓰여진 불교경전으로 임진왜란 후인 1662년에 만들어진 불경이다. 백지에 먹으로 글씨를 쓴 백지묵서 형태의 사경이다. 이 불경은 총 10권이었으나 현재는 9권만 남아 있다. 원래 ..

지역박물관 2010.09.03

힘이 살아 있는 안중근 의사 글씨,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대표적인 대학박물관이자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관련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동국대박물관에서 8월의 문화재로 선정해서 전시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친필 글씨인 보물 569-2호로 지정된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를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라는 이 말은 보통의 한국 사람이라면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많이 들었던 말 일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암살하고 여순감옥에 있는 동안에 여러점의 붓글씨를 남겼는데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라고 하며, 일본인 간수에게 남겨준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은 군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군의 표어 중 하나이다. 안중근 의..

서울 경희궁(慶熙宮), 일제의 수난을 많이 받은 궁궐

조선의 궁궐 중의 하나인 경희궁입니다. 오랫동안 서울고등학교 부지가 있던 장소로 지금은 앞쪽에 서울 역사박물관입니다. 한때는 임금의 즉위식도 치러지고 거처하기도 했던 궁궐이지만 규모가 제일 적었고 많이 사용하지 않았던 까닭에 일제에 의해서 수난을 가장 많이 받았던 궁궐입니다.  정전인 숭전전 건물은 일본 사찰에 팔려서 지금은 동국대 내부에서 법당으로 사용하고 있고 정문이 흥화문도 그때 옮겨져서 신라호텔 정문으로 사용하다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래된 건물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최근에 복원한 건물들입니다. 그래도 역사적으로 조선의 궁궐이었던 점을 돌이켜보면 고증을 통해서 복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됩니다.조선의 궁궐 중 가장 많은 수난을 받았던 경희궁의 정문입니다...

궁궐_종묘 2010.09.03

구한말 역사의 현장, 흥선대원군 사저 운현궁

구한말 역사와 정치의 중심지였던 흥선대원군의 거처였던 운현궁입니다. 이름은 운현궁이지만 궁궐 건물은 아니고 민간인들이 사는 사가(私家)에 이름만 궁(宮)이라고 붙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한말 고종이 등극하기 전에는 이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아마도 계속 확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입구는 권세가의 상징인 솟을대문을 통해서 들어가며, 솟을대문을 들어서며 정면에 대원군이 거처했던 사랑채인 노안당을 들어가는 출입문이 보이고 오른쪽편에 운현궁에 소속돤 관리들이 거처했던 수직사 건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직사 앞으로는 원래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넓은 마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운현궁에 소속된 관리들이 거처했던 수직사 건물입니다. 구한말 고종의 아버지인 대원군의 권세가 막강해서 상당히..

궁궐_종묘 2010.09.03

경희궁 숭정전, 법당으로 쓰이는 비운의 궁궐 전각

경희궁 숭정전 건물은 서궐이라고 불리던 경희궁의 정전으로 일제 강점기때 해체되어서 일본인 사찰의 법당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동국대 캠퍼스 정문 언덕에 남아 있다. 조선후기 광해군때 지은 건물로 일제가 경희궁을 없애고 일본인 학교인 현 서울고등학교를 설립하면서 떠도는 신세가 되었던 비운의 건물이다. 경희궁은 국왕이 항상 머무는 곳이 아니라 지방의 행궁처럼 임시로 머무러던 이궁으로 크게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궁궐의 정전인데 이를 허물어서 사찰 법당으로 사용했다는 것에서 일제나 당시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느끼게 한다. 이 전각은 남산 기슭에 있는 조계사 법당으로 쓰다가, 1976년에 이 곳 동국대학교로 옮겨져서 학교법당인 정각원으로 쓰이고 있다. 여러차례 장소를 옮기고 궁궐 ..

궁궐_종묘 2010.09.03

[아스완 엘리판틴섬] 나일미터, 나일강 수위를 측정하던 곳

아스완을 가로지르는 나일강 한 가운데에는 코키리를 닮았다고 해서 엘리판틴섬이라고 불리는 큰 섬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섬은 이집트의 나일강 상류지역에 자리잡은 누비아와의 경계지점이고 그 경계를 이루는 지역의 특성으로 요새화된 지역이었다. 한 마디디로 이 엘리판틴섬이 이집트의 남쪽 끝이었다. 이 섬에는 예로부터 나일강 범람을 예측하기 위해서 나일강의 수위를 측정해 왔고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집트 엘리판티섬의 나일 미터입니다. 여러 시데에 걸쳐서 나일미터가 설치되었는데 어떤 것은 아랍시대, 어떤 것은 로마시대, 어떤 것은 그 이전에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여기에 새겨진 수위표가 가장 오래된 나일미터로 보입니다. 로마시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나일미터의 계단 옆으로 여러시대에 걸쳐서 만들어진 여러 종..

이집트(Egypt) 2010.09.01

[아스완 엘리판틴 섬] 크눔신전, 나일강을 상징하는 크눔신에게 바친 신전

크눔신전은 지금은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기둥만 몇개 보이는 신전입니다. 아스완의 나일강 중간에 자리잡은 엘리판틴 섬의 남쪽 상류 방향 끝 부분의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마 이집트 사람이 생각하는 이집트 땅에서 나일강의 시작하는 지점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입니다. 상류쪽으로는 나일강이 협곡을 이루는 폭포지대가 보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신전 아래쪽 나일강변에는 나일강 수위를 측정하던 나일미터가 있습니다. 엘리판틴 섬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크눔신전입니다. 거대한 두개의 기둥이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마 출입구 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크눔신전의 중심위치인 장소로 보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스완의 화강암으로 만든 거대한 기둥입니다. 크눔신전 유적들의 잔해들이 곳곳이 있습니..

이집트(Egypt) 2010.09.01

[아스완 엘리판틴 섬] 나일강 상류방향의 카타락트(폭포지대)

아스완은 누비아와의 국경지대에 자리잡고 있어 나일강 상류지역과의 교류가 활발하던 곳이다. 나일강은 이 엘리판틴 섬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엘리판틴 섬 남쪽 나일강 상류는 강폭이 좁고 중간에 작은 섬들과 암초가 많은 곳으로 폭포지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큰 배들이 다니기 힘든 곳이고 그래서 지금도 아스완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예부터 이집트에서는 이 곳 엘리판틴 섬에 요새를 구축하고 상류쪽 누비아인들의 위협에 대처하면서 그들과의 무역의 중심을 이곳으로 삼아왔다. 엘리판틴 섬 남쪽 나일강 상류지역인 폭포지대의 풍경입니다. 수로가 매우 좁고 작은 섬들과 암초가 많아 나일강물이 줄었을때는 배의 통행이 불가능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조금더 상류쪽으로 가면 아스완댐이 있습니다. 엘리판틴섬과 나일강 동안 아스완..

이집트(Egypt) 2010.09.01

[아스완 엘리판틴 섬] 크눔신전 주위 주거지 유적들

아스완 나일강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크눔신전 주위의 유적지들입니다. 지금의 크눔신전 유적 자체가 프롤레오마이오스 왕조 시대와 로마시대에 조성된 까닭에 크눔신전 주위의 유적지들은 로마시대의 주거지와 비슷한 형태를 보입니다. 물론 로마나 그리스의 주거지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주거지 형태를 계승한 까닭에 서로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만 보기에는 로마의 주거지 처럼 보입니다. 에리판틴 섬의 크눔신전 주위에 있는 주거지 유적 가운데 완벽하게 복원되어 있는 한 곳입니다. 현대식 주택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크눔신전 주위로 넓게 형성된 주거지역 유적입니다. 멀리는 현재도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는 곳도 보입니다. 현재의 주거지역과 주거지 유적이 혼재해 있습니다. 뒷편의 주거지역은 누비아족 후손들이 살고 있는 누비아 마을입니..

이집트(Egypt) 2010.09.01

[아스완 엘리판틴섬] 크눔, Satet 신전, 나일강의 범람을 의인화한 신전입니다,

크눔신전과 Satet신전은 아스완의 나일강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엘리판틴섬 남쪽끝에 자리잡고 있는 신전입니다. 이 지역은 나일강의 강폭이 아주 좁아지는 폭포지대로 불리우며 나일강 하류에서 배로 다닐 수 있는 한계점과 비슷한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은 나일강을 상징하는 크눔신에게 바쳐진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Satet신은 나일강의 범람을 의인화한 신으로 크눔신전가 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신전들은 이집트에서 만든 신전이 아니라 프롤레마이오스왕조와 로마시대에 만든 신전이라 합니다. 그래서 로마 건물 풍이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엘리판틴섬의 Satet 신전 전경입니다. 이 신전은 많이 파괴되어 지금도 복구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 신전이 지금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있을 정..

이집트(Egypt) 201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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