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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궐내각사 예문관, 국왕의 말과 글을 대필하는 국왕 보좌기관

궐내각사는 규장각을 홍문관, 예문관, 내의원 등 국왕을 직접 보좌하는 관청들인 모여있는 곳으로 창덕궁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서 볼 수 있는 건물들이다. 경복궁에서도 경회루 앞의 수정전을 중심으로 같은 기능을 하는 관청들인 모여 있었다고 한다. 이들 건물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철거되고 없어졌던 것을 2005년 창덕궁 궐내각사가 먼저 복원되었다. 궐내각사는 정전인 인정전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왕과 가장 가까운 곳에 예문관과 내의원이 위치하고 있고, 그 앞쪽에 국정을 자문하는 홍문관이 자리잡고 있다. 예문관, 내의원 등은 정전 옆 작은 출입문을 통해 정전으로 출입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문관은 국왕의 말이나 글을 대필하는 기관으로 세조대에 집현전이 혁파되면서 도서출판의 기능은 홍문관으로..

조선 관아 2012.09.27

[창덕궁] 궐내각사 옥당, 조선시대 국왕 자문을 담당하던 홍문관 건물

창덕궁 궐내각사는 크게 금천을 기준으로 동쪽편에는 홍문관, 예문관, 내의원 등이 있으며, 서쪽편에는 규장각이 자리잡고 있다. 규장각이 숙종대에 지어진 국왕의 어제와 어필 등을 보관하던 건물에서 출발하여 정조대에 그 기능이 크게 확장되어 국내외 도서의 수집, 왕실 도서의 출판 등 학문의 중추지관으로 변모하였다면, 홍문관은 원래 왕실을 서적을 관리하고 국왕을 자문을 대비하는 기관으로 세종이 집현전을 설치한 이래로 학문을 관장하는 기능을 해 왔던 기관이다. 홍문관은 국왕의 건강을 살피는 내의원, 왕의 말과 글을 대신 짓는 예문관과 함께 정전인 창덕궁 인정전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어, 국왕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기관이다. 경복궁에서 집현전이 근정전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국왕을 보좌하던 것과 같은..

조선 관아 2012.09.27

[창덕궁] 궐내각사 규장각, 조선 왕실의 도서관이자 학술연구기관

창덕궁 궐내각사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조선 왕실의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규장각이다. 조선초기 세종이 창설했던 학술 연구기관인 집현전의 예를 본받아 정조가 즉위하던 해인 1776년에 창설된 기관이다. 창덕궁 외조 출입문 앞을 흐르는 금천을 기준으로 바깥에 위치하고 있는 규장각은 책을 보관하던 주 건물인 규장각을 비롯하여 검서관들이 근무했던 검서청, 역대왕들의 글과 그림을 봉안하던 봉모당, 입구의 행각, 뒷편의 책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규장각은 원래 숙종대에 왕이 지은 글인 어제와 왕의 글씨인 어필을 봉안하기 위해 지은 작은 건물이었으나, 정조대에 규장각을 확장하여 창덕궁 후원에 2층건물을 짓고 1층에 규장각 현판을 걸고 정식 정부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정조는 규장각에 기존의 어재.어필..

조선 관아 2012.09.25

[창덕궁] 궐내각사 검서청, 규장각 검서관들이 근무하던 관청건물

조선시대 궁궐 건물배치에 있어서 남북을 축으로 외조, 정전이 있는 외전, 국왕의 일상 집무공간인 편전, 국왕과 왕비, 왕실가족의 처소인 내전 등으로 구성하고 있다. 궁궐 중심축의 정전을 중심으로 동쪽편은 세자의 거처 및 집무공간인 동궁을 비롯하여 그 뒷편으로는 궁궐에 거주하는 후궁들을 비롯하여 왕실가족 거처공간이 마련되고, 서쪽편으로는 국왕을 보좌하는 직속관청들이 들어서 있는 궐내각사가 형성되어 있다. 창덕궁도 마찬가지로 정전인 인정전 동쪽편으로 궐내각사들이 들어서 있는데,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 건강을 보살피는 내의원이 정전 바로 옆에 있고, 바깥쪽으로는 정조가 세종대의 집현전을 참조하여 만든 규장각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창덕궁 궐내각사 중 금천 서쪽편에는 규장각 부속건물로 출판될 서적의 교정과 서..

조선 관아 2012.09.24

[창덕궁] 금천교 (보물 1762호), 서울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

창덕궁 금천교(보물 1762호)는 태종 11년인 1411년에 지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 돌다리이다. 창덕궁 앞을 흐르는 시냇물은 경북궁과는 달리 자연 그대로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고, 금천교는 정전인 인정전 정문인 인정문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조 바깥족 진선문 앞에 위치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궁궐에 들어갈 때는 꼭 시냇물을 건너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이는 시냇물이 풍수설에 의한 명당수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들어서면 궐내각사 앞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금천교를 지나서 외조 출입문인 진선문 앞에 이르게 된다. 이는 기존의 법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에 적절히 순응하는 창덕궁만의 건물배치를 잘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창덕궁 금천..

하남 이성산성(사적 422호), 삼국시대 한강유역을 장악한 신라가 쌓은 산성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에 위치한 이성산성은 삼국시대 신라가 쌓은 산성이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해발 209m의 이상산 정상을 중심으로 남쪽편 계곡을 막은 형태의 포곡식 산성이다. 이성산성은 한성백제의 수도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몽촌토성, 풍납토성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한성백제시기에도 산성이 존재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남아 있는 석축과 출토유물들은 대부분 신라의 것으로 보아 신라가 쌓은 산성으로 보고 있다. 이성산은 남한산성을 이루고 있는 주요 봉우리 중 청량산과 연결되어 있으며, 서울 강동지역에서 하남지역의 한강유역을 통제하기 위한 주요 군사적 거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성산성 북쪽 한강 너머로는 고구려 산성인 아차산성이 있고, 남쪽으로는 남한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이성산성은 배후의 평야지..

[창덕궁] 돈화문, 가장 오래된 궁궐의 정문

임진왜란 이후 국왕이 주로 머물렀던 창덕궁 출입문인 돈화문이다.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바깥세상에서 궁궐로 들어오는 첫번째 문으로 경복궁의 광화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보물 385호 지정된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 정문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412년 처음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이후 중수된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은 광화문과 달리 정전과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고, 동궐 서쪽끝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정전인 인정전 정면으로는 조선초기부터 존재했던 종묘가 있었기때문이다. 이는 경복궁과는 달리 법도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자연지세를 적절히 맞추어 건물을 배치한 동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돈화문은 문루가 있는 2층으로 이루어진 출입문으로 석축으로 쌓아 성문과 ..

궁궐_종묘 2012.09.22

경기도 광주향교, 남한산성에 있던 광주부 관아에서 설치한 공립교육기관

경기도 광주는 고려 성종때 전국에 설치한 12개 행정구역 중 하나인 광주목이 설치된 지역으로 그 범위는 현재의 광주시,성남시, 서울의 강남지역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한성 백제의 수도가 있었던 지역이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이성산성을 중심으로 한강유역의 중요한 거점이었으며,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했던 시기에도 광주호족은 전국의 유력 호족 가운데에서도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지역이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광주목은 인조대에 광주부로, 숙종대에는 광주유수로 승격되었다. 원래 광주의 중심지역은 현재 하남시 춘궁동 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병자호란 이후에 관아를 남한산성으로 옮겼다. 하남시 춘궁동 일대에는 통일신라시대 산성인 이성산성과 고려초기 절터이 춘궁동사지가 있으며, 조선시대 공립교육기관..

[창경궁] 관덕정, 국왕이 활을 쏘던 활터 정자

창경궁 후원 춘당지 뒷편 언덕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서양식 온실이 있고, 그 동쪽편으로 국왕 활을 쏘던 활터인 관덕정이, 서쪽편으로는 작은 연못인 애련지와 순조대에 일반 사대부 저택처럼 지은 연경당이 있고, 그 안쪽으로 크고 작은 연못들과 정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국왕이 거처하는 궁궐로 자리잡았던 동궐(창덕궁과 창경궁)에서 이 지역은 건물들은 많이 들어서 있지 않고, 국왕과 왕실가족들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큰 정원과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조선초에 지은 경복궁이나 중국 북경의 자금성과는 달리 상당히 넓고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넓은 공원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대춘당지가 있던 곳에는 국왕이 직접 농사를 짓던 논도 있었기때문에 궁궐 안에 하나의 ..

궁궐_종묘 2012.09.21

서울 여의도공원 주변 고층빌딩들, 한국 금융의 중심지

여의도는 원래 한강 하류에 발달한 범람원으로 모래땅으로 이루어진 벌판이었는데, 60~70년대에 도시개발사업으로 시가지가 건설되었다. 여의도 원래 주민들이 살던 곳이 아니라서 단독주택이 거의 없는 아파트와 빌딩만으로 이루어진 한국에서는 그 이전이나 이후에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는 지역이다. 70년대에 여의도광장을 중심으로 국회의사당, KBS와 MBC 등 방송사, 증권거래소, 전경련 회관, 순복음교회 등의 들어섬으로써 정치와 금융, 방송의 중심지로 변모하기 시작했으며, 80~90년대에는 LG쌍둥이빌딩, 63빌딩을 비롯하여 많은 금융기관의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여의도는 국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의 중심지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실제 외관상으로는 ..

한국의 풍경 2012.09.21

[취리히] 그로스뮌스터(Grossmunster), 츠빙글리가 설교하던 스위스 종교개혁의 중심지

유럽이 중세를 끝내고 르네상스시대에 접어들 무렵에 독일의 루터에 의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프로테스탄트라 불리는 신교도와 로마카톨릭이 유럽전역이 정치, 사회, 종교적으로 큰 갈등과 대립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초기 종교개혁운동은 독일을 중심으로 크게 일어났으며, 칼비과 츠빙글리로 대표되는 스위스는 종교개혁의 중심지가 되었다. 제네바가 칼빈의 종교개혁의 중심지라면, 취리히는 츠빙글리와 불링거로 대표되는 종교개혁 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도시이다. 취리히 호수 북안 리마트 강변에 세워준 스위스 최대의 로마네스양식의 교회인 그로스뮌스터(Grossmunster)는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츠빙글리가 16세기에 설교하던 대성당이었다. 이 교회는 취리히에 있는 중요한 4개의 교회 중 하나로 가장 큰 규모를 하..

스위스(Swiss) 2012.09.20

[창경궁] 춘당지, 창경궁 후원의 큰 연못

춘당지는 창경궁 후원에 있는 큰 연못으로 창경궁을 대표하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동물원 시절부터 창경원으로 대표하는 장면으로 많이 알려진 곳으로 창경궁 후원의 울창한 수목과 함께 도심속에서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다.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운 정원이 동궐 후원의 여러 연못을 지나서 흘려 내려온 냇물이 모여서 큰 연못을 이루고 있는 춘당지는 위쪽의 작은 연못인 소춘당지와 아래쪽의 큰 연못이 대춘장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춘당지에는 도교의 낙원을 상징하는 작은 섬이 조성되어 있다. 많은 전각들로 가득찬 경복궁과는 달리 창경궁은 동궐 후원과 연결된 울창한 숲과 산책로 덕분에 도심에서 잠시 숲을 즐기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도심공원이 되기도 하는 곳이다. 조선시대 창경궁에는 소춘당지만 있었고 아래쪽 대..

궁궐_종묘 2012.09.20

[취리히] 성베드로(St. Peter)교회, 최초로 개신교 교회 규칙에 의해 지어진 교회

스위스에서 금융의 중심지이자 경제적 수도 역할을 하는 취리히는 알프스산맥 북쪽에 위치한 큰 호수들 중 하나인 취리히 호수에서 리마트강으로 흘러나오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북이탈리아.프랑스.독일을 연결해 주는 교통의 중심지로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상업의 중심지이자 직물공업이 크게 발달한 지역으로 상인과 기술자의 조합인ㄷ 길드가 도시의 중심세력이었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도 라인강 수력발전을 이용하여 기계공업 등 제조업도 크게 발전한 도시이다. 취리히 구도심을 형성하고 있는 호수 북안 리마트강 주변에는 시청사, 길드롤, 그로스뮌스터, 철도역 등 도시의 중요 시설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 중 리마트강 서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취리히의 주요 교회 중 하나인 성베드로(St. Pet..

스위스(Swiss) 2012.09.19

창경궁 대온실, 일제가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조성하면서 지은 서양식 건축물

창경궁 후원 춘당지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인 창경궁 대온실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조성하기 시작하면서 처음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로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에 유리로 둘러싸고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창경원이 동물원으로 조성되면서 지어진 대부분의 시설들은 지금 철거하고 남아 있지 않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축물로 근대건축물로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로 궁궐건물과는 잘 어울리지 않지만, 원래 궁궐 후원에는 궁궐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진귀한 동물이나 식물들을 기르는 정원을 두는 것이 세계적으로도 보편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는 통일신라시대 동궁 후원이었던 경주 안압지에서 희귀 동.식물을 길렀다는 ..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보물 1119호), 라마탑을 연상시키는 중국의 석탑

창경궁 후원 춘당지 연못가에 세워져 있는 조선시대 석탑인 보물 1119호로 지정된 창경궁 팔각칠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원래 창경궁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가져온 상인으로부터 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1층몸돌에 이 탑을 세운 연대가 1470년대임을 알려주는 명문이 적혀 있다고 한다. 이 탑은 우리나라 석탑은 아니고 중국의 것으로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탑은 팔각의 평면위에 7층의 탑신을 세운 석탑으로 3단의 바닥돌 위에 1단의 기단을 올려 놓고 그 위에 7층의 탑신을 세워 올렸다. 1층 몸돌은 볼록한 형태이며, 2층부터는 목조건축물의 지붕처럼 전형적인 동아시아 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기단부에는 각면마다 꽃무늬 등을 새겨 놓고 있다. 전체적으..

서울 여의도공원, 아스팔트광장에서 도심공원으로 변모한 여의도 광장

남산공원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도심 공원으로 여의도 공원을 들 수 있다. 여의도공원은 70~80년대 개발독재의 상징과도 같았던 여의도광장이 있던 자리를 90년대에 숲이 있는 시민공원으로 바꾸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90년대 초반까지 여의도 광장은 대표적인 개발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넓은 아스팔트광장이었다. 당시에도 이곳은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공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았었고, 국군의 날에 펼쳐진 군사퍼레이드, 각종 선거의 대형 정치집회 등이 떠오르는 지금은 역사가 되어버린 과거의 장면들이 많이 연출되었던 곳이다. 지금의 여의도공원은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권위주의적인 광장에서 시민들이 쉴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90년대에 조성한 크고 작은 숲과 연못 등이 만들어졌다. 원래 자건거를 즐겼던 아스..

한국의 풍경 2012.09.18

창경궁 성종태실 및 태실비

조선시대 왕실에서 출산과 교육은 왕조를 유지하기 위한 근간으로 왕실 자손을 얻고 교육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왕실에서는 태교를 통하여 안전한 출산과 건강한 아기의 탄생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를 위해 산실청을 설치하는 등 필요한 많은 조치들을 취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태어난 아기의 태를 갈무리하는 것이데, 이는 아기의 장수와 복을 비는 것으로 중요한 국가적 행사로 삼았다고 하며, 태실도감을 설치하여 태를 봉안하고 태실을 설치하는 일을 맡았다고 한다. 태는 깨끗히 씻은 후 항아리에 보관하여 전국 각지의 풍수가 좋은 곳에 묻었다. 창경궁 후원 언덕에는 특이하게 성종의 태실과 태실비가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전국에 흩어져 있던 대부분의 조선왕실 태실을 모아서 고양 서삼릉으..

창경궁 관천대(보물851호), 국왕이 직접 천문을 관측하던 관천대(觀天臺)

창경궁에 있는 관천대는 현대그룹 계동사옥 앞에 있는 관산감관천대와 함께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2개의 관천대 중의 하나로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조선 후기 숙종 14년(1688)에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천문관측 시설로 많지 않은 유적중의 하나이다. 관천대는 높이 3m로 화강암으로 만든 석대 위에 조선시대에 가장 정밀한 천문관측대인 소간의가 설치하여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였다고 한다. 관상감 관천대는 실무관리들이었던 서운관(관상감) 관원들이 천체를 관측하던 실무용인데 반해서, 창경궁 관천대는 국왕이 직접 천문을 관측하는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천문학을 제왕의 학문으로 여겨 매우 중시하였는데, 이는 해와 달의 움직임과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시각과 절기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

창경궁 풍기대(보물 846호),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던 기상관측기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던 깃발을 세웠던 풍기대는 경복궁과 창경궁에 남아 있다. 창경궁 집복헌 뒷편 언덕에 남아 있는 풍기대(보물846호)는 화강암 석재로 만들어졌으며, 풍기대 위에 깃대를 꽂고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측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높이 228.1cm로 개다리상 모양의 하부대석과 상부 팔각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24방향으로 측정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바람의 세기와 방향의 측정은 측우기와 같이 농업에 필요한 기상현상을 측정하는 것으로 조선 세종대부터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곳 창경궁 풍기대는 영조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의 위치가 원래의 위치인지는 정확한 설명은 없으나 바람이 많이 부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현재의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풍기대와 앙부..

[베로나] 에르베광장(Piazza delle Erbe) 주변의 구도심 골목길과 줄리엣의 집

베로나(Verona)는 이탈리아 북부지방에 위치한 르네상스시대 도시국가의 모습이 많아 남아 있는 도시이다. 이 도시는 이탈리아반도에서 두번째로 긴 강인 아디제강(Adige River) 수운의 종착점이 여울목에 형성된 도시이다. 이 도시는 고대 로마의 주요 육상교통로 중 하나로 이탈리아반도 서안의 제노바에서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연결해주는 Via Postumia와 아디제강의 수운이 만나는 교통의 거점이었다. 로마제국에서도 중요한 도시로 지금도 로마원형극장, 원형경기장인 아레나, 로마시대에 건설한 피에트라다리(Ponte Pietra) 등이 남아 있다. 고대도시로서의 베로나도 잘 알려져 있지만, 베로나는 르네상스시대 주요 도시국가들 중 하나로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로 더욱 유명한 도..

이탈리아(Italy) 201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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