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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706

[성균관] 전사청과 수복청,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으로 유생들이 강당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기숙사인 동.서재에 숙식하면서 공부하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공자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중심으로 제사를 올리는 제향공간으로서의 역활도 아주 중요했다. 이는 지방의 중등교육기관인 향교나 사설교유기관 역할을 했던 서원도 비슷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로 성균관의 원래 명칭은 공자를 모신 사당이라는 뜻으로 문묘(文廟)라 한다. 성균관은 제사를 올리는 제향공간이 앞쪽에 있고,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학공간이 뒷쪽에 위치한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지방의 향교나 서원도 성균관과 비슷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지만, 중앙정부에서 운영했던 문묘답게 사당을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던 공간이 대성전 서쪽편에 별도로 ..

안동 하회마을, 작천고택과 주변 한옥들

하회마을 서쪽끝 낙동강 물길이 서쪽으로 흐르다 굽이쳐 다시 동쪽으로 흐르는 곳에 위치한 마을 종갓집인 양진당과 충효당을 지나서 골목길을 들어서면 첫번째로 보이는 집이 작천고택이다. '-'자형 안채와 초가로 지은 작은 별채로 구성된 작천고택은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종갓집과 가까운 것으로 볼 때 마을에서도 권위가 있었던 집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천고택을 지나 골목길을 따라서 걸으면, 하회마을에서 최근 유명인사로 잘 알려진 연예인 류시원이 살았던 고택인 담연재가 있다. 아직 일반인에 개방되지 않았지만 이 마을을 방문한 엘리자베스여왕도 들렀던 집으로 꽤 유명세가 있는 저택이다. 담연재 주변으로도 여러채의 고풍스러운 한옥들이 있는데,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안동지역의 전통한옥 형태인 'ㅁ'자형 주택구조에서..

고택_정원 2012.11.12

서울 성북동 성밖마을과 성북동길 걷기

서울 성북동은 조선시대 창덕궁을 중심으로 한 동궐영역 뒷편 한양도성 성밖에 형성된 마을로 북한산 자락과 북악산, 한양도성 사이의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한양도성의 대표적인 성밖마을로 조선시대에는 도성 수비를 담당했던 여영청 군사들이 주둔하던 곳으로 지금도 서울을 지키는 군인들이 북악산자락에 주둔하고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소속이었다가 일제강점기에는 고양군 성북리로 되었다가 다시 성북동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마을이 있었다고는 하나, 현재의 성북동은 일제강점기에 서울이 확장되고, 서울 성곽이 허물어지면서 성벽 너머에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성북동은 서울 도심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에 지은 도시형한옥이 많이 남아 있으며, 또한 당시로서는 외곽지역에 ..

고택_정원 2012.11.11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보물414호), 마을을 대표하는 서애 류성룡 종택

안동 하회 충효당은 마을 종택인 양진당(보물 306호)과 함께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고택으로 보물 414호로 지정된 문화재이기도 하다. 이 집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함께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서애 류성룡이 종택에서 분가하면서 지었던 집터에 후손들이 세운 작은 종택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작은 초가집이었다고 하는데 그의 손자인 류원지가 사랑채와 안채를 짓고, 증손자인 류의하가 17세기에 크게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충효당은 전체적으로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안채는 북쪽에, 사랑채는 남쪽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앞쪽에는 12칸의 긴 행랑채를 두고 있고, 사랑채 뒷쪽에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과 서애 류성룡의 유품을 전시하는 최근에 지은 영모각이..

고택_정원 2012.11.11

[성균관] 대성전과 동.서무 (보물141호), 공자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문묘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국립 고등교육기관으로 공식적인 명칭은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문묘(文廟)이다. 중국에서는 국자감, 지방에서는 향교라고 하며 건물의 배치와 기능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성균관은 공자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제향공간이 앞쪽에 인재들을 양성하고 학문을 논하는 강학공간이 뒷쪽에 배치된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성균관대학에 그 명맥을 잇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지금은 매년 봄.가을에 공제를 제사하는 석전제를 지내는 제사기능만 남았다고 할 수 있으며, 전국 유림들의 중심이 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성균관 제향공간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해 증자.맹자.안자.자사 등 4대 성인과 공자의 뛰어난 제자들인 10철, 송조 6현, 그리고 우리나라..

안동 하회마을 양진당(보물306호), 마을 대종택으로 겸암 류운룡이 살던 집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마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안동 하회마을의 대종택인 양진당이다. 이 집은 풍산에 살던 류종혜가 하회마을에 들어와 지은 집으로 알려져 있으며, 류성룡의 형으로 대학자였던 겸암 류운룡이 살던 집이다. 조선중기 안동 지역 양반가옥을 대표하는 집으로 보물 306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양진당 사랑채에는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입암(立巖)은 류운룡과 류성룡의 아버지인 류중영의 호이며, 양진당은 류운룡의 6대손인 류영의 어릴적 이름이라고 한다. 양진당은 대표적인 권문세가였던 풍산류씨 집성촌 하회마을에서도 종갓집에 해당하는 집으로 그 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다.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 안채와 별채형식으로 본채 오른편에 사랑채가 붙어 있는 구조이다. 별채의 ..

고택_정원 2012.11.09

서울 혜화동 장면가옥, 한옥과 양옥이 절충된 1930년대 개량한옥인 제2공화국 장면 총리의 사저

젊음의 거리 대학로와 성균관이 있는 명륜동 주택가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개량 한옥인 장면가옥이다. 이 가옥은 4.19혁명 이후 제2공화국 내각 수장인 국무총리를 역임한 장면선생이 살았던 가옥으로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지은 주택으로 기존 한옥건물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욕실과 화장실을 실내에 배치하고 전통한옥의 대청마루가 거실 형태로 바뀌는 등 양옥의 형식이 반영된 1930년대 개량한옥의 전형을 보여주는 가옥이다. 가옥은 살림집이라 할 수 있는 안채와 양옥으로 지어진 손님을 맞는 공간인 사랑채, 수행원과 경호원이 머무는 2동의 작은 부속채로 이루어졌다. 대문입구에 골목에서 안채를 볼 수 없도록 담장을 설치하고, 별도의 출입문으로 사랑채를 출입하게 만들어 놓고 있는 점에서 양옥이지만 기존 한옥의 기능적 특징..

고택_정원 2012.11.08

안동 하회마을 북촌댁(화경당)과 주변 한옥,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저택

하회마을 북촌댁은 양진당이나 충효당처럼 마을에서 종갓집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저택으로 원래 이름은 화경당이나 마을 북촌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고, 가장 큰 규모라서 북촌댁이라 부른다. 대지 1,700여평에 72칸에 이르는 대저택인 북촌댁은 정조대인 1797년에 류사춘이 사랑채, 날개채, 대문채를 짓고, 철종대에 증손이 류도성이 안채, 큰 사랑채,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마을 중심에 있는 삼신당 느티나무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으며, 북쪽으로 하회마을을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과 부용대가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 있는 저택이다. 마을에서 북쪽택부터 안쪽 충효당까지는 종택이라고 할 수 있는 양진당과 서애 류성룡이 분가한 충효당을 비롯하여 하회마을에서 큰 벼슬을 하..

고택_정원 2012.11.06

순천 낙안읍성, 동문 주변의 민가들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낙안군 관아 소재지에 쌓은 읍성으로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전국의 여러 읍성들 중 그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교통과 행정 중심지였던 낙안군이 일제강점기 경전선 철도개설로 철도역이 개설된 벌교읍으로 그 기능이 급격하게 이전됨으로서 원래 있었던 읍성마을 근대화 과정에 소외되어 옛모습을 오늘날까지 보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읍성내에는 약 90여호의 가옥에 실제 주민들이 옛 초가집들을 보존하면서 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낙안읍성 주변 도로가 동문 주변으로 개설되어 지금은 읍성의 정문처럼 사용하고 있는 동문 주변은 낙안읍성을 찾는 사람들이 처음 보게 되는 시골마을의 모습일 것이다. 읍성 동문 앞에 서면 오른쪽으로 식당 등으로..

고택_정원 2012.11.05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간송 전형필이 수집한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

서울 성북동에 소재한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이 전재산을 들여 수집한 우리나라의 문화재와 미술품 등을 전시하는 대표적인 사립 미술관이다. 2층콘크리트로 지은 간송미술관은 최초의 근대식 사립 미술관으로 건물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편이며,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연구소에 가까운 건물이다. 실제로 간송미술관은 매년 2회 정도만 전시회를 개최하여 소장품들을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간송미술관은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지만 북악산자락이 뻗어내려오는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별장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는 곳으로 소장품들을 일반에 공개하지 않게 때문에 소장유물들을 볼 수는 없지만, 미술관 정원을 거닐면서 간송의 발자취를 한번 느껴보기에 좋은 곳이다. 미술관 정원에는 고려시대 불상과 석탑 등 석조유물들을 감상할 수..

지역박물관 2012.11.05

안동 하회마을 양오당(주일재)과 가온당, 분가한 후손들이 지은 양반 가옥

안동 하회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마을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낙동강이 'S'자형으로 굽이쳐 흐르는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마을로 서애 류성룡으로 대표되는 풍산류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는 마을로 후대에 고관을 많이 배출하여 경제적으로 부를 많이 축적한 양반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하회마을은 서애 류성룡의 형으로 대학자였던 류운룡의 종택이자 종가집인 양진당을 중심으로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크고 작은 저택들이 들어서 있다. 대체로 후대로 가면서 분가한 저택일수록 양진당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외마을 종가집인 양진당에서 분가한 대표적인 저택인 서애 류성룡 종택인 충효당 뒷편으로는 그의 증손인 류인하가 분가한 집인 양오당이 있다. 주일재라고도 불리는 이 가옥은 후대에 분..

고택_정원 2012.11.05

여수 흥국사, 전라좌수영을 도왔던 승병들이 수행했던 영취산 자락 조선후기 대표적인 호국사찰

여수 흥국사는 원래 고려때인 1195년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현재의 흥국사는 조선중기에 중건된 사찰로 임진왜란때 여수에 있던 전라좌수영을 도와 호남지역 의병과 승병들의 항쟁에 중심이 되었던 사찰이다. 그때의 공적을 인정받아 인조대인 1624년에 계특대사가 크게 중창한 사찰이다. 흥국사는 대표적인 호국사찰로 지금은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사찰입구에 일주문이 세워져 있지만 원래는 읍성의 성문처럼 공북루라는 누각이 있었고 성벽이 있었다고 한다. 한때는 500여명의 승려가 상주했을 정도로 큰 사찰로 다른 사찰에 비해서 요사채 건물이 상당히 많은 편이며, 이들을 대표하는 불전인 부처의 제자들을 모신 나한전이 있다. 흥국사는 구한말 전라좌수영이 폐지될때까지 전라좌수영과 연계한 승병체계를 ..

전국 사찰 2012.11.04

서울 성북동 최순우 옛집, 일제강점기 도시한옥의 모습이 남아 있는 미술사학자 최순우가 살던 집

서울 성북동 선잠단 맞은편 주택가에 남아 있는 최순우 옛집은 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가 살던 집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서울에서 크게 유행한 도시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는 집으로 'ㄱ'자형 본채와 'ㄴ'자형 바깥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본채는 사랑방이 앞면 4칸의 본채와 대청마루와 방이 있는 3칸짜리 날개채로 되어 있고, 바깥채는 대문과 문간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집은 2002년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성금으로 매입하여 운영관리하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재로 일제강점기 한옥을 대표하는 의미로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혜곡 최순우(1916~1984)는 개성시립박물관에 입사한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기도 하는 등 평생을 박물관에 재직하면서 ..

고택_정원 2012.11.02

안동 하회마을, 하동고택과 염행당

안동 하회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마을로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이다. 조선초기 풍산류씨가 정착한 이후 서애 류성룡을 비롯하여 많은 문신들과 학자들을 배출한 전통있는 마을로 이중환의 택리지에 영남 4대길지로 손꼽히는 마을이다. 하회마을은 옛모습이 남아 있는 전통마을이지만 실제로는 일반 농민들이 살았던 마을이라고 할 수는 없고 정부 고위관료들을 많이 배출하고 많은 농지와 노비를 소유했던 조선시대 지배계층인 양반계층을 대표하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에는 보물로 지정된 충효당과 양진당을 비롯하여 가장 큰 규모의 저택인 북촌댁 등 풍산류씨 일가에서 성공한 후손들이 분가하여 지은 크고 작은 기와집들이 많이 남아 있고, 초가집들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상당부분은 규모가 크고..

고택_정원 2012.11.02

서울 성북동 이태준가옥과 이종석 별장,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별장형식 한옥

성북동은 한양도성 북쪽 성밖에 있는 마을로 북향을 하고 있는 성밖마을과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북악산자락 아래 남향을 하고 있는 주택가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마을이 크지 않고 도성수비를 하는 군대가 주둔하는 곳이기도 했다. 성북동에는 일제강점기 이후 도시가 확장되면서 도성 바깥쪽 언덕에 서민 주택들이 들어섰던 것으로 보이며, 그 중에서는 별장 형식의 한옥들도 있다. 지금도 성북동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한옥들이 몇채 남아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만해 한용운 선생이 살았던 심우장, 작가 이태준이 살았던 가옥, 중앙박물관장을 지냈던 최순우 옛집, 일제강점기 부호였던 이종석 별장 등이 있다. 성북동 골짝기에서 중간쯤에 위치한 상허 이태준 가옥은 지금은 복개해서 보이지 않지만, 성북동 개울이 내..

고택_정원 2012.11.01

안동 하회마을, 마을 입구 장터와 하회마을 들어가는 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안동하회마을은 조선시대 이후 풍산류씨가 터를 잡고 살아온 전형적인 반촌이다. 임진왜란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을 비롯하여 많은 학자와 고관들을 배출한 집안으로 마을 곳곳에 이들이 자리잡고 살아왔던 오래된 고택들을 남아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봉화 닭실마을, 안동 천전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대표적인 길지로 손꼽히는 마을이다. 태백산 줄기에서 뻗어내려온 화산이 낙동강과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은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여러차례의 전란에도 화를 입지않고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양동마을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마을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하회마을은 앞쪽으로는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고, 뒷편으로는 높지는 않지만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안동..

한국의 풍경 2012.11.01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과 남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주변 펜션들

남해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는 금산의 보리암과 함께 남해안의 큰 섬 남해도이 명승으로 잘 알려진 남해 가천 다랭이 마을이다. 여수 돌산도를 바라보고 있는 설흘산 자락 아래의 비탈진 경사지를 논으로 일구어 놓은 계단식 다랑이논이 있어서 다랭이마을로 부른다. 중국 강남 내륙지역의 끝없이 펼쳐지는 다랭이 논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남해 바다를 배경으로 화려한 곡선이 인상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해방 이후 깊은 산골을 제외하고는 경지정리 등으로 거의 없어진 다랑이 논이 경사진 언덕을 따라서 펼쳐진다. 실제 다랑이논은 기계를 이용한 모내기와 수확이 어려워 농사짓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곳으로 언제까지 논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해안 명승으로 지정되어 당분간은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

한국의 풍경 2012.10.31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와 북한전시관

오두산통일전망대는 서울에서 자유로를 이용해서 40여분 내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한강과 임지강이 합류하는 지점있는 해발 118m의 나지막한 동산위에 자리잡고 있다. 삼국시대 한성백제 시기에 한강수운을 통제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백제가 쌓은 산성이 오두산성이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전망대는 임진강 건너 북한땅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한강 하구의 풍경 또한 아름다운 곳으로 전망대에서는 남쪽의 김포 하성면 지역과 서쪽의 북한 개풍군 지역, 북쪽의 임진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전망대는 오두산 아래에 위치한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올라갈 수 있으며, 전망대 입구에는 해방이후 북한지역에서 활동한 민족진영 인사인 조만식 ..

지역박물관 2012.10.31

서울 성북동 심우장, 만해 한용운 선생이 살았던 성밖마을 소박한 한옥

시인 김광섭의 시 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서울 성북동 서울성곽 바깥 북향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심우장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이자 의 시인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만년에 살았던 집이다. 말년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마련해준 조그마한 거처로 서민들이 거주하던 성북동 성밖마을 언덕에 자리잡은 크지 않은 저택이다. 총독부를 등지고 있다는 의미를 가진 북향집으로 앞면 5칸짜리 소박한 한옥이다. 원래 선방을 지으려고 마련해 두었던 땅에 지은 집으로 마당은 넓은 편이며, 마당에서 성북동 골짜기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광섭의 시 에 등장하는 채석장이 있는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풍경이다. 심우장은 불교에서 소를 찾는 동자가 산속에 헤메는 모습에서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비유..

고택_정원 2012.10.31

여수 돌산대교와 제2돌산대교, 여수와 돌산도를 연결하는 사장교 다리

여수 돌산도는 여수항시 남쪽편에 있는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여덟번째로 큰 섬이기도 한다. 여수반도 남쪽끝에 위치한 여수항을 막고 있어서 큰파도와 태풍을 피할 수 있는 좋은 항구로서의 입지를 만들어 주고 있는 섬이다. 돌산도는 1984년에 완공된 돌산대교와 최근에 완공된 제2돌산대교(거북선대교)로 연결되어 있어 지금은 육지화된 섬으로 돌산도 갓김치와 대표적인 관음성지인 향일함으로 잘 알려진 섬이다. 여수 돌산도와 육지을 연결하는 돌산대교는 1984년에 완공된 길이 450m에 2차선도로가 있는 다리이다. 돌산도와 여수시 사이의 해협은 연안항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선박의 왕래가 많고, 수심이 깊고 조류가 빨라서 높이 62m의 강철교탑을 세우고 강철케이블로 다리를 묶어 지탱하는 대표적이 ..

한국의 풍경 201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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