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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706

보성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태백산맥문학관은 보성군이 주도하여 세운 조정래의 대하소설 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문학관이다. 문학관이 있는 곳은 소설 첫장면으로 등장하는 소화의 집과 현부자집으로 소개된 일제강점기 대지주의 저택이 있는 벌교읍 회정리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누마루가 있는 솟을대문과 그 앞 마당의 연못이 인상적인 일제강점기 대지주의 집인 현부자집과 소화의 이미지가 태백산맥을 대표하기도 하지만, 중도들판과 순천만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회정리 언덕이 문학관이 들어서기에 적합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학관내에는 작가가 이 작품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작성했던 취재메모를 비롯한 각종 자료, 작가 사용했던 집기들, 16.500장에 이르는 육필 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된 자료들을 통해서 ..

지역박물관 2012.10.20

여수 흥국사 홍교(보물 563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홍예

보물 563호로 지정된 여수 영취산 흥국사 입구 계곡에 놓여진 대표적인 아치형 돌다리인 흥국사 홍교이다. 인조 17년(1639)에 세워진 홍예로 이루어진 돌다리로 현재 알려진 다리 중에서는 아치의 높이가 가장 높고 길다. 사람이 많이 오가지 않는 산중 사찰 입구 계곡에 홍예 다리를 세운것은 바깥세상과는 다른 부처의 세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 남아 있는 홍예 돌다리 중 상당수는 사찰입구에 세워진 다리이다. 이 다리는 계곡 양쪽 바위에 기대어 무지개 모양으로 잘 다듬은 화강석을 이용하여 홍예를 쌓고 그 위에 자연석으로 메꾸어 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 홍예의 한가운데에는 양쪽으로 용머리 모양을 조각해 놓고 있으며, 홍예 천장에도 물을 향하고 있는 용머리 조각이 있다. 여수의 명..

파주 덕은리 주거지 및 지석묘군(사적 148호), 청동기시대 주거 유적과 무덤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의 나즈막한 야산에 남아 있는 청동기시대 유적지이다. 20여기의 북방식 고인돌과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네모꼴의 움집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청동기시대 무덤이 고인돌과 집터가 같은 장소에서 발견된 곳으로 집터에서는 구멍무늬토기, 간돌칼, 돌도끼, 가락바퀴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 집터의 연대가 기원전 7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어, 무덤인 고인돌들은 그 이후에 만들어 졌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고인돌(지석묘)이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굄돌을 지상에 세워서 돌방을 이루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무덤방이 땅속에 있으면서 받침돌에 덮개돌이 놓인 바둑판식, 맨 땅 위에 덮개돌이 놓이 개석식으로 구분된다. 현재 우리 나라 전역에 약 3만기 정도 남아 있다. 임진강변에 남아 ..

연천 전곡리 선사박물관, 전곡리 유적지 발굴.조사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와 구석기 유물들

전곡리 선사박물관은 구석기시대 유물들이 출토된 대표적인 선사유적지인 연천 전곡리 유적지 입구에 2011년에 세워진 박물관이다. 원래 전곡리 유적지 내에 있는 토층전시관에서 전곡리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 일부와 유적지 발굴과정을 보여주는 각종 자료와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최근에 이곳에 국내 최대규모의 선사박물관이 개관되면서 발굴지점에 발굴과정을 재현해 놓은 토층전시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이곳으로 옮겨서 전시해 놓고 있다. 전곡리 선사유적은 동아시아에 최초로 대표적인 구석기 유물인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된 곳으로 이런 유물들은 아프리카와 유럽에서만 사용되었다는 학설을 뒤엎는 발견으로 당시 학계에 큰 주목을 받았다. 전곡리 유적지에서는 주먹도끼, 주먹찌르개, 긁개 등 다양한 종류의 석기가 다량 발견되었다..

지역박물관 2012.10.19

순천 낙안읍성 관아 아문인 낙민루와 임경업장군 선정비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많은 읍성들 가운데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낙안읍성은 원래 세종대에 흙으로 쌓은 토축성을 개축하여 석축성으로 쌓은 것이다. 현재의 성벽은 조선 인조대에 낙안군수를 지낸 임경업장군이 크게 보강한 것으로 지금도 읍성내 관아 객사 입구에 그의 선정을 기리는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낙안읍성내에는 아직도 100여명 이상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초가집들이 있고 읍성 북쪽편에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들이 있다. 낙안읍성 관아건물로는 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었던 객사, 최근에 복원된 동헌과 내아, 문루인 낙민루가 있다. 읍성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길가에 위치하고 있는 관아 출입문인 낙민루는 다른 지방 관아 문루가 동헌 입구에 있는 것과는 달리 고을 수령의 숙소인 내아 출입문..

조선 관아 2012.10.19

벌교 대지주 저택, 소설 태백산맥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집

소설 태백산맥에서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인물로 등장하는 김범우의 집으로 소개된 대지주 저택이다. 벌교천을 건너는 홍교 동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이 대저택은 순천만 해안과 낙안들판을 연결해 주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에 벌교천을 건너는 다리였던 홍교가 설치되어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낙안, 순천, 보성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교통로였던 곳으로 보인다. 이 집주인은 벌교지역 대지주였으며, 이집 막내아들이 태백산맥 저자 조정래의 친구였기때문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때문에 소설에서 긍정적으로 표현된 대지주의 집으로 소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대지주의 저택인 현부자집이 일본식이 많이 반영된 당시로서는 신흥부호가 살았던 현대식 대저택이라는 느낌을 준다면, 이집..

고택_정원 2012.10.18

순천 낙안읍성 내아, 고을 수령이 머물던 살림집

낙안읍성은 전남 순천시 낙안벌판 북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옛읍성이다. 읍성에는 100여 가구의 주민들이 지금도 살고 있는 초가마을이 있고, 옛 낙안군 관아 건물인 낙악객사, 동헌, 내아, 문루 등이 남아 있다. 현재의 기준으로 지금 남아 있는 읍성내 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이지만, 조선시대 이곳은 종4품 군수가 고을 수령이었던 약간 큰 규모의 고을이자, 이 지역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읍성 관아 건물 중 객사는 초등학교 건물로 사용하다가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고, 동헌과 내아는 옛 기록을 바탕으로 복원한 건물이다. 그 중 내아 건물은 마당이 넓고, 본채 외에는 부속건물을 두지 않는 구조이다. 본채는 'ㄱ'자형 구조를 하고 있으며, 'ㅁ'자형으로 이루어진 다른 지방 관아의 내아와는 달리 개방된..

조선 관아 2012.10.18

연천 전곡리 선사박물관, 전곡리 유적지에 세워진 자연사박물관

전곡리선사박물관은 전곡리 선사유적지 입구에 2011년에 세워진 박물관이다. 원래 전곡리유적지에 있는 전곡리토층전시관에서 전시하던 전곡리 유적지 발굴과 관련된 유물들을 옮겨 전시하면서,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사박물관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전시실에는 인류의 탄생부터 현생인류까지 진화된 모습을 모형과 발굴유물(복원품)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전곡리 유적지에 대한 지형적 특징, 발굴유물에 대한 설명, 발굴과정에 사용된 일지나 발굴도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그 중 자연사박물관의 성격을 갖는 상설전시실은 전시물들은 인류가 탄생한 아프리카의 자연환경, 가장 오래된 직립보행의 증거인 투마이인, 호모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호모사피인스 등 시대에 따라서 진화해온 인류의 유골..

지역박물관 2012.10.18

순천 낙안읍성 동헌, 낙안군수가 근무하던 읍성내 동헌 건물

낙안읍성은 옛 낙안군 관아가 있던 읍성으로 낙안군은 전남 순천시 낙안면.외서면과 보성군 벌교읍 일대를 관할하던 옛 고을의 이름이다. 조성시대 지방행정 단위 중에서는 중간 정도 규모로 종4품 군수가 고을 수령으로 있던 곳이다. 관아가 있던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지방 행정의 중심지로 관아를 비롯하여 성벽과 내부의 마을의 모습도 원형에 가깝도록 보존되어 있어,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지역 중심지에서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낙안은 서남쪽을 제외하고는 산으로 둘러싸은 넓은 분지가 평야를 이루는 곳으로 관아가 있는 낙안읍성는 평야의 북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낙안읍성은 동문에서 서문으로 연결되는 큰 길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아전들을 비롯하여 관아와 관련된 사람들이 거주했던 민가와 상점들있고,..

조선 관아 2012.10.16

보성 회정리 현부자네 집,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중도 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대지주 저택

소설 에 등장하는 많은 장소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첫 장면에 등장하는 회정리 현부자집이다. 기와를 얹고 담장이 있는 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전통 한옥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일제강점기 대지주 계층의 저택이다. 서울의 집장사집이라 불리는 북촌 한옥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한옥이다. 소설 첫장면에 정하섭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면서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저택이다. 저자는 지역의 대지주이면서 벌교읍과는 약간 떨어진 넓은 중도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이집이 소설에서 지역 토호들을 대표하는 현부자의 집이라는 이미지와 맞아 떨어져서 집의 구조와 위치 등 특징을 자세히 묘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설 의 상징적인 장소여서 그런지 이곳에 태백산맥문학관이 세워졌다. 안..

고택_정원 2012.10.15

순천 낙안객사, 낙안읍성에 남아 있는 고을을 방문하는 중앙관리들을 위한 숙소

조선시대 낙안군 관아가 있었던 낙안읍성은 조계산 남쪽자락에서 남해안 순천만까지 이어지는 낙안벌판의 북쪽끝에 자리잡고 있다. 고려말에서 조선초 왜구의 침입이 극심할 때 처음 토성을 쌓았던 것으로 인조대 낙안군수를 역임한 임경업 장군이 현재의 모습처럼 석축성으로 중수하였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중 그 원형에 가장 가깝게 남아 있게, 실제 주민들도 당시의 초가주택에서 그대로 살고 있는 등 조선시대 지방 관아를 중심으로 읍성의 모습을 실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마을이다. 낙안읍성에는 조선시대 관아를 이루고 있던 객사, 동헌, 내아가 원래의 모습대로 남아 있다. 조선시대 객사는 외국 사신이나 왕명으로 지방을 방문하는 중앙의 관리들이나 귀빈들을 위한 숙소로 지어진 건물이다. 본래의 기능은 객사 중앙 대청마..

조선 관아 2012.10.15

보성 벌교 홍교(보물304호), 현재 남아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조선시대 홍교

보물 304호로 지정된 보성 벌교 홍교는 현재 남아 있는 홍교들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다리로 원래의 모습은 알 수 없지만 지금도 3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홍예가 남아 있다. 원래는 폭 4m, 길이 80m의 상당히 큰 규모의 홍예 돌다리였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길이 약 27m 정도로 높이 3m의 홍예 3개가 남아 있다. 홍예 밑 천장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돌출되어 있으며, 아래를 향하도록 되어 있다. 이 다리는 조선 영조 5년(1729)에 선암사의 한 스님이 돌다리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 여러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인물인 김범우의 마을 앞에 놓여진 다리로 묘사되는 벌교 홍교는 낙안벌을 지나 남해안으로 흘러드는 벌교천을 건너는 다리이다..

벌교 구 보성여관, 소설 태백산맥에서 남도여관으로 소개된 일본식 여관 건물

보성군 벌교읍에 위치한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알려진 옛 일본인 거리에는 일제강점기 교통 중심지에 위치한 소읍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철도교통의 중심지로 당시 상업이 번창했던 벌교에는 철도역을 중심으로 일본인들 거주했던 지역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해방 이후 도시화가 크게 진전되지 않았던 까닭에 여러 건물들이 남아 있는데, 그 중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는 건물로는 태백산맥에 남도 여관으로 표현된 일본식 여관건물이었던 남도여관과 당시 서민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금융기관이었던 금융조합건물이 있다. 그외에도 일본식 건물들을 헐어내고 70~80년대에 새로 짓기는 했지만, 일본식 거리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벌교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보성여관은 1935년에 지어진..

포천 반월성 (사적 403호), 한강유역과 함경도를 연결하는 교통로를 지키는 신라산성

포천 반월성은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에 있는 해발 283.5m의 청성산을 중심으로 축조된 테뫼식 산성으로 그 형태가 반달과 같다고 하여 반월산성이라고 부른다. 포천지역은 추가령지구대를 따라서 형성된 서울과 함경도 동해안 원산, 함흥지역을 연결해 주는 주요 교통로 위치해 있는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려온 한맥정맥의 험준한 산악지대로 화악산, 명지산, 운악산 등 해발 1,000m 이상의 산들 즐비하며, 서쪽으로는 소요산, 왕방산 등 500m 이상 놀은 산들이 연결되어 있다. 포천은 대체로 양쪽 산맥사이에 형성된 비교적 넓은 분지에 형성된 넓은 농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반월성이 있는 청성산은 포천지역 분지의 북쪽 끝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이지만, 지형적으로 남쪽분지의 평야지대와 철원지역으로..

[덕수궁] 중명전, 서양식 왕실 도서관 건물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

덕수궁 중명전은 정동길 정동극장 뒷편에 옛 미국대사관과 나란히 있는 건물로 일제강점기에 덕수궁 일원에서 제외되어 서울구락부라는 사교단체 등에 임대되었던 건물이다. 중명전은 1897년 황실도서관으로 지어진 건물로 원래 이름은 수옥헌이었으나, 1904년 덕수궁 화재때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서 중명전이라는 이름으로 바뀐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덕수궁과 떨어져 있지만, 동쪽편의 미국대사관저, 서쪽편의 예원학교와 함께 덕수궁 궐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덕수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영역은 원래의 1/3정도로 축소되어 대한제국의 궁궐이었음에도 다른 궁궐에 비해 좁아 보인다. 이 곳은 덕수궁 화재 이후 편전으로 사용되어 외교사신의 접견이 이루어졌던 장소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중..

궁궐_종묘 2012.10.12

포천 영송리 유적, 한성백제 시기의 집터 유적

포천 영송리선사유적은 한탄강 지류인 포천시 백운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영평천과 포천시 지역에서 흘러내려오는 포천천이 합류하는 영평천변에서 발굴된 선사유적지이다. 이 유적지는 하천에서 자갈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청동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영평천을 따라 포천과 연천지역을 연결해주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편으로는 농지가 약간 넓은 편으로 선사시대부터 마을을 형성하면서 사람들이 살아 왔던 지역으로 보인다. 이 유적지에서는 원삼국시대와 한성백제 시대의 움집터가 발견되었는데 집터 안에서 화덕자리와 부뚜막 같은 시설물들이 발견되었고 항아리와 단지 등의 토기들이 사용되고 있던 형태로 발견되어 당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유적지이다. 이곳은 하천변에서 자갈채취 과정..

[창덕궁] 성정각과 관물헌, 세자가 거처하던 동궁

창덕궁 성정각과 관물헌은 왕세자가 머물던 동궁으로서 국왕의 처소인 희정당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성정각은 원래는 동궁이었으나 한때는 내의원으로 쓰였기 때문에 내의원으로 많이 알려진 장소이며, 관물헌은 구한말 갑신정변 때 고종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국왕과 왕비가 주로 거처했던 편전과 내전인 선정전과 대조전에서 대비를 비롯하여 왕실가족들이 많이 거쳐했던 창경궁과 후원으로 연결되는 길목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서 동궐을 오고가는 사람들이 잘 내려다 보이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에 있어서 행동하기에 약간 불편했을 것으로 보인다. 성정각 안쪽에 작은 행각에는 이곳에 내의원이었음을 말해주는 '보호성궁', '조화어약'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성정각과 관물헌은 세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일반..

궁궐_종묘 2012.10.12

연천 삼거리 유적지, 임진강변 청동기시대 주거 유적지

연천 삼거리는 군남면 소재지가 있는 임진강변에 위치한 마을이다. 임진강을 따라서 서안에 비교적 넓은 농지들이 있는 지역으로 임진강을 따라서 남북으로 78번 도로가 연결되어 있고, 지금은 휴전선으로 막혀 있지만 연천과 황해도를 연결하는 도로와 임진강 나루터가 있었던 곳이다. 임진강이 있고 비교적 넓은 농지가 있어서 선사시대 이래로 사람이 거주했던 곳으로 보인다. 이 곳에서는 1996년 집중호로 임진강이 범람했을 때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의 유적과 유물들의 노출되어 여러곳의 주거 유적과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사용했던 토기와 석기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유적이 발견된 곳은 임진강 나루터가 있던 곳에 세워진 다리인 북삼교 남쪽편 임진강 동안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선사시대 이래로 임진강을 건너는 주요 ..

[창덕궁] 선정전(보물814호), 국왕이 집무를 보던 편전건물로 유일하게 청기와를 얹은 건물

선정전은 창덕궁의 편전으로 국왕 일상적인 업무를 보던 공간이다. 조선시대 국왕은 지금의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는데, 그 중 상당부분이 편전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주요 일과라 할 수 있다. 편전에서 이루어지는 주요 업무는 신하들과의 조정회의, 중요한 업무보고, 세미나 성격의 경연 등이 있다. 이곳에서의 모든 회의 내용은 사관이 참여하여 기록을 남겨놓는데 이를 사초라 하며, 사초의 내용을 바탕으로 당대의 역사라 할 수 있는 실록을 편찬하였다. 창덕궁 편전인 선정전은 경복궁과는 달리 정전과 일직선으로 배치하지 않고 자연환경에 맞추어 동쪽편에 배치되어 있다. 창덕궁은 원래 상왕이었던 태종을 위해 지은 이궁(離宮)으로 건물의 규모를 크게 짓지 않아기 때문에 경복궁 편전인 사정전에 ..

궁궐_종묘 2012.10.10

연천 통현리 지석묘, 청동기시대 무덤

연천군 통현리 일대는 임진강 지류인 한탄강과 임진강 사이에 형성된 넓은 들판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한탄강변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가 있는 등 사람인 정착해서 살기 좋은 지역 중 하나이다. 한강유역과 함경도와 황해도 지역으로 연결되는 교통로가 있다. 주변 한탄강과 임진강 일대에는 이곳 외에도 많은 고인돌이 발견되고 있는데, 청동기시대에 많은 세력들이 이곳에서 정착하여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요새인 은대리성과 고분이 신답리 고분군이 있어, 삼국시대 한강유역을 장악하기 위한 고구려의 거점 중 하나였던 곳이기도 하다. 연천 통현리 지석모는 땅위에 굄돌과 막음돌을 세워 무덤방을 만들고 덮개돌로 덮은 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로 특히하게 이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현무암으로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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