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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706

여수 임포마을, 돌산도 끝자락 남해안 일출명소인 향일암이 있는 마을

여수시 돌산도 끝자락에 있는 임포마을은 항일암이 있는 금오산 동쪽편 자락 아래에 있는 작은 어촌마을이다. 마을은 해발 323m 금오산이 동쪽편으로 바다와 만나는 작은 곶을 방파제삼아 어선이 정박할 수 있는 포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몇십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어촌마을이다. 이곳은 논밭을 일굴수 있는 땅이 거의 없은 어업만으로 생계를 꾸려왔던 마을로 보인다. 향일암이 없었다면 사람이 거의 살지 않은 남해안 작은 어촌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겠지만, 향일암을 오르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 이 절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로 나름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해 보리암과 함께 남해안의 대표적인 관음성지이자, 드넓은 수평선으로 해가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는 명소로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명소..

한국의 풍경 2012.10.29

고양 멱절산유적, 한강 하구에 위치한 한성백제 생활유적지

고양 멱절산은 한강 나루터가 있었던 이산포 동쪽편에 위치한 조그만 야산으로 한성 백제 유물이 출토된 유적지이다. 이곳에 한강나루터가 있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강에서 서해로 나가는 수로에 위치하고 있는 주요 거점으로 한강상류지역에서 서해로 나가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멱절산은 지금은 평야 가운데 있는 작은 동산처럼 보이지만, 원래 한강둑을 쌓기 이전에는 한강변 늪지에 있던 작은 섬이었고, 고양시 일대에서 흘러내려오는 한강지천이 한강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서 배가 정박할 수 있을 정도의 수심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었다. 청동기시대 이후의 고대 읍성국가시기에는 이런 지형이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에 용이하고, 수로를 이용할 수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기때문에 무역거점이나 취락지역으로 선호되었다..

여수 진남관(국보 304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물 중 하나인 전라좌수영 객사

국보 304호로 지정된 여수 진남관은 현존하는 가장 큰 목조건축물 중의 하나로 여수에 있었던 전라좌수영 객사 건물이다. 객사는 관아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중앙 정청 내부에 국왕을 상징하는 궐패(전패)을 모신 함을 두고 고을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날 또는 국가적인 큰 일이 있을 때 국왕을 향해 절을 올리는 '향월 망배' 의식을 거행하는 장소이지만, 실제로는 지방관아를 방문한 중앙 또는 지방의 관리들이 공적인 업무를 여행을 할 때 머무는 장소이다. 객사는 거의 모든 관아에서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건물이 여수 좌수영 객사인 진남관과 통영 통제영 객사인 세병관이다. 이는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남해안이 왜구의 침입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기때문에 강한 수군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기때문에 수영과 남해안의 주요 포..

조선 관아 2012.10.29

순천 낙안읍성, 남문 주변 민가들

낙안읍성은 낙안군 관아가 소재하고 있던 읍성으로 유일하게 읍성내 거주하던 주민들이 살던 민가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낙안읍성을 직사각형 형태로 성벽을 쌓고 동문에서 서문 사이의 대로를 중심으로 북쪽은 관아건무들이 들어서 있고, 남쪽으로는 민가들이 들어서 있다. 현재 읍성내 남아 있는 90여호의 가옥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옥들은 대부분 남문 주변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읍성 서쪽편 동산에서 성벽을 따라서 걸어내려오다 보면 골목에서는 볼 수 없었던 민가들이 마당이나 가옥형태를 자세히 볼 수 있으며, 이런 가옥들은 성벽 바깥쪽에도 여러 동 남아 있다. 남문을 들어서면 성문 주위를 비롯하여 관아까지 연결된 길에는 점포나 주막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가옥들을 볼 수 있고, 대로에서 안쪽으로..

고택_정원 2012.10.28

파주 교하향교, 옛 교하현 공립교육기관

파주시 교하읍은 고려시대까지는 교하군, 조선시대에는 교하현이 있었던 지역이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두개의 강 사이에 있다고 해서 교하(交河)라는 이름이 붙었던 지역으로 그 범위는 넓지 않지만 한강 하구지역을 지키는 군사적인 요지였기때문에 오랫동안 독립적인 고을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파주시청이 있는 금촌동 서쪽편 지역이 옛 교하현에 속한 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관아는 현 교하읍사무소와 교하초등학교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하현 공립 중등교육기관이었던 교하향교는 교하읍에서 약간 떨어진 파주시 금촌동 공릉천변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탄현면 갈현리에 있던 것을 영조대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의 향교 건물은 조선후기에 새로 지은 건물로 당시는 향교의 교육기..

여수 오동도, 동백꽃이 유명한 남해안 명소

여수를 상징하는 두개의 섬인 오동도와 돌산도 중에 지금은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는 작은 섬 오동도이다. 오동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남해안의 작은 섬답게 섬을 가득 덮고 있는 동백꽃을 비롯하여 다양한 상록수와 푸른 남해바다의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오동도는 토끼모양의 작은 섬으로 멀리서 보면 오동잎처럼 보이고 섬에는 오동나무가 빽빽히 들어서 있어서 오동도라 불렸으며 한때는 이 섬에 화살을 만들기 위해 대나무를 빽빽히 심어서 죽도(竹島)라 불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최근에 개최된 여수엑스포가 열렸던 오동도는 여전히 여수관광의 중심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여수의 명소이다. 오동도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오동도 등대에 올라서면 멀리 광양만과 남해, 돌산도 앞바다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동도는 방파..

한국의 풍경 2012.10.27

순천 낙안읍성, 서문 주변에 남아 있는 초가집 민가들

낙안읍성은 고려후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서남해안의 많은 읍성들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현재의 읍성은 세종대에 석축성을 쌓은 이래로 크고 작은 보수를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낙안읍성은 낙안군 관아가 있던 곳으로 관아건물인 객사, 동헌, 내아 등과 함께 90여호에 이르는 읍성내 마을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읍성내에는 지역 유력계층인 양반들은 거의 살지 않고, 관아를 중심으로 삶을 살아았던 향리들이 아전을 비롯하여, 관아에 속했던 포졸 등을 비롯한 하층민들과 관노, 읍성을 오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던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낙안읍성에 남아 있는 민가들은 대체로 향리들을 중심으로 한 중간층과 관아에 속해 있던 하층민들이 살..

고택_정원 2012.10.27

파주 용주서원, 조선중기 문신 백인걸을 모신 서원

파주시 월령면 덕은리에 위치한 용주서원은 조선중기 문신인 백인걸을 모신 서원이다. 백인걸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유학자로 동시대를 대표하는 유학자 조광조의 제자 중의 한명으로 기묘사화 때 큰 화를 입지 않았지만 명종대에 여러 벼슬을 역임하다 을사사화 때 파직되고 이후 유배되기도 했다. 이후에 복직하여 선조때까지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선조때 청백리로 뽑히기도 했으며 학문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율곡 이이와 파주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였으며,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다. 율곡과 함께 파주지역 서원을 대표하여 이지역 유학자인 성수침 형제를 모신 파산서원을 세웠으며, 파산서원에도 같이 모셔진 인물이다. 백인걸은 파산서원에도 모셔져 있지만, 파산서원이 세워진 직후인 1598년에 별도로 조감, 김행, 신제현, 백유함과..

순천 낙안읍성, 정문격인 남문 쌍청루와 주변 성벽

낙안읍성은 전남 순천에 위치한 읍성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된 읍성으로 현재도 주민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유일한 읍성이다. 낙안읍성은 동남.북서 방향의 대로를 중심으로 북쪽에는 관아 건물인 객사, 동헌 등이 자리잡고 남쪽에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초가집으로 배치되어 있다. 또한 물이 빠져 나가는 남쪽편에는 비상시 식수를 공급할 수 있는 연못을 조성해 놓고 있다. 낙안읍성에는 동.서.남 3개의 성문을 두고 있는데 그 중 남문이 낙안들판의 여러 마을들 주민들이 읍성을 출입하는 정문으로 보인다. 남문에서 관아까지 연결되는 길 주변에 크지는 않지만 상업지구라 할 수 있는 저자거리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낙안읍성 남문은 옹성을 두고 있는 개거식 성문으로 성벽사이에 누각을 세워놓고 있는 형태이다. 남문 문루..

인천 화도진전시관, 구한말 개항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관

인천 화도진은 구한말 제물포 조약으로 개항된 인천 앞바다를 지키기 위해 설치된 포대들을 위해 설치된 관청이다. 기존의 해안가에 위치한 여러 진(鎭)에 비해서 관아의 규모가 큰 편이며, 개항 이후 제물포항을 통해서 오가는 외국 선박과 인원을 통제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던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 화도진은 1982년 서구 국가와 처음으로 맺은 조약인 한미수교통상조약이 체결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화도진은 갑오개혁으로 군제가 개편되면서 폐지되고 관아건물들 또한 없어졌다가 최근인 1988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관아건물이 복원되었다. 복원된 관아 건물 중 동헌 앞 행각건물은 한미수교를 기념하기 위한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화도진 전시관에는 당시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당사자인 신헌 장군의 ..

지역박물관 2012.10.26

벌교읍, 소설 태백산맥을 찾아 떠나는 여행

대하소설 은 작가 조정래가 쓴 장편소설로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난 1948년부터 한국전쟁이 끝나는 1953년까지 전남 벌교를 중심으로 해방후 냉전체제하 이념대립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 해방이후 좌.우 이념대립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소설 에서는 전남 남해안의 작은 소읍인 벌교를 중심으로 다양한 출신의 인물들이 혼란기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립하고 갈등을 겪었으며,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대립 상황에서 한쪽편을 선택할 수 없었던 상황들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소설 에서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수구세력을 대표하는 지역토호들의 해방후 정국과 사회상에 대한 인식, 좌익운동에 빠져 들었던 지식인과 하층민들, 중도적입장에서 화해를 추구하는 인물들과 부득이하게 좌익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상황들..

한국의 풍경 2012.10.25

파주 오두산성(사적 351호),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에 쌓은 관미성으로 추정되는 백제 산성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북한 지역이 내려다 보이는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한성백제 시기 한강하구를 지키는 백제의 중요한 요새였던 오두산성이 있던 곳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작은 곶처럼 돌출된 오두산은 해발 119m로 그리 높지않은 산이지만 임진강 건너편 옛 장단군 지역과 한강 이남 김포지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한강과 임진강을 오가는 선박을 감시하기에 좋은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30여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에 있지만 최전방 휴전선지역으로 관광객들을 위한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실제 오두산성은 최전방 군사지역으로 전망대와 도로만 개방되어 있기때문에 발굴.조사가 끝난 오두산성의 성벽이나 시설들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전망대에 올라 주변 경관을 둘러보면 왜 오두산성..

여수 향일암, 남해안의 대표적 일출명소이자 관음성지

여수시 남쪽 큰 섬인 돌산도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향일함은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해안에서도 대표적인 일출명소이다.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나 실제로는 그 이후에 생긴 작은 암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숙종대인 1715년에 인묵대사가 현위치로 이건하고 향일함이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남해안의 대표적인 관음성지로 관음보살을 보신 불전만 3개나 있다.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인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와 더불어 4대 관음성지로도 여겨진다. 현재의 사찰건물들은 대부분 1986년에 중건된 것이리가고 하며, 최근인 2009년에 화재로 대중전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이 소실되었었다. 향일암은 남해안 항구도시 여수시의 대표적..

전국 사찰 2012.10.24

순천 낙안읍성, 서문과 관아 주변 성벽

순천 낙안읍성으로 조선초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남해안과 서해안 지방에 쌓은 많은 읍성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읍성이다. 읍성은 동남.북서 방향 대로를 축으로 남쪽에는 민가, 북쪽에는 관아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낙안읍성에는 동남 방향에 동문, 남서방향에 남문, 북서방향에 동문이 있고, 관아 뒷편 북동방향으로는 성문을 두고 있지 않다. 성벽은 상당히 큰 돌을 다듬어 석축을 쌓고 있는데, 안쪽에 토축을 쌓고 바깥쪽에 석축을 쌓는 일반적인 조선시대 읍성과는 달리 전체를 석축으로 쌓은 석성이다. 낙안읍성 서문은 북동쪽의 조계산과 이어지고 교통로와 연결되고 있으며, 조계산의 선암사, 송광사를 지나 승주, 구례, 곡성, 남원과 연결된다. 성문이 문루가 남아 있는 남문, 동문과는 달리 서문에는 문루가..

여수 흥국사, 팔상전을 비롯한 불전과 요사채

여수시 명산인 영축산 자락에 있는 흥국사는 고려 중기인 1196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흥국(興國)이라는 절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남해안 세워진 호국사찰이라 할 수 있다. 조선초기 불교탄압과 왜구의 침입으로 폐허화된 것을 조선중기에 중건하였다고 한다. 흥국사의 실제적인 역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전라좌수영 수군을 도와 큰 공을 세워 승병의 중심지로 인조대에 크게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사찰의 규모는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팔상전, 불조전, 무사전, 원통전 등의 불전과 심검당, 적묵당 등 요사채, 사찰 강당인 봉황루를 두고 있으며, 사찰입구에는 계곡을 건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홍예를 하고 있는 다리인 보물로 지정된 홍교가 있다. 지금은 화엄사 말사이지만 현재..

인천 화도진 관아, 구한말 한미수교통상조약이 체결된 역사적 장소

인천시 동구 화수동에 있던 화도진은 구한말 병인양요를 거치고, 일본과의 조약으로 제물포가 개항된 이후 인천을 통해 드나드는 선박을 감시하고 해안방어를 위해 설치한 포대들을 관리하기 위한 관청이다. 진(鎭)은 주로 해안이나 내륙수운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조직으로 진영(鎭營)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화도진은 인천항과 주변 연안항로를 운행하는 선박을 감시하고, 외국 군함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세운 군사조직으로 기존에 있던 진(鎭)과는 달리 규모가 큰 편이다. 이 곳에서는 1882년 고종의 전권대사였던 신헌과 미국의 전권대사 슈벨트 제독 사이에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장소이기도 하다. 화도진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군제가 개편될 때 폐지되었다. 화도진 공원의 관아 건물은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1988..

조선 관아 2012.10.22

순천 낙안읍성, 동문인 낙풍루와 주변 성벽

전남 순천시 낙안면에 소재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이 지역에 있었던 낙안군 관아가 있던 곳으로 남해안 지역에서는 꽤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는 낙안들판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순천과 연결되며, 북쪽으로는 승주, 구례를 거쳐서 남원과, 서쪽으로는 보성지역과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고려말, 조선초에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지역으로 해안에서 비교적 안전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 읍성을 쌓아 대비했던 곳이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들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곳으로 평지에 장방형의 석축성을 쌓고 있다. 낙안읍성에 있는 동.서.남 3개의 성문 가운데 지금은 정문처럼 사용하고 있는 동문은 실제로 남해안이 있는 벌교지역과 연결되는 곳으로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경로이기도 하다. ..

인천 문학산성과 문학산(해발 312m), 백제 비류가 처음 정착했던 미추홀을 지키던 산성

문학산은 인천사 남구 문학동에 위치한 해발 312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인천항 주변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다. 문학산의 이런 지형적인 잇점으로 정상부에서는 남쪽으로는 안면도와 시화호 바깥쪽 바다가, 서쪽으로는 인천항을 지나 강화해협으로 연결되는 해로가, 동쪽으로는 시흥, 북쪽으로는 부평을 지나 김포공항 주변의 한강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국방상 요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문학산 북쪽편 문학경기장 부근은 백제 시조 온조왕의 형이자, 고구려 동명왕의 둘째아들인 비류가 이끄는 세력이 정착한 미추홀이 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한.중.일 해상무역로에서 중요한 곳으로 백제 세력이 이곳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해상무역에 관여했던 세력이 정착해 있던 지역으로 보인다. 주변에서는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을 비롯하여 신석..

여수 흥국사 대웅전(보물 396호), 조선후기에 중건된 대표적인 불전

여수 흥국사는 여수 영취산 북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고찰로 고려 명종대인 1195년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조선중기 불교가 크게 중흥한 명종대에 중창되었다가 임진왜란때 전남 남해안 지역 승병의 중심지로 전라좌수영을 도와 임진왜란 극복에 큰 기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기존의 사찰건물들은 크게 불타버리고 인조대에 승병들을 지원하기 위해 크게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흥국사라는 이름에서부터 호국사찰의 성격이 강한 사찰이다. 흥국사의 주불전으로 보물 396호로 지정된 흥국사 대웅전은 인조대에 계특대사가 흥국사를 크게 중건할 때 지은 건물로 조선 중.후기를 대표하는 사찰건물이다. 건물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에 화려한 다포계 공포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건물천정은 우물천장으로 꾸몄..

순천 낙안읍성 옥사(감옥)와 연못

순천 낙안읍성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관청이 있던 지방고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남부 해안가지역이기 때문에 평지에 읍성을 쌓아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는데, 동.서을 가르는 도로를 기준으로 북쪽에는 관청 건물들이 있고 남쪽에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객사를 제외한 읍성내 관청 건물들은 최근에 복원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관청의 배치나 구성요소들을 잘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낙안읍성의 옥사는 고을내의 죄수들을 수용하였던 건물로 다른 읍성과 다른 점은 관아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읍성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남문을 들어서면 가운데 큰 길은 관아로 연결되며 동쪽편에는 비상시 읍성내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한 연못들이 있고, 연못안쪽에 옥사터가 있었다. 옛 옥사..

조선 관아 201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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