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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706

[취리히] 구도심 (Altsadat), 로마시대부터 리마트강변에 도시가 형성된 곳

취리히(Zurich)는 스위스연방의 경제수도라 할 수 있는 도시로 스위스에서 3번째로 큰 호수인 취리히호수 북안에서 리마트강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예로부터 교통의 중심지로 독일과 이탈리아의 경제수도라 할 수 있은 프랑크푸르트, 밀라노와 연결된다. 취리히는 로마시대 이래로 주민들이 거주했던 지역으로 원래는 켈트 헬베티안(Cetic Hevetians)인들이 거주했던 지역에 로마인들이 세금을 걷기 위한 세관을 설치하면서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이 곳에서 최초로 세워진 성베드로교회는 원래 쥬피터 신전이 있었던 자리라고 하며, 프라우뮌스터 수도원 주변에는 물건을 교역하던 시장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취리히는 지금은 인구 39만명으로 주변지역까지 합치면 183만명이 주민들이 거주하는 스위스 최대 도시로..

스위스(Swiss) 2013.01.27

[취리히] 취리히 호수(Zurichsee) 주변 풍경

취리히 호수(Zurichsee)는 면적 89㎢로 초승달 모향을 하고 있는 스위스에서 3번째로 큰 호수이다. 이 호수는 빙하기에 알프스산맥에서 내려온 빙하가 녹아서 형성되었으며 북쪽에서 리마트강이 흘러내려가 독일의 라인강과 합류한다. 빙하가 녹아내려 형성된 호수답게 맑게 깨끗한 전형적인 스위스 풍경을 보여주는 호수이다. 리마트강이 시작되는 호수 북쪽에 스위스 연방의 경제수도라 할 수 있는 취리히가 자리잡고 있다. 호수 남동쪽에는 삼각주가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편 발렌호와 배의 운항이 가능하도록 13km의 운하가 굴착되어 있다고 한다. 취리히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로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실제로 이탈리아 북부 중심도시인 밀라노와 독일의 경제수도라 할 수 있는..

스위스(Swiss) 2013.01.23

[취리히] 취리히 고생물학 박물관(Paleontological Museum in Zurich)

취리히 고생물학 박물관(Paleontological Museum in Zurich)은 취리히대학 박물관내에 위치한 고생물학 연구소(Paleontological Institute and Musuem)의 공식 박물관이다. 1991년에 공식적으로 문을을 이 박물관은 1965년부터 연구소에서 소장하고 있던 화석을 비롯한 각종 소장품을 전시해 왔다. 이박물관은 원래는 동물학박물관(Zoological Museum in Zurich)에 속해있었다고 할 수 있는 1956년부터 고생물학 박물관을 분리하였다고 한다. 이 연구소의 주요 소장품들은 공룡화석을 비롯하여 삼엽충, 암모나이트 등 고생물학을 대표하는 각종 화석들이며, 주로 스위스의 알프스산맥과 북마메리카대륙에서 출토된 것으로 17세기부터 수집된 것들이라고 한다. 이..

스위스(Swiss) 2013.01.18

충주호 유람선(청풍에서 장화나루까지), 단양팔경 옥순봉과 구담봉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

단양팔경은 충북 단양군 남한강과 지류 계곡에 형성된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경치가 빼어난 여덟곳을 말한다. 가장 잘알려진 도담삼봉과 석문을 비롯하여 석문, 단양군 남쪽 남한강 지류인 우화천에 위치한 하선암.중선암.상선암, 단양군과 제천시의 경계에 위치한 남한강변 절경인 옥순봉과 구담봉을 일컫는다. 남한강변에 위치한 옥순봉과 구담봉은 충주호 유람선에서 보는 경치가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주댐 건설로 많은 지역이 수몰되면서 형성된 충주호는 많은 유람선들이 운행하는 관광지로 충주댐에서 출발하는 유람선도 있지만, 단양팔경 옥순봉과 구담봉을 비롯하여 제천과 단양 일대의 빼어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유람선은 옛 청풍도호부가 있던 청풍문화재단지에서 출발하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 적당해 보인다. 유람선..

한국의 풍경 2013.01.16

[취리히] 취리히대학교(Universität Zürich) 캠퍼스

스위스 연방의 경제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취리히는 북이탈리아.프랑스.독일을 연결해 주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이 시작된 도시이다. 이 도시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알프스의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한 수력발전으로 기계공업과 제조업이 크게 발전한 도시이다. 이 도시의 성격에 걸맞게 취리히호수에서 라마트강이 흘러나가는 지역에 형성된 도심 동쪽편 언덕에는 스위스 연방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인 취리히공과대학과 취리히대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취리히공과대학(Eidgenossische Technische Hochschule Zurich)은 학생수 1만5천명이 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이다. 1884년 스위스 연방이 설립한 이 대학은 건축.토목.기계.화학.임학.수학 등의 학과로 개교했으며 컴퓨터.화학.수학.물..

스위스(Swiss) 2013.01.16

서울 삼전도비(사적101호), 병자호란 패전의 치욕적인 상징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석촌호수 동쪽편에 위치한 삼전도비는 병자호란에 승리한 청나라 태종이 조선에 요구하여 세운 전승비로 치욕적인 역사를 상징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남한산성에세 패전한 인조는 청태종에 땅바닥에 머리를 9번 찧는 굴욕적인 항복의식을 치루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라 할 수 있다. 정식명칙은 "대청황제공덕비"로 내용은 청나라가 조선에 출병한 이유, 조선이 항복한 사실, 청태종이 피해를 끼치지 않고 회군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높이 5.7m로 거북받침돌 위에 대리석으로 세운 비석에 앞면에는 만주어, 몽골어로, 뒷면에는 한자로 글자를 새겨 놓고 있다. 원래 한강 나루터 인조가 항복했던 장소에 세워졌던 것을 치욕의 역사물이라는 이유로 1895년 청일전쟁 이후 고종이 강물에 수장시..

서울 구 벨기에영사관(사적 254호),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서울 관악구 남현동 사당역 부근에 위치한 옛 벨기에 영사관 건물이다. 이 건물은 구한말인 1905년에 완공된 건물로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벽돌과 화강석으로 지어졌다. 원래는 서울 도심인 회현동에 있던 건물로 일제강점기에는 보험회사 사옥, 일본 해군 등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해방후에도 대한민국 해군 헌병대에서 사용하다가 1970년에 원래 있던 자리에 상업은행 건물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도 한다. 구한말이 끝날무렵인 1905년에 지어진 근대식 건축물 중에서는 규모가 큰 편이다. 앞으로 돌출된 중앙 현관과 연결된 중앙복도를 중심으로 방이 배치된 좌우대칭의 평면구조를 하고 있으며, 양쪽끝에는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장식한 발코니를 만들어 놓고 있다. 이 건물은 서울 도심 회현동에 있던 것으..

[창덕궁] 낙선재 부속 건물들과 승화루, 상량정

창덕궁과 창경궁 사이에 위치한 낙선재 일원은 1846년(헌종 12)는 창건된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와 후원의 취운정.한정당.상량정, 승화루, 삼삼와, 칠분서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이었던 경빈을 사대부 저택처럼 지어진 건물로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 경복궁 건청궁과 마찬가지로 국왕이나 왕비들이 궁궐에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집처럼 꾸며놓은 처소라고 할 수 있다. 낙선재 건물들은 대체로 구한말 유행했던 사대부 저택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창살문양이나 정자 등에서 당시 상류층들이 선호했던 청나라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창덕궁 낙선재 일원에는 국왕의 처소인 낙선재, 왕비의 처소인 석복헌, 대비의 처소인 수강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강재 바깥쪽에는 수행원들의 처소로 보이는 건물과 창..

궁궐_종묘 2013.01.09

구리 동구릉 재실,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이자 능참봉이 근무하던 곳

구리 동구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능을 중심으로 9기의 왕릉이 모여있는 조선 최대의 능역이다. 이곳은 풍수지리설에 따라서 북쪽의 검암산을 주산으로 태조의 건원릉을 모셨으며, 그 후 문종, 임진왜란을 극복한 선조, 조선후기 중흥기를 마련한 영조를 비롯하여 현종, 헌종, 효명세자로 불린 추존왕 문조 등의 능이 조성되어 있다. 동구릉은196ha의 넓은 면적에 9기의 왕릉이 모여 있기때문에 원래는 각 능마다 정자각 앞에 능지기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인 수복방을 두고 있었으나, 구한말을 거치면서 입구의 재실에서 그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재실은 원래 무덤이나 사당옆에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지은 집을 말하며 삼국시대 시조묘나 신궁제도에서 그 기능이 유래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유학이 사회전반의 지배..

구리 동구릉, 문조.신정왕후 수릉과 문종.현덕왕후 현릉

구리 동구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모신 건원릉 비롯하여, 임진왜란을 극복한 선조, 조선후기 중흥을 이끌어낸 영조를 비롯하여 아홉기의 왕릉이 모셔진 조선 최대의 능역이다. 동구릉에는 조선왕조가 처음으로 조성한 왕릉인 건원릉도 있지만, 사실상 마지막으로 조성한 왕릉인 수릉도 동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동구릉 입구에 위치한 수릉은 조선 24대 헌종의 아버지인 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 조씨의 합장릉이다. 추존왕 문조는 순조의 맏아들로 효명세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정조 사후 권문세가들의 횡포가 극심했던 세도정치기에 세자로서 대리청정을 하면서 선정을 펼쳐서 좋은 평판을 받았던 인물이고, 그의 비 신정왕후 조씨는 대왕대비로서 흥선대원군을 후원하면서 고종을 왕위에 앉히고 안동김씨를 비롯한 세도가들을 억누르..

구리 동구릉 목릉, 선조와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의 능

목릉은 조선의 14대 선조와 원비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의 능이다.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같은 산에서 내려온 능성에 3개의 봉분을 따로 만던 동원이강능이다. 목릉은 조선 태조의 능인 건원릉 뒷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선조의 원비 의인왕후 박씨의 먼저 조성되고 이후에 선조의 능이 조선된 것으로 볼 때 선조가 자신의 능을 태조의 능이 있는 동구릉에 자리잡고자 했던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임진왜란으로 국력이 피폐했던 당시의 국가 경제 사정을 고려하면 측면도 있고, 국난을 극복하면서 제2의 창업을 했다는 의미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위치로 목릉이 옮겨진 것은 인조반정 이후 이곳에 인목왕후의 능을 조성하면서 선조와 의인왕후의 능도 이곳에 옮기면서 3곳을 합쳐서 목릉이라 칭했다. 이는..

청주 상당산성, 동장대와 진동문에서 공남문까지

청주 상당산성은 충청병영이 있었던 청주성 동쪽 상당산을 중심으로 쌓은 둘레 4.1km의 비교적 큰 규모의 산성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이후 내륙 지방 거점에 대한 방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서해안과 가까운 서산 해미읍성에 있던 충청병영을 청주로 옮기면서 대대적으로 보수한 산성으로 남한산성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산성이다. 상당산성에는 약 3,500명의 병력과 승군이 배속되었으며 성내에는 병마우후가 근무하는 관아와 마을, 승군들이 머무는 사찰 등이 설치되었다. 청주의 상당산성은 중부내륙 지방의 중심지인 청주서쪽 상당산에 자리잡고 있다. 상당산성의 서쪽은 매우 가파르고 산성 아래는 평야지대를 이루는 반면에 동쪽은 완만하며 계곡을 이루고 있다. 산성내 동쪽으로 흐르는 계곡 주변에 마을을 ..

청주 상당산성, 동암문에서 동문(진동문)까지

상당산성은 충청병영과 청주목 관아가 있던 청주읍성 동쪽편에 위치한 요새로서 청주지역의 넓은 벌판과 중부지역 주요 교통로를 방어하기 위한 지형적 조건을 잘 갖추고 있는 산성이다. 청주도심이 있는 산성 동쪽편과 서울로 향하는 교통로가 있는 북쪽편으로는 경사가 심하고 지형히 험하여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에 용이한 반면에 동쪽편은 평지에 비해서 고도가 높은 편이며,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위치한 큰 산인 속리산을 거쳐서 경상북도 문경지역과 연결된다. 상당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포곡식 산성으로 동쪽편으로는 계곡을 형성하고 있으며, 주위의 크고 작은 산을 통해서 경상도지역으로 퇴각하기도 용이하다. 상당산성에는 3개의 성문과 2개의 암문이 있는데, 남암문과 서문을 제외하고는 동쪽편에 출입문을 두고 있다. 현재는 산성내 마을..

청주 상당산성, 서문(미호문)에서 동암문까지

상당산성은 삼국시대 백제가 이곳에 토성을 쌓았을 것으로 짐작되며, 조선시대까지도 산성이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당산성은 서쪽의 청주도심과 북쪽의 청원, 증평지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지형적 특징으로 볼 때 청주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산성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친 후 내류지역 주요 거점에 대한 방어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충청병영을 청주로 옮기면서 크게 증축한 것이다. 산성에서 청주도심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는 남암문을 지나서 서문인 미호문까지는 상당산성을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 정상부 능선을 따라서 성벽을 쌓고 있으며, 청주도심과 연결되는 지역이라 성벽을 상당히 높고 견고하게 쌓고 있다. 반면에 서문에서 산성 동북쪽 출입문인 동암문까지는 대체로 크고 작은 산봉우리..

청주 상당산성, 남암문에서 서문(미호문)까지

조선후기 충청병영이 있던 청주 도심 동쪽편에 위치한 사적 212호로 지정된 상당산성은 남한산성과 함께 조선후기 축성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산성이다. 상당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중부 내륙지역 교통로 거점에 쌓은 군사적인 요새로 충청병영을 엄호하기 위해 쌓은 산성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이곳에는 삼국시대부터 산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의 성곽시설은 대부분 조선후기에 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당산성은 지형적 특징이 동쪽은 경사가 완만하며, 서쪽은 경사가 심하고 가파른 언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산성 서쪽편 언덕 아래에 주변지역을 관장하던 청주목 관아와 충청병영이 위치한 청주읍성이 있고, 주변에는 무심천을 중심으로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지형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산성은 ..

청주 상당산성(사적 212호), 공남문(남문)에서 남암문까지

청주 상당산성은 청주도심 동쪽 해발 419m의 상당산을 주봉으로 하여 능선을 따라서 성벽을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상당산성은 청주 도심 주변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서쪽과 남쪽은 경사가 급하고, 동쪽으로는 경사가 완만한 지형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조선후기 충청병영이 있었던 청주 도심 배후에 위치한 요새같은 산성이다. 이곳에는 백제가 처음 토성을 쌓았다고 하며, 삼국시대 청주지역 유력자였던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가 산성을 쌓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상당산성이 갖고 있는 전략적 중요성과 지형적인 잇점으로 삼국시대 이후에도 산성이 유지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는 하지만, 현재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대규모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한 청주지역으로 서산 해미읍성이 있던 충청병영을 청주..

[서울성곽] 인왕산 정상 부근 성벽

한양 도성을 이루고 있는 성곽 중 경복궁 서북면에 둘러싸고 있는 인왕산 성곽이다. 북악산 성곽과 함께 한양을 방어하기 위한 성곽 중 제일 중요한 곳으로 지금도 청와대를 방어하기 위해서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인왕산은 정선의 산수화 '인왕제색도'에서 그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듯이 조선시대 한양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던 산이다. 인왕산은 높이 338m로 화강암으로 된 암반이 노출되어 있어 각양 각색의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들이 곳곳에 솟아 있어 북악산과 함께 서울의 명산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60년대 북한의 기습으로 인해서 한때는 민간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지금은 등산로가 개방되어 있다. 인왕산 성곽은 서울의 서쪽인 사직단 부근에서 시작해서 인왕산 봉우리를 거쳐서 한양 도성의 북소문인..

구리 동구릉(사적 193호) 건원릉,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왕릉

동구릉(사적 193호)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1408년에 승하하자 조성한 왕릉인 건원릉을 중심으로 역대 왕과 왕후의 능 9기가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동구릉에는 한 분만 모신 단릉, 두분을 모신 쌍릉, 한곳에 산줄기를 달리해서 모신 동원이강릉, 두분을 함께 모신 합장릉, 세분을 나란히 모신 삼연릉이 있어 다양한 모습의 왕릉을 볼 수 있다. 동구릉에 왕릉을 조성한 왕으로는 태조를 비롯하여 5대 문종과 왕비, 14대 선조와 왕비, 16대 인조의 계비 장령왕후, 18대 현종과 왕비, 21대 영조와 왕비, 추존왕인 문조와 왕비, 24대 헌종과 왕비이다. 조선시대에는 왕릉의 조성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로 풍수지리설에 따라 심혈을 기울여 터를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구릉에 왕릉이 조성된 왕은 대체로..

[서울성곽] 사직터널에서 인왕산 범바위까지

인왕산은 서울을 둘러싸고 4개의 진산 중 서쪽편 우백호에 해당하는 산으로 해발 338.2m로 그리 높지는 않은 편이다. 산전체가 대부분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암반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기차바위,선바위, 범바위 등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많은 바위들이 있다. 서울도심에서 백색의 화강암 바위산 경치가 아름다우며 그 풍경은 '인왕제색도'를 비롯하여 많은 그림에 볼 수 있다.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능선을 따라서 성곽을 쌓고 있는데, 서대문에서 사직터널과 인왕산 정상을 지나 북소문에 해당하는 창의문까지 성벽이 이어지고 있다. 인왕산 성곽은 사직터널 부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민가가 없는 지역이라 현재 남아 있는 서울 성곽 중 그 모습이 제대로 남아 있는 편이다. 서울을 지키는데 있어서 주요..

구리 동구릉, 조선 21대 영조 원릉과 인조 계비 장령왕후 휘릉

동구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을 중심으로 9개의 왕릉의 조성된 조선 최대의 능역이다. 서울과 태조의 출신지라 할 수 있는 함흥간 교통로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동구릉에는 태조를 비롯하여, 5대 문종과 왕후, 14대 선조와 왕후, 16대 인조의 계비, 18대 현종과 왕후, 20대 경종의 비, 21대 영조와 왕후, 추존 문조와 왕후, 24대 헌종과 왕후의 무덤이 한 지역에 모여 있다. 동구릉이 태조의 무덤이 있는 풍수지리상 명당이기는 하지만, 이곳에 왕릉을 조성한 왕은 영조를 제외하고는 강력한 왕권을 가지지 못했던 왕들이었으며, 대체로 당쟁 등이 심했던 시기의 왕들로 왕릉 조성에 대한 책임과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서 이곳 동구릉에 왕릉을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구릉 안쪽에는 21대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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