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중앙박물관 289

[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 3천년의 이야기] 장식유리의 만개와 이슬람 유리의 전개

기원전 1세기 시리아에서 대롱불기 기법이 발명됨으로써 유리제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로마가 지중해 지역을 안정적으로 통치함에 따라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유리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다양한 지역에서 유리공방들이 생겨나고 새로운 기술들이 발전하게 되었다. 로마제국 이후에는 비잔틴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제국과 이란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유리제작 전통을 계승하여 다양한 유리공예품을 만들었다. 사산조 페르시아는 유리제작 기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 페르시아에서 만든 유리제품들은 실크로드를 비롯한 다양한 교역로를 통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 고분에서 당시 페르시아로부터 유입된 유리제품들이 출토되..

중앙박물관 2013.02.22

[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 3천년의 이야기] 불기 기법의 다양한 응용과 커트 기법(Cut Glass)

기원전 1세기경 시리아인들이 처음으로 대롱불기기법을 발명한 이후 귀금속이나 보석으로 만든 공예품처럼 몸을 장식하는 장신구나 부유한 계층에서만 사용했던 아주 특별한 용기로서 역할을 했던 유리는 대량생산을 통해 지중해 해상무역로나 실크로드를 통한 무역로를 통해 주요 교역품으로서 세계 각처로 퍼져나갔다. 대롱불기기법은 속이 빈 금속대롱 끝에 녹인 유리를 붙여 공기를 불어 풍선처럼 부풀린 후 모양을 만드는 기법으로 불과 몇분안에 그릇을 만들 수 있어서 이전의 금속공예기법을 적용한 주조기법이나 작은 용기를 만들었던 코어성형기법에 비해서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대롱불기기법은 그 자체로서도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만들 수 있어서 장인들이 지금까지도 선호하는 기법이며, 틀을 이용한 대롱불기기법은 규격화된 유리제품..

중앙박물관 2013.02.21

[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 3천년의 이야기] 틀에 불어 만든 유리(Mold-blown glass)

기원전 1세기 시리아인에 의해서 대롱불기라는 획기적인 기술이 발명됨으로써 유리는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대롱불기는 고온에서 녹은 유리가 액체상태에서 서서히 굳는 성질을 이용하여 속이 빈 금속제관을 통해 풍선처럼 유리를 불어서 다양한 형태의 용기를 만드는 방법으로 기존의 코어성형기법이나 주조기법에 비해서 상당히 빠른 속도로 쉽게 유리를 만들수 있다. 유리를 만드는 방법은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드는 공정들은 자동화되었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대롱불기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대롱불기는 만드는 장인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기때문에 공예품이나 예술작품으로서 유리를 만드는 공방에서는 아직도 2천년전 시리아사람들이 개발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인 대롱불기 기법이 작가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중앙박물관 2013.02.19

[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 3천년의 이야기] 대롱불기 유리(Free-blown glass)

유리가공기술은 기원전 15세기경에 유리로 액체를 담을 수 있는 코어 성형기법이 개발된 이래로 거푸집을 이용한 금속가공기술을 적용한 주조기법, 다양하고 화려한 색감이 뛰어난 모자이크기법 등이 개발되었다. 인류가 유리를 사용한 이래로 다양한 가공기술이 개발되고 유리의 용도 또한 처음에는 보석이나 귀금속처럼 장식을 위한 장신구 역할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며, 점차 다양한 형태의 유리 그릇이 만들어지면서 실생활에 사용되는 생활용품으로 그 기능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유리의 생산기술 또한 고도의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했고 생산량에 한계가 있었다고 여전히 일반인들은 사용하거나 가질 수 없는 고급스러운 물품에 속했다. 유리 가공 기술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는 기원전 1세기 경에 시리아에서 속이 빈 금속관을 이용하여 유리..

중앙박물관 2013.02.18

[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 3천년의 이야기] 모자이크 기법으로 만든 유리

기원전 2000년경부터 인류가 유리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한 이래로 유리는 보석처럼 광택이 나는 물질로 부적의 기능을 갖는 펜던트나 몸에 지닐 수 있는 장신구로서 사용되었다. 유리를 제작하는 기술로 기원전 15세기 경부터 코어성형기법이 사용되면서 유리는 액체를 담는 용기로서 역할이 부여되었다. 더욱 큰 그릇을 만들고, 얇고 투명한 느낌을 주는 주조기법이 사용되었다. 주조기법은 거푸집에 녹은 유리를 흘려 넣어 굳히는 기존의 금속가공기법을 적용한 것으로 크고 다양하면서 세련된 장식을 한 유리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하였다. 주조기법이 유리를 이용한 그릇 등을 만들기 위해서 발전된 기술이라고 하면, 기존 유리의 기능이었던 보석과 같은 몸에 지니거나 장식을 하는 장신구로서 기능을 강조한 새로운 기술로는 모자이크기법..

중앙박물관 2013.02.17

[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 삼천년의 이야기] 주조기법으로 만든 유리(Cast glass)

유리제품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 대롱불기기법과 함께 가장 많이 사용된 기법으로는 기존 금속제 그릇 등을 만드는데 사용했던 주조기법이 있다. 주조기법은 금속에서와 마찬가지로 거푸집에 유리를 녹여 굳혀서 만드는데 비교적 큰 규모의 그릇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이는 이전의 코어성형기법으로는 작은병밖에 만들수 없었든데 비해서 큰 규모의 잔이나 그릇 등을 만들 수 있고, 여러가지 그림이나 문양등으로 장식할 수 있어서 기술적인 진보를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조기법으로는 거푸집을 이용한 전통적인 주조기법 이외에 잘게부순 유리 조각을 거푸집에 깔고 열과 압력을 가하는 방법이나, 유리판을 틀에 걸쳐놓고 열을 가하여 다양한 모양의 그릇을 만든 열하수법도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등에서 만든 많은 유리그..

중앙박물관 2013.02.16

[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 삼천년의 이야기] 코어성형기법으로 만든 유리

인류가 유리를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000년경 고대 문명이 발생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지역이다. 유리는 처음에는 보석과 같은 광택이 나는 물질로 구슬처럼 속이 꽉 찬 형태로 만들어져 펜던트나 몸에 지닐 수 있는 장신구로 사용하였으며, 당시에는 고가의 물품으로 상류계층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유리는 화합물의 구성 등에 따라서 다양한 색을 표현할 수 있었기때문에 초기에는 다양한 색깔을 이용한 작은 구슬에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것을 표현하였다. 유리를 이용한 대표적인 물건으로는 부적의 의미를 갖튼 펜던트가 많이 만들어졌으며 펜던트에는 사람의 얼굴을 비롯하여 다양한 의미를 갖는 새, 물고기, 동물 등의 모습으로도 만들어 졌다. 이는 다른 보석과는 달리 가공하기 쉬우면서도 흙..

중앙박물관 2013.02.14

[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 삼천년의 이야기] 지중해.서아시아의 고대 유리

유리(glass)는 과학적으로는 액체를 냉각하면 일정정한 온도에서 응고되어 결정되지 않고, 점성이 증하가 굳은 고형물이 되는 현상을 말하여 그중 무기물이 이런 상태로 된 것을 유리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유리는 규사.탄산나트륨.탄산칼슘 등을 고온으로 녹인 후 냉각하면 생기는 투명한 물질을 통칭하여 부르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규산염유리가 통상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유리라고 할 수 있다. 유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청동기시대 북부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설과 이집트라는 설도 있으나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유리는 고대사회에서 보석이나 귀금속처럼 신분을 상징하는 의기로서 상류층만이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초기에는 유리로 작은 병이나 펜던트 등 장신구만을 만들수 있었으나 기원전 1세기 대롱..

중앙박물관 2013.02.12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고려청자의 걸작, 상형도자기

식품을 저장하거나 식생활에 사용되었던 그릇, 항아리, 잔, 병 등과 함께 사람이나 동물, 특정한 기물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상형 토기, 도기, 도자기는 고대 이래로 인류가 만들었으며, 지금도 많은 걸작들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이전까지 말탄사람 토기, 각배, 토우 등의 형태로 많은 상형토기들이 출토되어 있다. 이들 상형토기들은 생활용품이라기 보다는 종교적인 의미를 갖거나 예술적인 표현의 형태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통은 통일신라시대를 지나고 한반도에서 도자기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었던 고려시대까지 이어진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고려청자 중에서도 인물이나 동물, 특정한 기물을 형상화한 많은 상형도자기들이 만들어졌는데, 예술적으로 조형미가 빼어난 수작들이 오늘날까지 많이 전해..

중앙박물관 2013.01.14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고려청자 걸작,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국보68호)와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국보116호)

고려청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9~10세기부터 개경 부근의 가마터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하다가 점차 한.중.일 해상무역로에 위치한 서남해안으로 그 생산지가 확산되었다. 고려청자의 절정기는 12~13세기로 당시 대표적인 청자생산지는 전남 강진과 전북부안이있다. 은은한 빛깔의 비색청자와 문양을 장식하는 상감기법은 고려청자만의 독특한 특징으로 그 조형미와 예술성을 고려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정받고 있다. 오늘날 전해지는 고려청자 걸작품들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초기에 박물관이 만들어지면서 개경의 궁궐터나 무덤에서 출토되거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수집되었기때문에 대표적인 걸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고,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간송 전형필이 수집한 것들과 해방이..

중앙박물관 2013.01.13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예술과 기술의 조화

고려청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뛰어난 예술성과 도자기술을 자랑하는 문화재이다. 고려초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한 고려청자는 12~13세기에 그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많은 걸작들이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오고 있다. 고려청자는 중국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개경 근처에서 처음 만들어 졌다. 초기 많이 사용되었던 차를 마시는 그릇인 완이나 술잔, 그릇, 술을 보관하는 병이나 매병, 화장품 등을 보관하는 용기인 합 등에서 중국과 비슷한 태를 보이면서도 고려청자 특유의 장식이나 빛깔 등을 보여준다. 절정기 고려청자 중에는 물가풍경무늬 등 회화적인 요소가 반영된 비슷한 형태의 도자기들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전문 화가가 도자기 제작에 연관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게 하고 있다. 고려시대 도자기는 주요 소비처인 궁궐과 귀족들이 ..

중앙박물관 2013.01.10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상감청자, 고려 공예의 정수

상감(象嵌, inlay)이란 공예품에 장식을 하는 기법으로 소재의 표면에 그림이나 문양을 새겨서 그곳에 조개껍질, 뼈 등의 상감재료를 끼워 넣어서 문양을 나타낸다. 상감기법은 고대 이래로 다양한 시대,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공예기법으로 나무, 유리, 금속, 도자기 등에 사용된다. 이집트를 비롯한 고대 문명지역에서도 칠기나 금속공예 등에 상감기법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기법이다. 상감기법은 오랜세월 동안 다양한 지역에서 사용된 공예기법이기는 하지만 이를 도자기에 적용한 것은 12세기 고려청자가 처음이라고 한다. 상감청자는 자기의 바탕흙에 무늬를 새기고, 다른 종류의 흙이나 재료 등을 메워 넣는 기법으로 장식한 것으로 고온에 굽는 도자기의 기술적 특성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

중앙박물관 2013.01.09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종교와 고려청자

차를 마시는 그릇인 완을 도자기로 만들어 사용한 이래로 국내에서 직접 도자기를 생산.제작하면서 기술도 발전하여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도자기들이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도자기의 원래 용도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을 먹는 그릇이나 잔 등이 많이 만들어졌으며, 점차로 음식을 보관하는 매병, 병, 항아리를 비롯하여 베개, 향로, 의자, 연적 등 특이한 형태의 도자기들이 만들어졌다. 그중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던 상형토기가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상형도자기들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상당부분 종교와 관련된 형상이나 용기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상형도자기로는 도교의 신선을 형상화한 국보 157호로 지정된 사람모양주자, 국보 173호로 지정된 나한상, 국보 270호로 지정된 원숭이모양 연적을 들 수 있다..

중앙박물관 2013.01.07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청자로 만들어진 생활용품

통일신라시대에 당나라에서 수입한 도자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로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수도인 개경을 중심으로 한반도에서도 도자기를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 고려청자로 잘 알려진 고려의 도자기는 처음에는 차를 마시는 작은 그릇인 완을 만들기시작했으며, 점차 궁궐을 비롯한 왕실과 귀족계층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종류의 식기를 주로 만들었다. 주로 음식을 먹는 그릇, 술이나 차를 담는 주자, 잔, 매병 등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들이 만들어졌다. 도자기는 처음 사용했을때부터 상당히 고급스러운 사치품이었으며, 국내에서 도자기를 생산하면서 도자기의 고급스러운 빛깔과 빼어난 조형미는 귀족들의 취향에 맞는 다양한 생활용품들에 대한 수요를 불러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고려청자로 만들어진 생활용품으로는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

중앙박물관 2013.01.06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무덤에 묻힌 도자기

고대 문명이 발생한 이래로 인류는 죽은자가 사후세계에서도 현세와 마찬가지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껴묻거리를 무덤에 묻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동기시대 무덤양식인 고인돌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고분에서는 수많은 껴묻거리들이 출토되고 있다. 무덤 껴묻거리 중에는 무기류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신구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는 것이 식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그릇들일 것이다. 통일신라를 거치면서 무덤 껴묻거리는 그 수량이나 종류가 간소화되는 경향을 보이지만 기본적인 생활용품이 그릇들이 많은 무덤들에서 출토되고 있다. 고려시대 무덤은 많이 발굴되지는 않고 있지만, 일부 발굴된 무덤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꺼묻거리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개성부근에서 발굴조사된 고려 ..

중앙박물관 2013.01.03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청자 매병, 술을 담는 용기

매병은 술같은 액체를 담는 용기로 입이작고 어깨가 풍만하여 몸체는 아래로 내려갈 수록 좁아지는 형태의 병으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던 고려청자 중에서 많은 걸작품들이 남아 있다. 액체를 담는 그릇으로 선사시대 이래 토기를 만들었을 때부터 중요한 용도의 그릇으로 입이 넓은 항아리(Jar)나 입이 좁은 병(Battle)이나 서양의 암포라(Amphora)의 형태로 많이 만들어졌다. 고려청자 매병는 주로 궁중이나 부유층에서 술을 담기 위한 그릇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뚜껑이 있다. 기존의 항아리, 병, 암포라와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으며 기능은 비슷하지만 특히 지중해 해상교역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올리브오일이나 포도주를 담았던 그릇인 암포라(Amphora)와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

중앙박물관 2013.01.02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상위에 놓인 청자

도자기는 흙을 빚어 고온의 불에 구워낸 그릇이나 장식물을 말하는데 1,30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구운 것으로 도기, 1300~1,500도에서 구운 것을 자기라고 한다. 사람이 흙으로 그릇을 빚은 토기를 사용한 것은 상당히 오래된 일로 동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과 기술수준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동아시아에서 도자기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한반도를 비롯하여, 베트남, 일본, 서역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반도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도자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중국 송나라 월주요의 영향을 받아 고려초기부터 국내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도자기를 사용하게 된것은 서역으로부터 차를 마시는 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차를 마시는 그릇인 완이 중국으로부터 수..

중앙박물관 2012.12.28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청자로 장식된 집

고려초 청자가 국내에서 제작하던 시기에는 차를 마시는 작은 그릇인 완을 비롯한 작은 그릇들이 주로 만들어졌으나 전성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형태의 생활용구를 비롯하여 상형도자기들이 만들어졌다. 청자로 만든 생활도구 중에는 항아리를 비롯하여 각종 그릇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청자 의자나 향로, 베개 등 예술적 조형미가 풍부한 도자기들도 많이 만들어졌다. 청자는 또한 집을 장식하는 기와를 비롯하여 각종 건축부재로도 사용되기도 하였다. 청자기와 등은 고려시대에 사용되기는 했지만 아주 일반적으로 사용된 건축부재는 아니고 정자 같은 소규모 건축물 등을 장식하는데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강진 가마터에서 발견된 청자기와 등을 통해서 고려인들이 청자를 건축부재로 사용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청자기와는 조..

중앙박물관 2012.12.26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청자의 생산과 유통

청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귀족층을 중심으로 중국 당나라에서 수입하여 사용하기는 했으나, 국내에서는 고려초부터 제작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고려 문종대에 송나라 월주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중국이 5대10국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기술자들이 이주해 왔지 않았을까 추정되기도 한다. 또한 송나라, 고려, 일본간 해상무역에서 중요한 교역품이었기때문에 무역선이 정박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반도 서남 해안에 고려 청자 전성기때 도자기를 굽던 가마들들이 많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도자기 생산지가 국가에서 운영하는 관요를 중심으로 서울과 가까운 광주.여주.이천 일대에 있었던 반면에, 고려청자를 굽던 도자기의 생산지는 전남 강진, 전북 부안을 비롯하여 서남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도 조선과 마..

중앙박물관 2012.12.26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고려청자의 변화와 쇠퇴

12~13세기초까지 절정을 이루었던 고려의 청자 제작기술을 13세기 몽고의 침입으로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르면서 그 경제적 기반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도자기의 모양은 단순해지면서, 두께는 두꺼워졌고, 아름다운 비색 청자 유약은 녹갈색이나 황갈색을 띠게 되었고 화려한 상감무늬는 점차 단순해졌다. 특히 몽고와의 전쟁이 끝난후 일본과의 해상무역이 쇠퇴하고, 왜구의 침입으로 해안가에 있었던 전남 강진이나 전북 부안의 도자기 생산가마들이 폐쇄되고 장인들은 내륙으로 피난하면서 도자기의 생산지가 전국으로 확산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고려말기의 도자기 수준은 전성기에 비해서 퇴보하게 되었고, 이런 도자기의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서 도자기의 한쪽 부분에 글자를 상감으로 새겨 넣게 되었다. 도자기에 새겨진 글자로는 궁궐 관청..

중앙박물관 2012.12.1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