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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146

[중앙박물관 도자공예실] 고려의 자기문화, 비색청자

우리나라에서 자기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통일신라 말기인 9~10시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았던 것 같다. 중국에서는 당삼채에서 시작되어 당나라때 청자가 만들어졌다고 하며, 통일신라말에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크게 발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중국에서 수입한 것들을 일부 계층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황소의 난에서 시작된 당나라 말기의 혼란상을 피해서 우리나라로 넘어온 중국 기술자들에 의한 것이라는 견해들이 있는데 세계 문화 교류를 돌이켜 보면 크게 무리가 없는 주장인 듯 하다. 고려 초기의 가마들은 수도 개경을 부근에서 중국 월주요의 자기들을 생산했다고 하며, 11세기에 들어서는 중국 송나라와 ..

중앙박물관 2011.02.12

[중앙박물관 조선실] 대한제국의 흔적들

중앙박물관 조선실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구한말에서 대한제국까지의 역사를 말해 주는 유물들이다. 박물관에서는 구한말에서 대한제국에 이르는 시기를 근대화를 향한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는데, 그렇더라도 구한말 역사와 관련된 것들을 보면 그렇게 좋은 기분을 주지는 않는다. 구한말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대표하는 유물로 그가 전국 각지에 세웠던 척화비 중 서울 종로 보신각 옆에 세웠던 척화비가 전시되어 있고, 외세와 기득권에 저항한 농민운동인 동학농민전쟁 당시의 사발통문을 전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로 대한제국의 성립과 근대화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구한말은 격변하는 세계정세와 중국 정세를 당시 집권층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했는지에 대한 유물들과 당시 집권세력의 ..

중앙박물관 2011.02.09

[중앙박물관 조선실] 조선후기 신분의 변화와 여성들의 생활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를 거치면서 양반을 중심으로 한 신분제도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기득권층인 양반.권문세가는 상속을 통한 경제력분산을 막기 위해 장자위주의 상속으로 부의 집중화를 추구하였으며, 기득권에서 소외되는 양반계층도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반면, 양반과 양인의 중간계층인 중인이라 불리었던 양반의 서자, 서리, 기술직 등은 그들의 전문적인 지식으로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여 부를 축적하고 구한말 근대화 시기를 주도할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성들의 삶은 조선후기의 정착된 장자상속제 등의 변화에 따라서 조선전기에비해서 사회적 지위는 크게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 여자들의 삶은 모습은 대부분 조선후기 여성들의 삶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앙박물관 2011.02.08

[중앙박물관 조선실] 서울과 지방, 조운과 조창

조선시대를 이야기할 때는 주로 국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정치와 사회, 과거제와 관료제, 붕당정치 등을 위주로 하기때문에 지방의 통치조직이나 통치제도에 대해서 논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특히, 조운과 교통로, 도시의 발달과 역할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작년에 개편된 중앙박물관 조선실에는 조선시대 지방통치와 조운, 교역과 상업의 중심이었던 나루와 포구에 대해서 잘 정리해 놓고 있다. 전시된 내용 중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조선시대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인 김홍도가 그린 을 들 수 있다. 옛말에 "평양감사도 저하기 싫으면....."이라는 말이 실감할 수 있는 화려한 잔치그림이다. 여러 문헌과 연구자료 등에서 조선시대 관료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의 근간이 되는 지방수령들..

중앙박물관 2011.02.07

[중앙박물관 조선실] 조선후기 실학, 북학과 연행

실학은 17세기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서 대두된 현실개혁적인 조선시대 유학의 학풍을 말한다. 당시 청나라의 고증학과 더불어 실제적인 사물에서 진리를 찾아낸다는 뜻에 그 근원을 두고 양국에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 면이 있다. 청대의 고증학은 경서의 해석에 치중한데 반해 조선의 실학은 서구문물의 영향과 함께 농업에서 부터 사회전반의 개혁을 추구한 학문으로 그 세부적인 내용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중앙박물관 조선실에서는 조선후기 실학을 대표하는 각종 저서들을 실제 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이전에는 없었던 것들이 조선실을 개편하면서 당대를 대표하는 저서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행운을 만나게 된다. 조선시대 실학의 시초라 여겨지는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익의 '성호사설' 요약한 성호사설..

중앙박물관 2011.02.06

[중앙박물관 조선실] 영조의 탕평정치와 정조대 문화의 진흥

18세기에서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휴유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시기였다. 병자호란 이래로 송시열을 중심으로 계속되어온 당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만, 영조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역량과 권위로 조금이나마 제압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또한 중국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중심으로 안정화된 시기를 누리고 있었다. 영.정조대를 대표하는 정책으로는 탕평책으로 대변되는 당쟁의 극복과 왕권의 확립, 균역법으로 대표되는 조세개혁을 통한 경제 안정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정조대는 규장각을 중심으로 활성화된 학문장려, 중국 문물됩과 함께 크게 융성한 실학, 대량 출판을 통한 지식의 확산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큰 변화를 겪었던 시기였지만, 당시 영국과 프랑스를 중..

중앙박물관 2011.02.04

[중앙박물관 조선실] 조선후기 민간생활과 놀이문화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실에 전시된 조선후기 민간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조선시대 민간에서 즐겼던 놀이문화와 의.식.주 관련하여 각종 생활도구, 민간신앙 등을 나타내고 있다. 조선시대 놀이문화로 특색적인 것은 조선시대를 특징하는 대표적인 것으로 관료제를 들 수 있는데 양반가에서는 어린시절부터 승경도라는 놀이를 통해서 관직의 체계를 배우고, 입신양명의 꿈을 갖게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 서민층에서 사용했던 놀이기구는 아마도 유물로 남아 있는 것이 없어서 그런지 특별히 전시된 것은 없다. 당시의 놀이로는 서민들이 즐겨 놀았던 장기나 양반 계층이 즐겼던 바둑.쌍륙.투호.승경도와 같은 놀이가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서구로부터 도입되어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담배. 떡에 무늬를 찍어내는 도구..

중앙박물관 2011.02.02

[중앙박물관 조선실] 조선후기 경제와 산업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조세를 부과하고 징수하는 조제제도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 민간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각지방이 특산물을 정부에 납부하던 공물을 대동미라는 명목으로 쌀로 납부하게 하는 대동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동법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처음으로 경기지역부터 적용했다고 숙종때 전국적으로 시행했다고 한다. 전국적 시행에 100년 이상이 걸린 엄청나 지방토호나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있었던 제도이다. 지금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현상이지만, 조선의 관료제도나 사회제도의 모순을 잘 보여주는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관료들은 국가로부터 녹봉을 받기는 했지만, 실제 집안을 운영하는 경제력의 기반으로는 부족했다고 한다..

중앙박물관 2010.12.25

[중앙박물관 조선실] 병자호란과 그후, 붕당정치와 새로운 질서의 모색

조선중기 임진왜란으로 동아시아 각국에는 크나큰 변화가 발생했다. 일본은 전국시대를 종식하고 중앙집권적인 동경중심의 막부정치가 시작되었고, 북방에서는 만주 여진족이 크게 성장하여 명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허약함을 드러낸 국왕과 집권층에서는 중립외교를 추구한 광해군을 축출하고 명분론적이며 친명을 표방한 서인세력이 집권했다. 인조대 조선을 침략한 청나라에 허망하게 굴복하고, 명나라 또한 농민혁명과 청나라의 침입으로 멸망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 정립되었다. 병자호란은 한반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허무하게 북방민족에게 굴복한 사례라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는 병자호란을 상징하는 유적이나 유물이 남한산성이나 강화도를 제외하고는 별로 찾아 보기 힘든 형편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중앙박물관조차도 병자호란..

중앙박물관 2010.12.24

[중앙박물관] 강서대묘 사신도, 고구려 기상이 넘치는 동물투쟁도

중앙박물관 1층 고고관에서는 특별전시로 대표적인 고구려 벽화인 강서대묘 사신도를 전시하고 있다. 이 사신도는 1930년대에 벽화를 보고 모사한 그림으로 실제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강서대묘는 북한 평안도 남포시 강서구역에 있는 고구려 고분으로 1900년대 초에 그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내부는 대형 화강암 판석을 수직으로 쌓아 만든 널방 벽체와 천정으로 이루저여 있으며 특별한 장식이 없이 사방이 벽화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기운생동하는 사신도와 유려하고 다채롭게 표현된 천장 그림들은 고구려 무덤벽화의 절정기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북벽의 현무가 연출하는 긴장감 있는 화면 구성과 회화적 완성도는 조사보고 당시부터 국내외의 이목을 끌었으며,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 벽화를 모사했다고 하며,..

[중앙박물관 조선실] 조선전기 양반 사회 생활모습

조선전기 양반사회의 모습은 선비들이 태어나서 공부를 하고,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를 하고, 관직에 입문해서 관직생을 하다가 낙향해서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당시에 양반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물과 유적 또한 그들이 읽었던 서적들, 과거시험에 합격했음을 알려주는 홍패.백패, 관직 임명장인 교지, 그들이 정책에 대한 글을 올린 상소문, 일생을 정리하면서 정리한 각종 일기와 문집 등을 들 수 있으며, 그런 유물들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양반의 일생에 관련된 문서 이외에도 당시 사회모습을 보여주는 유물로는 그들이 남긴 글과 그림, 자녀들 사이에 유산상속을 정리한 분재기, 관가에 등록한 호적, 지방사회를 교화시키고자 만든 향약, 계모임을 묘사한 그림 등이 있다. 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2010.12.21

[중앙박물관 조선실] 조선전기 성리학과 사림정치

조선전기 성종대부터 신진관료 세력으로 김종직을 중심으로 한 사림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연산군대와 중종, 명종대에 걸쳐서 여러번의 사화에도 불구하고 16세기에는 새로운 주도세력으로 성장하여 조선의 정치.사회.문화 전반을 이끌었다. 중종대 조광조가 성리학을 조선에 맞게 변형시키고 이를 현실정지에 적용하는 도학정치를 주장했다. 조광조 이후에 이황.조식.이이와 같은 뛰어난 학자들이 조광조의 도학정치를 계승하여 성리학을 현실정치에 왕도정치를 구현하고자 했으며, 다향한 학파가 형성되면서 조선후기 붕당정치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중앙박물관 조선실에는 조선중기 사림정치를 이끈 조광조선생의 문집, 이황 선생의 성학십도, 이이 선생의 성학집요를 전시하고 있어서 조선을 이끈 대표적인 학자이자 사상가의 발자취를 볼 수 ..

중앙박물관 2010.12.19

[중앙박물관 조선실] 세종대의 과학기술과 한글 창제

조선전기 세종대를 중심으로 조선은 천문학은 물론 수학, 도량형, 의약학, 농학, 화약과 무기제조 등 모든 과학 기술분야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보였다. 그 중 가장 뛰어난 발전은 우리고유의 문자인 한글을 창제했다는 것이다. 표의 문자인 한자를 대신한 표음문자를 사용할려는 의도는 신라시대 이두를 비롯하여, 일본어, 북방유목민의 문자인 거란어, 몽골어, 만주어 등 다양한 시대가 있었고 실생활에도 많이 사용되기도 했지만, 한글만이 거의 유일하게 민가생활에 깊게 뿌리내리어 오늘날까지 공식적인 문자로 자랑할만한 발자취를 남겨오고 있다. 중앙박물관 조선실에는 조선 전기의 과학업적을 대표할 만한 여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런 유물이 희귀하다보니 상당수는 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태종때 만들어진 세계지도인 '혼일강..

중앙박물관 2010.12.17

[중앙박물관 조선실] 조선의 건국과 제도정비

중앙박물관 전시공간의 개편으로 조선실이 새로 구성되었다. 조선실은 태조가 조선을 건국한 시점부터 대한제국기까지를 전시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전과는 달리 조선왕조 오백년 동안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변화를 중심으로 유물을 재배치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중 첫번째로 조선의 건국과 제도정비와 관련된 유물들이다. 조선사회를 특징지을 수 있는 것으로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한 유교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통치이념이 들어가 있는 법과 제도적 측면에서 법전격인 경국대전과 악학궤범, 국조오례의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주역들의 유물로 태조의 호적과 건국 주역들의 공신녹권 등 조선 건국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유물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호적 (국보13..

중앙박물관 2010.12.14

[중앙박물관 특별전] 조선을 일으킨 땅, 함흥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10년 11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조선을 일으킨 땅, 함흥"이라는 제목으로 테마전을 하고 있다. 중앙박물관에서는 테마별로 특별기획전을 계속하고 있는데,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여러 유물들을 테마에 맞게 모아서 주제에 대해서 일관성이 있는 전시회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특별한 느낌없이 지나쳤었는데 최근에 박물관을 자주 들러다보니 각 테마에 따른 유물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상당히 알차고 가치있는 전시회가 되고 있다. 유물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도 되지만 박물관 나름대로 아주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주고 있다. "조선을 일으킨 땅, 함흥" 특별전은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의 고향 함흥에 대한 여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함흥에 남은 태조의 흔적은 주로 함흥본궁이 중심이 되고..

중앙박물관 2010.12.07

[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보물 628), 금제 굽다리접시 (보물 626호)

삼국시대 고분의 부장품들은 당시 사람들의 사후관을 잘 보여주고 있는 유물이다. 신라 천마총, 황남대총을 비롯한 고분들과 백제 무령왕릉, 그리고 가야의 고분들에서는 엄청난 수량의 부장품들이 발굴되었다. 그 중 무기류와 함께 가장 많이 출토되는 것 중의 하나가 그릇류이다. 고분을 조성할 때에는 그릇을 비롯하여 직물류나 다른 종류의 부장품들도 있었겠지만, 귀금속류와 함께 썪지 않기때문에 그 부장품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경주 황남대총에서는 다량의 그릇류가 출토되고 있는데 그 중 잘 알려진 것은 보물 626호로 지정된 금으로 만든 굽다리접시와 보물 623호인 금은으로 만든 그릇이다. 이 외에도 당시에 많이 사용되었던 칠기 그릇도 온전하지는 않지만 파편이 남아 있으며, 청동으로 만든 솥, 은으로 만..

중앙박물관 2010.10.17

[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말갖춤, 비단벌레 장식

신라를 포함하여 가야, 백제, 고구려 고분에서는 말과 관련된 벽화와 각종 말갖춤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중세 유럽의 모습을 표현한 철기병과 판금갑옷, 화려한 말갖춤들을 보면서 조선시대의 갑옷과 말갖춤의 단순함때문에 기술이 떨어진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이는 겉보기에서만 그럴뿐 실용적인 면에서 조선시대의 말갖춤이 상당히 실용적일 것이다. 삼국시대의 말갖춤은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상당히 발달된 것으로 이는 북방 기마유목민과의 투쟁에서 나온 결과로 보이며 이후의 가벼운 갑옷과 말갖춤으로 변하것도 기마민족과이 투쟁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황남대총에서 동시대의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말갖춤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세련되고 화려한 말갖춤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그 수량 또한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고분에서 출토된 것은 부장..

중앙박물관 2010.10.15

[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팔뚝가리개 (보물632호), 환두대도

황남대총 부장자와 함께 묻힌 부장품 중 당시의 무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환두대도가 있다. 환두대도는 한나라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삼국시대 고구려의 대표적인 무기이다. 고구려 벽화나 실크로드 우즈베키스탄에서 발견된 벽화에 보이는 고구려 사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증거로 이 환두대도와 조우관을 들고 있다. 환두대도는 고구려 뿐만 아니라 신라에서도 많이 사용되었기때문에 신라 사신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은제 팔뚝가리개는 명칭과는 달리 정강이가리개로 추정되고 있는 보물 632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이 것을 당시 갑옷을 구성하는 구성요소로 판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시대 이후의 갑옷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형태이다. 가슴꾸미개와 허리띠 또한 이런 무기류들과 함께 갑옷을 장식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유물이다. 황..

중앙박물관 2010.10.14

[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국보194호), 각종 장신구

경주 황남대총은 북분과 남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피장자가 남성으로 추정되는 남분에서도 다량의 장신구가 발굴되었다. 남분에서 발굴된 장신구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국보 194호로 지정된 금목걸이다. 이 목걸이는 금사슬 4줄과 속이 빈 금구슬 3개를 교대로 연결하여 만든 것으로 옥을 사용하지 않고 전체를 금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남분에선 금목걸이 외에 금반지, 은반지, 유리구슬, 청동구슬, 다량의 곱은옥 등이 발굴되었으며, 북분에서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서 만든 장신구들이 발굴되었다. 발굴된 장신구들은 상당히 화려하고 세공기술이 섬세했던 것으로 보인다.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국보194호). '금의 나라' 신라를 대표하는 금제 장신구 중의 하나이다. 전체를 금으로만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중앙박물관 2010.10.12

[중앙박물관 황남대총] 관모와 관제장식, 북분 은제 관식(보물625호), 남분 금제 관식(보물630호)

황남대총에서는 신라시대 관모와 관꾸미개가 여러점 출토되었다. 관모는 머리에 쓰는 작은 모자형태이고, 관꾸미개는 V자형태의 새날개 모양의 장식을 관모에 묶어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는 머리깔는 머리깔을 감싸도록 깊이 눌러쓰는 것인데 상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널리 사용되어 왔으며, 재료로 비단.말총.금동.대나무 등으로 다양하다. 신라시대 금동관모는 실제 사용되었다기 보다는 부장품으로서 장식적인 의미를 많이 갖는 것으로 추정된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물로 재구성한 당시의 관모 착용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금제관꾸미개, 남분 (보물63호).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관꾸미개라 할 수 있다.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되었다.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표주..

중앙박물관 201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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