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여행 2797

서울 회현동 골목길, 60~70년대 풍경이 남아 있는 남산 아래 주택가

회현동은 남산의 공원입구라 할 수 있는 백범광장 아래에서 남대문 시장 사이에 위치한 동네이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서 주로 지방에서 상경한 선비들이 많이 살았던 남촌에 속한곳으로 한성부 남부 호현방이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서울에서 가장 큰 시장인 남대문시장과 가깝고 명동을 비롯하여 도심과 가까운 주거지역으로 많은 살람들이 살았던 동네이지만 지금은 서울이 확장되고 도심공동화현상으로 도심속 섬처럼 바뀐지역이다. 이 지역은 서울 도심과 가깝다는 지역적 특징으로 북촌과는 달리 도시형한옥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대부분 한국전쟁이후 지어진 주택들이 남아 있다. 또한 60년대 도시개발과정에서 지어진 초창기 아파트들 많이 남아 있어 지금은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남산 아래 경사진 언덕에 형성된 주택가로 조선..

한국의 풍경 2013.12.11

중국 칭다오(Qingdao , 靑島), 베이징올림픽 요트경기장

칭다오(Qingdao , 靑島)는 중국 산동성 해안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 870만의 거대 도시이다. 19세기말 독일이 이곳을 통해 중국을 침입한 이후 조차원을 얻어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도시로 천친, 상하이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무역항이다. 중국이 개방정책을 시행한 이후 대표적인 공업도시로 발전했으며, 중국 대표 가전업체인 하이얼이 이 도시에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칭다오 시청이 있는 5.4광장을 중심으로 서쪽편으로는 19세기말 이래로 독일이 이곳을 점령하고 있을 때부터 형성된 구도심이 있고, 동쪽으로는 80년대 개방정책으로 칭다오가 개발되면서 형성된 신도심을 형성하고 있다. 칭다오는 해안을 끼고 발달한 도시로 뛰어난 해안절경을 자랑하고 있으며, 청도 해안의 해수욕장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중국의 대표..

중국(China) 2013.12.09

서울 효자동.창성동 골목길, 경복궁 서쪽 영추문 바깥쪽 동네

조선 제1의 법궁인 경복궁 서쪽편은 인왕산 자락 아래 서촌이 일부로 한성부 북부 12방 중 하나인 순화방으로 지금의 효자동,궁정동, 창성동 등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궁궐과 가까운 곳으로 북촌과는 달리 권문세가보다는 궁궐과 관청에 실무를 담당하는 하급관리를 비롯하여 중인층이 많이 살았던 지역이다. 특히 효자동은 경복궁과 가까이 있어 궁궐을 출입하면서 궁밖에 살았던 출입번 내시들이 집단으로 살았던 지역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해방이후에도 대통령 집무실인 청와대와 경복궁이 가까이 있어 개발이 제한되어서 그런지 일제강점기 이후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 많이 남아 있고, 공공기관을 제외하고는 큰 건물이 많지 않은 지역이다. 서울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70년대 이전 서울의 풍경이 많이 남아 있는 좁은..

한국의 풍경 2013.12.09

서울 르네상스호텔, 건축가 김수근이 80년에 설계한 호텔

서울 강남 테헤란로 중심부에 위치한 라마다르네상스호텔이다. 강남개발이 끝나갈 무렵인 1980년 중반에 지어진 이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이 말년에 설계한 작품 중 하나이다. 외관은 알루미늄 빛을 하고 있으며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경찰청사(구 치안본부), 서초동 법원청사와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편의시설이 있는 저층부는 기단부처럼 보이게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탑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서초동 법원청사와는 달리 전면부 2/3정도는 앞쪽으로 약간 돌출되게 하여 단조로움을 보완하고 있다. 이 건물을 설계한 김수근은 해방이후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한국전쟁 이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건축을 배웠다고 하며, 그의 건축에는 현대 일본건축의 영향이 남아 있다..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건축가 김수근이 말년에 설계한 현대건축물

서울 서초동에 소재한 법원청사건물은 70~80년대 강남개발의 막바지에 지어진 공공기관 청사건물이다. 이 건물은 해방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이 말년이 설계한 건축물이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강남 라마다르네상스호텔, 경찰청청사(옛 치안본부청사)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고층 빌딩 형태를 하고 있으면서 알루미늄색의 둥근 기둥을 하고 있는 탑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건물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사용하고 있는 동관과 서울고등법원이 사용하고 있는 서관이 2개의 탑처럼 세워져 있고, 두 건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중앙 현관은 법원을 상징하는 대형문양이 걸려 있으며, 실제로 일반인들이 출입하지는 않는다. 동.서관 출입문은 큰 아치가 있는 통로를 지나서 측면으로 출입하게 되어 있다...

대구 관암사, 갓바위가 있는 팔공산 관봉 중턱에 위치한 전통사찰

경북지방의 대표적인 기도처인 팔공산 갓바위가 있는 관봉(해발850m) 정상 아래에 있는 사찰인 관암사이다. 이 사찰은 갓바위로 잘 알려진 관봉 석조약사여래좌상과 함께 통일신라시대부터 존재했던 사찰이라고 하나,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다가 최근에 새로 중건된 사찰이다. 갓바위를 오르는 대표적인 등산로인 진인동에서 출발하여 정상까지 오르는 길 중간에 위치한 사찰이다. 갓바위 또한 이 사찰을 중건한 백암이 발견하여 국가문화재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관봉 중턱에 위치한 이 사찰은 실질적으로 1963년의 갓바위이 존재가 알려짐과 동시에 창건된 사찰로 오랜 내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고 현재의 불전 또한 대부분 최근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사찰은 주불전인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약사전, 관음전, 삼성각, 요사채 등으로 전각들이..

전국 사찰 2013.12.03

파주 소령원(사적358호)과 수길원, 영조의 어머니 '동이' 주인공 숙빈 최씨와 후궁 정빈 이씨의 묘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있는 소령원은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이자 숙종대 장희빈, 인현왕후와 함께 TV사극과 역사소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 중 한명인 영조의 어머니이자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의 묘소이다. 고려중기 윤관장군 묘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소령원은 지금은 일반에 개방하지 않고 있는 곳으로 조선 왕족들의 무덤인 능원 중에서는 비교적 먼곳에 위치하고 있다. 숙빈최씨는 인현왕후 일가에 관계가 있었다고 하며 인현왕후를 모시는 무수리였는데 숙종의 눈에 띄어 숙원이 되고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후에 영조가 된 연잉군은 인현왕후가 복위된 후 낳은 2번째 아들이라고 한다. 영조는 효심이 지극했으며, 어머니가 무수리 출신임을 숨기지 않았고, 어머니와 관련된 많은 일화들이 구한말 조선왕실들 사이에 전..

파주 삼릉(사적 205호) 영릉, 영조의 첫째 아들로 진종으로 추존된 효장세자의 능

파주 삼릉 중 제일 마지막으로 조성된 영릉은 조선 21대 영조의 장자이자 사도세자의 형인 추존왕 진종과 효순왕후 조씨의 능이다. 효장세자는 영조가 즉위한지 4년되는 해인 1728년에 어린 나이로 죽었기때문에 처음에는 왕자의 묘로 조성되었다. 이후 영조 38년 사도세자가 죽은 후 정조를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하였고, 정조가 즉위한 후 진종으로 추존되었으며, 대한제국 선포 이후인 1908년에는 다시 황제로 추존되었다. 이런 추존 내력은 영릉에 있는 3기의 표지석에 기록되어 있다. 효장세자가 진종으로 추존되면서 왕자의 묘에서 왕릉으로 격상되었지만 봉분과 석물은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난간석과 무인석이 없다. 영릉의 조성 경위와 절차, 부장품 등에 대한 기록은 의궤에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되..

파주 삼릉(사적205호) 순릉, 조선 9대 성종의 첫번째 왕비 공혜왕후 능

사적 205호로 지정된 파주 삼릉 중 처음부터 왕릉 형식으로 조성된 순릉이다. 순릉은 조선 9대 성종의 첫번째 왕비인 공혜왕후의 능이다. 공혜왕후 순릉은 조성 당시부터 왕릉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봉분 주위에는 난간석이 둘러져 있고 각각 두 쌍의 석호와 석양이 봉분을 등지고 바깥쪽을 향하고 있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과 장명등이, 그 좌우에는 망주석, 문.무인석, 석마가 배치되어 있다. 공혜왕후는 세조를 도와 계유정난을 이끌었던 조선초기 훈구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인 한명회의 딸로 예종의 첫번째 왕비인 장순왕후와는 자매사이다. 공혜왕후는 성종을 왕위에 오르는데 큰 역할을 하여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와 한명회가 결탁하여 12세에 성종이된 잘산군과 혼인하였으며, 성종의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다. 19세의 어린나이에 ..

파주 삼릉(사적205호) 공릉, 조선 8대 예종 원비 장순왕후 능

파주시 봉일천리에 위치한 삼릉(사적205호) 중 첫번째로 조성된 공릉이다. 공릉은 조선8대 예종의 원비인 장순왕후 한씨를 모신 능이다. 세조를 도와 계유정난을 일으킨 주역으로 지금도 역사소설이나 TV드라마 등을 통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당대의 권력자였던 한명회의 딸로 세자빈 시절에 인성대군을 낳고 죽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공릉은 원래 세자빈묘로 왕릉에 비해 간략하게 조성되었으나, 당대 권력자의 딸이었기도 했기때문에 웅장함을 갖추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장순왕후는 성종대인 1472년에 장순왕후로 추존되었다. 사적 205호로 지정된 파주 삼릉은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를 모신 영릉, 9대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를 모신 순릉, 21대 영조의 장자이자 정조의 양아버지인 추존왕 진종과 효순왕후 조씨를 모신..

파주 공효공 박중손 묘역내 장명등(보물1323호)

임진강 하류와 가까운 파주시 탄현면 오금리마을에 있는 보물 1323호로 지정된 장명등이다. 무덤 앞을 장식하고 있는 석물 중 불을 밝히는 의미를 갖고 있는 장명등 중에서 보물로 지정된 특이한 문화재이다. 이 장명등은 조선초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가 집권한 계유정난에 참여한 공신 박중손의 묘역에 세워진 것으로 전형적인 조선초기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장명등은 화사석과 대좌가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창을 원형과 반월형으로 조각한 특이한 형식을 하고 있다. 화사석으니 네모난 창은 땅, 원형은 해, 반월형을 달을 의미하고 있으며, 장명등은 전체적으로 우주를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무덤의 주인인 공효공 박중손은 세종대에 과거에 합격하여 집현전 박사를 비롯하여 홍문관, 사헌부 등 청직이라 할 수 있는 ..

서울 무교동.다동, 골목길을 따라 맛집들이 들어서 있는 서울의 명소

청계광장에서 광통교(광교)까지 이어지는 청계천 남쪽편에는 무교동과 다동이 위치하고 있는데 통칭해서 무교동 골목길이라고도 한다. 무교동은 조선시대 과일을 파는 모전이 근처에 있어 모전다리라 불렸던 청계천 다리에서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근처 서울시청자리에 있던 무기를 만들던 관청인 군기시와 연결시켜서 무교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명동성당 부근 명동과 함께 서울에서 전통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면서 맛집골목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명동이 70년대까지 금융중심지로 역할을 했었고, 지금은 옷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모이는 거리라고 한다면 무교동.다동 일대는 서울시청을 중심으로 을지로, 태평로, 남대무로 대로에 들어서 빌딩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골목으로 전통적인 맛집들이 많이 들어선 명소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풍경 2013.11.20

상주 오작당, 승곡리마을에 남아 있는 조선중기 양반가옥

상주시 승곡리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으로 보물로 지정된 인근에 위치한 양진당과 함께 조선중기 문신 조정이 지은 집이다. 양진당과 비슷한 양식으로 원래는 겹집으로 좌우에 익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안채, 사랑채, 가묘만이 남아 있다. 조선중기인 선조대에 처음 지은 집으로 양진당보다 오래된 가옥이라고 한다. 건축수법에 있어 침수피해가 많았는 지형적 특징을 고려하여 안채는 마당보다 높게 지었으며, 기둥 모서리를 깎아 모접을 두고 있다. 원래는 양진당과 비슷하게 'ㅁ'자형 주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며, 'H'자형으로 된 안채지붕에서 그 흔척을 찾아볼 수 있다. 승곡리마을은 낙동강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낙동강 지천인 장천 주변에 비교적 넓은 농지가 형성되어 있고 물이 풍부한 마을로 전형적인 양반들의 세거지였..

고택_정원 2013.11.15

상주 양진당(보물 1568호), 조선중기에 지어진 양반가 대저택

상주 승곡리마을에 남아 있는 보물 1568호로 지정된 조선중기 양반 저택인 상주 양진당이다. 이 가옥은 원래 임하댐 아래 천전마을에 있던 것을 1625년 검간 조정이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앞면 9칸, 옆면 7칸의 대저택으로 바깥쪽에 사랑채가 있고 안마당에 안채가 있는 전형적인 경북 내륙지방의 'ㅁ'자형 주택구조를 하고 있다. 낙동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홍수때 상습 침수되는 지역적 특성이 만영되어 안채는 바닥에서 1미터 이상 높게 지어진 고상식 구조를 하고 있다. 승곡리마을은 낙동강 지천인 장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마을로 작은 마을 뒷편으로 작은 구릉이 있고, 마을 앞으로는 낙동강 지천인 장천을 중심으로 비교적 넓은 농지가 펼쳐진 전형적인 양반마을이라 할 수 있다. 마을에는 ..

고택_정원 2013.11.14

상주 왕산역사공원, 옛 상주목관아가 있었던 자리

상주시 도심 옛 상주목 관아가 있었던 지역 주변에 위치한 왕산은 상주의 중앙에 위치한 명산이며 상주 사람에게 주는 별다른 상징적 의미를 주는 곳이라 한다. 이곳은 상주 도심 상업지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최근에 부근 지역을 정비하여 도심공원으로 바뀌어 있다. 왕산은 삼국시대 신문왕때(687년)에 신라가 상주성을 쌓고 지역 중심지로 삼은 곳으로 고려말 홍건적 침입때 공민왕이 이곳에 피난하여 상주목 관아를 임시행궁으로 삼으면서 왕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왕산주변 지역은 삼국시대 이래로 관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을 개국할 때 이곳에 경상감영이 있었다고 한다. 상주목 관아를 둘러쌓던 상주읍성은 지금 남아 있지 않고, 관아건물로는 문루인 태평루, 객사인 상산관이 북천임란전적지로 옮겨져 있으며, 관..

상주 임란북천전적지, 임진왜란초기 관군과 왜군이 전투를 벌렸던 전적지

상주시 도심 북쪽을 흐르는 북천변에 자리잡은 임란북천전적지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부산진과 동래에서 첫 전투를 벌이고 파죽지세로 북상하던 왜군에 맞서 조선 관군이 벌렸던 사실상 첫 전투를 벌렸던 곳이라 할 수 있다. 상주는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인 문경새재로 통하는 길과 충북 보은을 통해 청주를 거쳐 서울로 향하는 중요한 길목이라 할 수 있으며 한반도에 고대국가가 성립된 이래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이곳에서 조선관군은 상주목 판관이었던 권길과 중앙에서 파견된 순변사 이일을 비롯하여 지역에서 봉기한 의병들이 힘을 합쳐 왜적을 막아보고자 했으나 전국시대 오랜 전쟁을 통해 단련된 왜군에게 크게 패하고 많은 이들이 순국하였다. 당시 이곳에서 참전하여 순절한 윤섬, 권길, 김종무, 박호, 김준신, 김..

서울 황학정,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 활터

황학정은 조선시대 인왕산 아래 있던 다섯군데의 활터 중 하나였던 등과정에 있는 정자이다. 이 정자는 구한말인 1898년 고종의 명으로 경희궁 뒷편 언덕에 세웠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경희궁을 헐고 서울고등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건물들을 그 자리에 세울때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정자 건물로 구한말에 지어진 많은 정자 건물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활쏘기는 역사이래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중요한 무기로 여겨졌으며,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대표적인 명궁이었다고 한다. 이는 북방초원에서 활약한 기마민족을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활쏘기는 지도자의 필수 덕목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정조가 당대의 명궁이었다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까지 이..

고택_정원 2013.11.03

[서울역사박물관] 육조거리, 조선시대 의정부와 육조 관청들이 들어서 있었던 광화문 광장 대로

육조거리는 조선시대 의정부와 6조를 비롯한 주요 관청들이 들어서 있던 거리로 법궁인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에서 현재의 광화문 4거리까지 조성된 대로를 말한다. 국왕이 거처하는 궁궐과 더불어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중요 관청들로 국가를 상징하는 거리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넓은 대로 좌.우에 정부종합청사를 비롯하여 세종문화회관, 주한미국대사관, KT본사 건물 등이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 육조거리 동쪽편에는 국가 최고 의사결정기구라 할 수 있는 의정부를 비롯하여 이조, 서울시청이라 할 수 있는 한성부, 재경부라 할 수 있는 호조, 국가원로들을 위한 공간인 기로소가 들어서 있고, 서쪽편에는 국가 행사를 주관하는 예조를 중심으로 감사원격인 사헌부, 주요 정책을 집행하는 병조, 형조, 공조를 비롯한 크고 ..

지역박물관 2013.11.01

경산 팔공산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갓바위라 불리는 소원성취를 비는 대표적인 기도처

대구 갓바위는 대구 부근 명산인 팔공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해발 850m 관봉 정상부에 있는 석불좌상으로 머리에 갓을 쓰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갓바위라고 많이 불린다. 부처를 형상화한 불상이지만 기복신앙의 의미를 갖는 대표적인 불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특히, 수능을 앞둔 학부모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해마다 대입수능시험을 앞두고 뉴스에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갓바위는 해발 850m의 높은 봉우리에 있으며, 경주로 들어가는 길목인 넓은 경산과 영천지역 벌판과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갓바위라 불리는 불상은 보물 431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정식 명칭은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이다. 통일신라시대 후기라 할 수 있는 9세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머리에 넓적..

상주 복룡동 석불좌상(보물119호), 상주 도심 왕산공원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불상

상주시 구도심 옛 상주목 관아가 있었던 왕산에 있는 석조불상이다. 원래는 상주시 복룡동 마을에 있었던 것으로 1970년대에 공원이 조성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석불은 높이 147cm로 중후하면서 투박한 느낌을 하고 있어 지방세력의 힘을 보여주는 많은 석불을 세웠던 고려초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머리를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훼손된 부분이 많으며 조각수법 또한 통일신라 전성기의 것보다 뒤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상주시 일대의 중심지가 되었던 도심 마을에 계속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부여 정림사지나 논산 개태사 등에서 볼 수 있는 도심에 있었던 사찰의 불상으로 보인다. 상주 복룡동 석불좌상, 보물119호, 경북 상주시 서성동 당초 석불좌상이 있었던 곳은 복룡동 358번지 마을 가운데..

반응형